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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균형발전 강조, 실제론 2기 GTX 등 수도권에 투자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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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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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교통학회, 윤 당선인 공약 분석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집에는 ‘교통혁신’이라는 항목이 있다. 160여 쪽의 공약집 가운데 150페이지쯤에 들어 있다. ▶수도권 어디서나 30분 출퇴근 시대 ▶교통플랫폼 혁신으로 교통 사각지대 해소 ▶지역고속도로 휴게소를 환승 허브 및 지역경제 활성화 타운으로 개발 등 3가지 세부항목이 적혀 있다.

첫 번째 항목은 기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3개 노선을 현재보다 연장하고, 17조원을 들여 D·E·F 노선 등 2기 GTX 3개 노선을 신설하는 게 골자다. GTX 노선을 따라 미니신도시인 컴택트 시티도 건설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수요대응형 공영버스, 100원 택시, 무료 순환셔틀버스 등을 제공하고 도심항공교통(UAM) 네트워크 및 복합환승체계를 도입해 교통 사각지대를 크게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통해 차량 진·출입이 가능토록 하고, 기차역이 가까이 있는 경우 철도와 도로의 연계교통환승시스템을 구축해 휴게소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공약집에는 또 ‘심쿵약속’ 등의 형식으로 ▶택시안전시스템 장착 의무화 ▶안전속도 5030 개선 ▶시외·고속버스 휠체어탑승 가능 같은 교통 관련 약속이 포함돼 있다.

“교통에 대한 철학·방향성 부족”
“부동산 문제로만 교통정책 접근”
“남북한·아시아 연결정책 안 보여”
백화점식 인프라 공약 벗어나
효율성 따져 필수사업 골라내야

이렇게 보면 교통공약이 몇 안 되는 듯싶지만 꼭 그렇진 않다. 윤 당선인이 유세를 다니며 한 공약이 적지 않고, 국민의힘 대선정책공약집에 실린 시·도별 공약도 상당하다. 철도와 도로, 공항 등 굵직한 인프라 투자 공약만 족히 100개는 훌쩍 넘는다.

하지만 교통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와 전문가 사이에선 교통공약을 관통하는 명확한 방향성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인수위원과 전문위원, 실무위원 중에 교통 전문가나 교통 담당 관료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전해지면서 교통공약이 제대로 정리될까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GTX공약

GTX공약

마침 대한교통학회(회장 이선하 공주대 교수)가 지난 21~22일 경주에서 개최한 봄철학술대회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뤘다. ‘윤석열 정부의 바람직한 국토교통물류 정책 방향’이란 주제로 유정훈 아주대 교수가 진행한 토론회에선 교통공약 평가와 정책 방향성에 대한 제언이 이어졌다. 1982년 창립된 대한교통학회는 150여 개 기관·단체와 교통 관련 전문가·전공자 4600여 명이 회원인 국내 최대의 교통 관련 학술단체다.

유정복 한국교통연구원 부원장은 이 자리에서 “교통 관련 대선공약에서 건설사업은 많이 눈에 띄지만, 정책적인 부분은 별로 안 보인다”며 “교통에 대한 철학과 방향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새 정부도 국가균형발전을 다루겠다고 하지만 수도권 교통문제 해결 방안이 더 많이 보인다”며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의 비중을 더 높여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준환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관은 “분명 국토교통부 관련 공약인데 자세히 보면 이른바 주택부 공약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교통정책이 부동산 문제의 종속변수 정도로 가볍게 치부되는 것 아니냐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GTX-A 건설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GTX는 집값 안정을 위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걷히는 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주민들께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보면 (GTX 건설에) 예산이 설사 몇십조가 들어가도 비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창운 전 한국교통연구원장은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관련 공약이 왜 많이 이행되지 못했는지 원인을 따져보고, 제대로 추진할 공약과 아닌 걸 가려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남북 교통협력과 유라시아 대륙과의 육로연결 등에 대한 공약이 없는 부분은 아쉽다”라고도 했다.

이날 토론에선 교통공약이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인프라 사업을 거의 그대로 나열한 ‘백화점식 공약’이라는 지적과 함께 정부 초기에 사업성과 효율성 등을 따져서 꼭 필요한 사업을 골라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도로와 철도 양쪽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은 방향성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중교통 못지않게 도로 확충에도 상당한 투자를 하면 승용차 이용률을 줄이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 거란 의미다.

지역별 공항 건설 공약을 두고 송기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신공항 건설은) 시급성과 공공성, 전략성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며 “해당 사업에 대해 직접 이해 관계자는 물론 국민을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가덕신공항, 제주 2공항,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조기 추진과 서산공항 건설 등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교통공약을 둘러싼 여러 지적과 논란 속에 윤석열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같은 자리에서 열린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의 특강을 참고할 만하다. 김 전 차관은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강력한 대중교통 우선 정책을 써야 한다고 했다. 직주근접형의 개발로 교통수요 발생을 억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통거점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토계획의 재정립도 언급했다.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가 어떤 철학으로 교통공약을 정비하고, 추진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