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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기숙이 고발한다

"민주당 패배, 오롯이 이재명 탓…지금 등판할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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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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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에 나란히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고문. 그래픽=김은교 기자

지난해 10월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에 나란히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고문. 그래픽=김은교 기자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한 달 이상 지났지만 더불어민주당 대응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재명 후보가 1%포인트도 안 되는 표 차로 석패한 데다, 역대 대선 최다득표이다 보니 예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묻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이 후보를 비롯해) 패배한 전임 지도부가 지방선거를 불과 2개월 앞두고 전면에 나서는 걸 허용하자니 국민에게 면구스럽다. 민주당 내부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과연 이런 평가는 합당한가? 만약 그렇다면 누가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걸까.

민주당은 조직의 위기 극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절차인 진단과 대안 탐구를 생략한 채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선거 패배에 대한 객관적 분석 없이 두루뭉술 넘어가니 분열과 여진이 계속된다. 과거 수많은 선거 결과를 분석해 온 경험에 기초해 민주당 패인과 관련한 몇 가지 가설을 살펴보겠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책임론이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없는 대선에서 새로운 두 후보가 맞서거나, 혹은 우리처럼 단임제 국가의 대선에선 과거를 묻는 회고적 투표보다 미래를 보고 찍는 전망적 투표가 지배적이다. 후보의 역량이나 선거전략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출마하지 않은 현직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건 모순이다.

미국 민주당 정권을 보자. 빌 클린턴의 임기 말 지지도는 무려 65%에 달했지만 앨 고어는 패했고, 버락 오바마의 53% 지지도에도 힐러리 클린턴은 패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3선이 허용되었다면 클린턴과 오바마는 낙승했을 거다. 선거 직전 역대 대통령 최고 지지도인 50%에 육박한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2016년 미국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현직 대통령과 대선 후보가 안았다.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2016년 미국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현직 대통령과 대선 후보가 안았다. [AP=연합뉴스]

김대중 지지율 10%대에도 노무현은 당선 

거꾸로, 노무현 후보는 불과 지지율 19%였던 김대중 대통령 계승을 약속해 당선됐고, 박근혜 후보는 20% 초반이었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박 후보의 승리는 박정희의 유산을 가져올 수 있는 후보였기에 가능했다. 박근혜를 제외하곤, 이회창 후보를 포함해 누구도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성공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깨고 현직 노무현 대통령과 차별화했던 정동영 후보의 전략은 대선 패배 요인 중 하나였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적지 않은 유권자가 경쟁 후보 이명박을 지지했고, 상당수는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선 전 50%를 넘나든 정권교체 여론은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 말기에도 정권교체 여론이 55%가 넘었지만 실제로 정권교체가 이뤄지진 않았다. 태도(지지도)와 행태(투표)는 다르다.

둘째, 민주당 지도부 책임론이다. 경선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의 빌미를 줘 원만한 탈락한 이낙연 후보와의 원팀 구성에 성공하지 못했다. 당원 이탈은 당내 민주주의에 있어 새로운 도전이다. 조국 사태 때 35%까지 추락했던 민주당 지지도는 지난 2020년 총선 압승 후 50%를 상회했다. 이번 대선의 공식 선거운동 역시 국민의힘보다 2%포인트 앞선 37%로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선거 직전의 민주당 평균 지지도가 줄곧 40%를 넘었던 걸 고려하면, 조국 사태 이후 계속된 민주당 출신 법무부 장관들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의 갈등이 지지도를 평균 이하로 떨어뜨리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선거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뒤졌다. 이재명 후보 부인의 법인카드 불법사용 논란, 대리처방 의혹 등 예기치 못한 위기에 선대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난 대선 직전의 여론조사 결과. 자료=리얼미터, 뉴시스

지난 대선 직전의 여론조사 결과. 자료=리얼미터, 뉴시스

도덕성과 신뢰 문제 극복 못 한 이재명 

셋째, 이재명 후보 책임론이다.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건 후보와 선거전략의 앙상블이다. 선거운동 초기 문 정부와 차별화했던 이 후보는 30%대 박스권에 갇혔다. 그는 세 번의 의미 있는 지지도 상승을 경험했다.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에서 실용적 경제관을 보인 후 3%포인트 상승, 자영업자 보상법안 시행으로 인한 상승 기류,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이 윤석열 후보를 향해 "정치 보복할 거냐"며 각을 세웠을 때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했다.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 계승을 약속하고 몇 가지 실책에 대해서만 사과했다면 훨씬 유리한 경쟁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가 지난 1월 유튜브 채널 '이재명'에 공개한 유튜브 쇼츠. [유튜브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가 지난 1월 유튜브 채널 '이재명'에 공개한 유튜브 쇼츠. [유튜브 캡처]

이재명 후보는 표가 된다 싶으면 닥치고 돈 뿌리는 정책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혹하다가도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부정적 여론이 우세해지는 게 그가 잠시 내세웠던 탈모 의료보험 지원과 같은 포퓰리즘 공약들이다. 또 용적률 500% 허용은 시민들이 믿지도 않지만 선호하지도 않는다.

상대 후보는 정치에 대한 기본 훈련이나 식견이 부족했기에 처음부터 나는 이재명 후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은 진보 진영 후보에게는 도덕성과 신뢰를 기대한다. 결국 이 후보가 이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이 후보는 TV토론에서 대장동 몸통이 윤석열이라는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신뢰를 잃었다. 여론조사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윤 후보보다 약한 게 신뢰성이었다.

결론적으로, 민주화 이후 10년 단위로 거대 양당이 정권을 주고받았던 10년 주기설, 문 대통령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도, 국민의힘보다 높았던 민주당 지지도, 여전히 진보적인 586 세대의 인구구성을 고려할 때 민주당은 선거 구도상 국민의힘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재명 후보가 받은 표가 역대 최다인 건 양자대결에서 선거인 수 자체가 증가한 결과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오히려 민주당은 수월하게 이겨야 할 선거에서 분패했다는 게 내 진단이다. 정석에서 벗어난 선거전략 탓에 졌다는 얘기다.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걱정스러운 이재명 조기 등판 

이재명 후보는 선거를 치르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과거 여러 잘못에 대한 진솔한 사과,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직후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며 국민과 역사를 보며 묵묵히 가겠다"는 연설, 그리고 불과 24만표 차이에도 곧장 패배를 승복한 연설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대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재명 조기 등판론이 자꾸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 고문이 지금은 대선 패배를 성찰하고 우수 인재를 찾는 데 전념하면 좋겠다. 이재명 팬덤을 기반으로 한 20·30 여성의 민주당 입당은 긍정적 현상이지만,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후보 본인과 지도부에게 너무 빠른 면죄부를 줘서 5년 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출마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섣불리 당권 장악에 나섬으로써 2024년 총선 때 원하지 않는 책임을 지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생명은 민주주의에 있다. 한 개인의 정당이 되는 순간 빛이 바랜다.

[하헌기의 별별시각] 반성도 비전도 없어서 정권 빼앗겼다

더불어민주당의 정권 재창출 실패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 때문이 아니라 이재명 후보의 도덕적 약점과 전략적 실책에서 비롯됐다는 조기숙 교수의 칼럼과 함께 읽으면 좋을 하헌기 전 민주당 부대변인의 글이 있습니다. 그는 "진보 진영의 기본 멘탈리티가 심판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하 전 부대변인의 글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