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크롱 재선했지만, 르펜 극우바람 거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마크롱

마크롱

중도를 지향하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45·사진) 대통령이 24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54·사진) 국민연합(RN) 후보를 꺾고 연임에 성공했다. 5년 전 만 39세에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 됐던 마크롱은 올해엔 ‘20년 만의 재선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더했다. 프랑스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한 것은 2002년 자크 시라크(1995~2007년 재임) 이후 처음이다. 니콜라 사르코지(2007~2012년)와 프랑수아 올랑드(2012~2017년)는 단임에 그쳤다.

르펜

르펜

프랑스 내무부 최종 집계에 따르면 마크롱은 58.54%의 득표율로 41.46%를 얻은 르펜을 17.08%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지난 10일 1차 투표의 득표율 차이(4.7%P) 못지않게 결선에서도 오차범위 내 접전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빗나갔다. 마크롱은 이날 오후 9시30분쯤(현지시간) 부인 브리지트 여사의 손을 잡고 다양성을 상징하는 여러 인종의 어린이·청소년과 함께 에펠탑 앞 샹드마르광장에 걸어 들어와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여러분이 나의 사상을 지지한 결과가 아니라, 극우를 막기 위한 노력 덕분”이라며 “한 진영의 후보가 아닌,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극우 세력 약진 … 마크롱 2기 ‘분열된 프랑스 통합’ 이 숙제

그러면서 “유권자들이 극우에 표를 주도록 분노하게 한 원인을 찾아 해결하겠다”며 사회통합 의지도 강조했다.

CNN은 “유권자들이 프랑스를 러시아에 더 가깝게 만들겠다는 극우 후보보다 더욱 안전한 중도 후보를 선택했을 뿐 마크롱을 진심으로 포용한 건 아니다”고 진단했다. 르펜의 득표율은 역대 극우 후보의 최고 성적이다. 실제로 2017년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은 압도적인 지지율(66.1%)로 르펜을 32.2%P 차이로 따돌렸지만, 올해 양자의 격차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4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 앞에서 양쪽 엄지를 치켜세워 자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4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 앞에서 양쪽 엄지를 치켜세워 자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5년 전 결선투표(34%)보다 약 7%포인트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르펜은 이날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눈부신 승리”라고 자축했다. 그러면서 “수백만 국민이 우리를 택했다. 프랑스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우리의 결의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오창룡 고려대 노르딕-베네룩스센터 교수는 “극우 세력이 결선투표까지 올라간 데 이어 격차까지 좁혀 현지서도 놀라고 있다”며 “5년 뒤 프랑스에서 극우가 집권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투표를 포기한 사람도 부쩍 늘었다. 결선투표율은 71.99%로 2017년(74.6%)보다 떨어진 건 물론 샤를 드골(1959~69년 재임)이 재선에 도전했던 69년 68.9% 이후 53년 만에 가장 낮다. BBC는 “기권에다 300만 표 이상의 무효표, 백지투표(4.57%)까지 합치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두 후보 어느 쪽에도 표를 던지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AFP는 “마크롱은 집권 2기에 반대파와 부동층의 압력을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선투표의 ‘킹 메이커’로 여겨진 장뤽 멜랑숑(71·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후보는 “프랑스는 르펜 후보를 거부했다”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기권의 바다에서 살아남았다”고 꼬집었다.

마크롱의 첫 과제는 6월 12·19일 열리는 총선 1·2차 투표다. 그가 속한 전진하는공화국(LREM)은 하원 과반 확보가 목표다. 마크롱의 지지율은 5년 전보다 상당히 떨어졌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LREM은 프랑스 최상위 행정구역인 레지옹(유럽에 13개, 해외에 5개 있는 광역주) 수장을 단 한 곳에서도 얻지 못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 LREM의 하원 장악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전망이다.

프랑스 대선 결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프랑스 대선 결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원이 여소야대가 되면 마크롱은 국정운영을 위해 제1야당 대표를 총리로 임명해 ‘동거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대선 1차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던 극좌 성향의 멜랑숑은 “총리를 희망한다”고 여러 차례 밝히며 총선에서 좌파 결집을 촉구했다.

로이터통신은 멜랑숑이 총리가 되면 그간 좌파가 반대해 온 연금개혁안(정년을 현재 62세에서 65세로 연장), 유류세 인상 등 마크롱의 공약은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마크롱은 지난 임기 때 개혁을 추진하다 노란 조끼 시위와 노동자 총파업 등 반정부 시위에 가로막혔다.

특히 연금개혁안은 르펜 후보의 지지층인 블루칼라 계층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프랑스 노동총연맹은 이미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허니문은 없을 것”이라며 “연금개혁안을 완전히 철회하지 않으면 다시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등하는 연료·식료품비 등 물가 상승도 난제다. 특히 에너지 가격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이어지며 급등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가스와 전기 가격 상한제를 유지하고, 연료비에 대해 정부가 리베이트를 일부 환불하겠다고 밝혔다. 20%에 이르는 부가가치세의 감면 대상에 식품 등을 더욱 폭넓게 포함시키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르펜을 중심으로 한 극우 세력의 단합도 무시할 수 없다. 대선 1차 투표에서 4위를 했던 극우 성향의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재정복) 대표가 르펜 후보에게 ‘애국 블록’을 만들자며 극우 진영의 단합을 촉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재확인된 프랑스 사회의 분열을 봉합하고 악화된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르몽드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당선 후 파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반 마크롱 시위’부터 맞이해야 했다. 주로 젊은 ‘반 자본주의자’ ‘반 파시스트주의자’로 구성된 수백명의 시위대가  도시별로 등장했다. 이들은 “투표함에서 얻지 못한 것은 거리에서 얻을 것이다”라는 현수막을 펼친 후 “마크롱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우 대통령 출현을 우려했던 유럽 지도자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승리에 안도와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 “프랑스 유권자들이 유럽에 대한 강한 헌신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전 유럽에 좋은 뉴스”라는 축하 성명을 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위터에 “브라보 에마뉘엘”이라고 적었다.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 의회 의장도 “강한 EU를 위해 강한 프랑스가 필요하다”고 축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친구인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한다”며 프랑스어로 트윗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