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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높이까지 음식” 138년 전 미 외교관도 놀란 ‘전주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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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오전 10시 아침상이 들어왔다.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 수많은 음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말기인 1884년 11월 11일. 전라감영을 방문한 조지 클레이튼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가 쓴 일기 내용이다. 주한 미국공사관 대리공사였던 그는 당시 전라감사(관찰사) 김성근에게 음식을 대접받은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주한 미국공사관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사진 왼쪽). 포크의 일기에 기록된 전라감영 음식(오른쪽). [사진 미국해군역사센터, UC버클리대학 도서관]

주한 미국공사관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사진 왼쪽). 포크의 일기에 기록된 전라감영 음식(오른쪽). [사진 미국해군역사센터, UC버클리대학 도서관]

포크는 전라감영에서 모두 8번의 음식 대접을 받았다. 그는 일기에 “저녁이 되자 나를 위한 연회가 열렸다. 상을 채우고 있는 둥글고 작은 접시에는 10명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이 쌓여 있었다”고 적었다. “이곳 감영은 작은 왕국”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조선말을 할 줄 알았던 포크의 조선 이름은 ‘복구(福久)’였다.

포크는 당시 상차림을 일기에 그려 넣고 음식에 번호까지 매겼다. 밥상 위에는 콩밥·소고기뭇국·닭구이·돼지고기구이·오리고깃국·꿩탕·숯불고기·소고기전·수란·젓갈 등 9첩이 넘었다.

미 해군 중위 출신인 포크는 고종 21년인 1884년 9월부터 12월까지 조선 팔도를 여행하면서 일기 형식의 기록을 남겼다. 전주에는 11월 10일~12일 사흘간 머물렀다. 포크는 138년 전 조선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건물·음식 등을 일기에 자세히 담았다.

전주시가 송영애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교수와 함께 복원한 관찰사 밥상. [사진 전주시]

전주시가 송영애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교수와 함께 복원한 관찰사 밥상. [사진 전주시]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송영애 연구교수는 “포크가 기록한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은 전주의 음식 문화를 알 수 있는 최고(最古)이자 최초(最初)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조선의 음식과 식문화 연구가 드문 데다 다른 감영 관련 기록에도 음식 내용이 없는 현실에서 가치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호남·제주를 관할하던 전라도 최고 지방통치 행정기구다.

과거 전주의 음식하면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풍성한 상차림을 연상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일본인이 일본어로 기록한 『전주부사(全州府史)』에는 “전주의 토착 구가(舊家·한 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집안)의 요리는 그 종류·방법·재료 등에서 호화로움의 극치를 자랑한다. 맛에 있어서는 조선 전 지역을 통틀어도 이와 비할 데가 없다”고 나온다.

전주는 2012년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정작 전주만의 음식 조리법이 기록된 고문헌은 거의 없다. 전주 음식의 계보를 연구해 온 학자들이 포크의 일기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미국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2년 뒤 포크를 조선에 파견했다. 갓 수교한 낯선 나라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포크는 정확한 정보 수집을 위해 조선 곳곳을 여행했다. 조선인 통역과 보교꾼(가마 메는 사람) 등 18명이 동행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포크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수집의 선구자(HUMINT Pioneer)’라고 평가했다.

포크는 당시 28세 나이에도 고종과 명성황후가 중요한 정치 문제를 의논할 정도로 왕실의 신임을 얻었다.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22권(1885년 9월 13일)에는 ‘고종이 건청궁에 나아가 미국 대리공사 포크를 접견했다(御乾淸宮 接見美國代理公使福久)’는 기록이 나온다. 명성황후도 1887년 1월 일본으로 떠나는 포크에게 “자네가 가면, 앞으로 우리가 만날 새롭고 낯선 나라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정직하고 올바른 길을 지적할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포크는 전라감영에서 2박3일간 묵으면서 겪은 일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는 일기에 “감사가 터무니없는 걸 묻기도 했다”라고도 썼다. “미국도 조선만큼이나 좋은 나라입니까?”, “조선의 음식이 미국의 음식보다 더 많습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포크의 일기는 날짜에 따라 장소·시간·기온을 적는 게 기본 구성이다. 길이 단위인 마일(mile)·피트(feet) 등을 비롯해 시간은 분·초까지 기록했다. 밥(Pap)·왕(Wang)·감사(Kamsa) 등 고유명사는 발음 나는 대로 영문으로 표기했고, 여행지와 공간을 그림으로 그리고 방위도 표시했다.

포크가 묘사한 상차림과 비슷한 그림은 1800년대 말 편찬된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나온다. 송 교수는 “저자 미상의 『시의전서』 밥상은 단순히 한자로 밥·국 등을 표기한 형태지만, 포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히 기록해 음식 재료와 조리법 등을 유추할 수 있다”며 “아전들이 동경한 게 전라감영 음식인데 이들이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지주가 되고, 이들 옆에 있던 참모들이 1940~1950년대 식당을 차린 게 전주 전통 음식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2018년부터 송 교수와 함께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을 복원해 왔다. 포크의 일기를 비롯해 전라감영 관찰사를 지낸 서유구의 『완영일록』, 유희춘의 『미암일기』 등 고문서를 참고해 고증했다. 전주시는 지난해 12월 공모를 통해 관찰사 밥상을 판매할 음식점 2곳도 선정했다. 전주비빔밥으로 유명한 ‘가족회관’과 ‘종로회관’이 정찬상(9첩 반상)·소찬상(5첩 반상)·국밥(소고기뭇국·피문어탕국) 등 세 종류의 상차림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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