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실제 사이, 진짜 자신이 누군지 찾아가는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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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오디아르 감독의 새 영화 ‘파리, 13구’가 다음 달 12일 개봉한다. 사진은 주인공 노라와 카미유(왼쪽부터). [사진 찬란·하이, 스트레인저]

오디아르 감독의 새 영화 ‘파리, 13구’가 다음 달 12일 개봉한다. 사진은 주인공 노라와 카미유(왼쪽부터). [사진 찬란·하이, 스트레인저]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잠자리 상대를 찾죠. 처음 만나자마자 육체관계를 맺은 그들이 이후 어떤 방식으로 사랑 이야기를 나눌지가 저에겐 더 중요했어요.”

프랑스 거장 자크 오디아르(70) 감독의 흑백영화 ‘파리, 13구’가 다음 달 12일 개봉한다. 영화는 데이트 앱 시대 파리지엥의 사랑 이야기다. ‘예언자’(2009) ‘디판’(2015) 등 이민자의 극적인 삶을 그려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황금종려상을 잇달아 받은 그가 영화 ‘러스트 앤 본’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로맨스 영화다. 파리 20개 행정구 중 문화적·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한 13구를 무대로 젊은 세대의 엇갈린 4각 관계를 통해 급변하는 시대상을 풀어냈다.

오디아르 감독

오디아르 감독

지난 13일 화상 인터뷰에서 오디아르 감독은 “할리우드 진출작인 서부극 ‘시스터스 브라더스’(2018)를 광야에서 찍고 나자, 반작용처럼 파리가 무대인 소규모 사랑 영화가 떠올랐다”고 했다. “파리는 로맨틱하고 박물관이 많고 역사적인 도시인 동시에 자신에게 갇힌 박제된 도시죠. 파리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3구는 제가 10년 넘게 살아 잘 아는 곳이죠. 파리를 찍지만 가장 파리 같지 않은 느낌을 주고 싶어 흑백 영상을 택했죠.”

원제 ‘올랭피아드(Les Olympiades)’는 13구 한복판 고층건물 밀집지를 일컫는다. 1970년대 대대적인 재개발로 들어선 건물들엔 68년 그르노블 겨울올림픽을 기념해 삿포로·멕시코시티·아테네·헬싱키 등 올림픽 역대 개최도시 이름이 붙여졌다. 영화는 이곳을 무대로 사랑도, 일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그린다.

오디아르 감독은 일본계 미국인 만화가 아드리안 토미네의 단편 그래픽 노블 ‘킬링 앤 다잉’ ‘앰버 스위트’ ‘하와이안 겟어웨이’를 원작 삼아 파리의 실제 삶을 버무려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칸 각본상을 받은 프랑스 차세대 거장 셀린 시아마(42), 주목받는 신인 작가이자 감독 레아 미지위(33)가 각본에 참여해, 노장의 작품에 젊은 시선을 넣었다.

죄수·장애인·난민 등을 다룬 전작들보다 작품 밀도는 가볍지만, 바로 지금 파리의 민낯을 엿보는 듯한 재미가 크다. 오디아르 감독은 “파리의 젊은이들은 생활비가 비싸고 직업적 안정성을 찾기 힘들어 거주지를 찾아 헤맨다”며 “생각 속 자신과 실제 자신 사이에 괴리가 있는 인물들이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주인공 4명 중 3명이 여성인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선 시아마의 역할이 컸다. 오디아르 감독은 “(시아마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했다. 여성의 시선이 필요한 데다 재능있는 스토리텔러여서 내가 먼저 연락했다”고 소개했다. 촬영 3일 전 파리의 한 극장에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만나 연극 공연을 하듯 대대적인 리허설을 거쳐 배우들의 호흡을 사전에 끈끈하게 다졌다.

오디아르 감독 작품에서 사랑은 계속 살아갈 힘의 원천처럼 등장한다. ‘사랑을 정의해달라’고 하자 그는 프랑스어로 “사랑! 사랑! 사랑! (L’Amour! L’Amour! L’Amour!)”이라고 외친 뒤 미소 지으며 답했다. “사랑을 원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사랑의 정의입니다.” 균열과 대립을 그린 영화라도 비극적 결말은 피해온 그는 “관객으로서도 비극적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극은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 이상의 교훈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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