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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대통령 당선인의 어퍼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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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42%. 지난 22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다. 잘못하고 있다는 비율은 45%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44%였다. 퇴임을 보름쯤 남긴 대통령의 지지도가 윤 당선인보다 높았다. 물론 직분이 다르고 유권자의 판단 기준도 다른 두 사람의 지지도를 수평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과거 신·구 권력의 교체기에선 접하기 힘들었던 이례적인 수치임은 분명하다. (※자세한 수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등 참고)

6·1 지방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에선 위기감이 감지된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실시되는 지방선거라면 여당의 싹쓸이를 예상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윤 당선인에 대한 여론이 이런 수준이라면 예기치 않은 지역에서 의외의 일격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표출된다.

윤 당선인, 낮은 지지율로 고전
마이웨이 인사, 배려 부족 영향
잇따른 ‘내로남불’ 족쇄 끊어야

대통령의 어퍼컷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대통령의 어퍼컷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갤럽 조사에서 윤 당선인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이유로 지목된 건 ‘인사(人事)’(26%), ‘대통령 집무실 이전’(21%), ‘독단적/일방적’(9%), ‘소통 미흡’(7%), ‘경험·자질 부족/무능함’, ‘신중함 부족/성급함’(이상 3%)순이었다.

국민은 인사 문제에 민감했다. ‘능력 중시’로 포장된 정치적 배려 부족과 측근 챙기기, 검증한 게 맞나 싶을 정도의 부실 검증, 의혹 해명 과정의 나 몰라라식 태도가 실점을 불렀다. 국민의힘이 야당 시절 그토록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의 인식·태도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의혹 백화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윤 당선인의 입장 표명이 대표적이다. 윤 당선인이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는데, 과거 “야당이 반대한다고 검증 실패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오버랩된다.

‘제 식구 발탁’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사기획관과 총무비서관, 부속실팀장 등 대통령실 요직에 ‘검사 윤석열’과 함께 일한 검찰일반직들이 하마평에 올라있다. 대통령실 인사 사령탑인 인사기획관엔 복두규 전 대검 사무국장이 거론된다. “천하의 인재를 두루 찾아내야 할 인사 사령탑에 대검 사무국장을 쓰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은 “복 전 국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인사 전문가로, 정치권 인사들과의 이해관계가 전혀 없어 순수하게 인재 발굴에 몰두할 적임자”라는 반론을 내놓고 있다.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인사 참사 제조기’로 불린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에 대한 과거 야당의 비판을 생각하면 이런 반론도 좀 어색하다. 김 수석은 1992년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를 법제처장에 이어 인사수석으로 발탁한 문 대통령을 향해 과거 야당은 “자기 사람만 심고 감싼다” “함께 일한 경험을 지나치게 중시한다”고 날을 세웠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치인을 배제한다면서 대신 자신의 핵심 측근들을 내정한 법무부(한동훈)·행정안전부(이상민) 장관 인선도 논란거리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출세한 동네 형이 아는 동생들에게 한 자리씩 나눠 주는 느낌”이란 혹평이 나왔다. 특히 민정수석 역할까지 떠맡게 될 한 후보자를 보며 문재인 정부의 황태자, 조국 전 장관을 떠올리는 이들도 상당수다.

갤럽 조사에서 ‘독단적/일방적’ ‘소통 미흡’ 지적이 거론된 배경엔 지난 대선에서 ‘1번 이재명’을 선택한 이들에 대한 배려 부족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검수완박’ 논란으로 여야의 갈등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나온 윤 당선인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2일엔 대구 동성로에서, 그리고 21일엔 경남 진주시 중앙유등시장에서 또 한 번 어퍼컷을 날렸다. 두 곳 모두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이른바 ‘홈그라운드’다.

문 대통령은 임기 5년 내내 자기편만 챙긴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임기 말까지 유지된 이례적으로 높은 지지율에 대해서도 “지지층과 다른 의견도 냈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다른 대통령들은 100점을 받으려고 노력한 반면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50점을 목표로 자기 진영만 챙긴 결과”라는 냉소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기자는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새 정부는 현 정부와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문재인 내로남불’의 오류 위에 ‘윤석열 내로남불’이 다시 쌓이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왜 정권교체를 했는지를 잊게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