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계 “이재용·신동빈 사면” 청원에…文, 총수 사면 ‘0명’ 기록 깨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일 청와대에서 재계 총수와 가진 오찬 행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특별사면 얘기가 거론되자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가능성이 커졌다고 관측했지만, 결국 이 부회장은 두 달여 뒤 가석방되는 데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네번째), 구광모 LG 그룹 회장(왼쪽),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대표와 간담회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최태원 SK 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네번째), 구광모 LG 그룹 회장(왼쪽),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4대 그룹 대표와 간담회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 처음이자 마지막 총수 사면 기회  

문 대통령이 퇴임을 앞둔 상황에서 재계에서 다시 대기업 오너 경영인에 대해 사면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25일 ‘경제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한 사면복권 청원서’를 청와대와 법무부에 제출했다. 경제 5단체는 청원서에서 “사회 통합이 절실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인사들에 대한 사면복권을 통해 치유와 통합의 정치를 펼쳐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8월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이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8월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이다. [뉴스1]

문 대통령이 재계의 청원대로 사면에 나설 경우 임기 내 처음이자 마지막 총수급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선후보 때부터 ‘뇌물·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제한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2018년과 2019년엔 경제인·정치인은 사면 대상에서 배제됐다. 다만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사면 대상이 확대돼 2020년에는 정치·노동계 인사를 사면했다. 지난해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해서도 이 같은 ‘금기(禁忌)’를 풀었다.

재계 “위기 극복 위해 기업인 헌신 필요”

재계는 이번 사면 청원을 추진하게 된 배경으로 경제 위기 속에서 역량 있는 기업인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꼽는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경제가 디지털·친환경 대전환기를 맞는 중에 코로나19 장기화와 미·중 패권 갈등,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가 경제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위기 극복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역량 있는 기업인의 헌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창업주 일가가 전문경영인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투자하며 투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해외 연구 사례가 있다”며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황에서 총수들이 기업 경영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인 사면의 역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경제인 사면의 역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주요 기업인이 경영 활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못하면 기업 경영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과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빅 피처’ 안보인다” 투자자 외면하기도 

예컨대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지만, 지난해 말 미국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 빼고는 이렇다 할 굵직한 투자 프로젝트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형 M&A도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올스톱 된 상태다.

이러는 사이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8.3%로 TSMC(52.1%)와 비교해 3분의 1에 그친다. 스마트폰 사업에서는 애플과 중국 업체의 도전을 받으며 점유율(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 18.9%)이 하락하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잘 나가는 회사들이 그리고 있는 ‘빅 픽쳐'가 삼성전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시장 평가도 냉담하다. 지난 한해 외국인은 18조원, 국내 기관투자가는 14조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했다.

롯데 역시 글로벌 기업과의 거래 시 사업 리스크로 인한 부정적 인식으로 경영상 제약을 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경영인이 특별사면되면 M&A 협상이나 현장 경영, 투자 등이 원활해질 수 있다”며 “헬스케어·바이오·모빌리티 등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와 고용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2일 메타버스 주간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2일 메타버스 주간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기업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선진국 수준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 교수는 “국내 기업은 해외에 비해 경영진이 형사 처벌에 대한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형사 처벌 후 경영 활동 자체를 못하게 되거나 경영에 복귀해도 활동이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며 “경영 관련 중대 범죄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민사소송 중심으로 가야 기업의 경영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