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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개혁 63건 건의했더니 5건 수용…여전한 ‘반도체 규제 대못’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규제 전봇대’(이명박 정부)부터 ‘손톱 밑 가시’(박근혜 정부), ‘붉은 깃발’(문재인 정부)까지-. 최근 15년간 정부가 규제 걸림돌을 뿌리 뽑겠다며 내세운 비유적 표현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 완화의 속도가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 같은 국가 핵심 전략 산업에서 여전히 ‘규제장벽’이 높아 점점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협력회사인 반도체 장비 기업 '원익IPS' 직원들이 반도체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협력회사인 반도체 장비 기업 '원익IPS' 직원들이 반도체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규제 개혁 수용률 9.8%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5일 발표한 ‘2021년 규제 개혁 과제 종합건의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규제 개혁 수용률이 1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총이 지난해 12월 6개 분야, 63건의 규제 개혁 과제를 발굴해 국무조정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 건의했더니 이 가운데 수용된 과제는 5건(9.8%)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반도체 부문의 규제 개혁 건의 7건 중 1건만 ‘중장기 검토’로 결정됐다. 7건 중 4건은 ‘수용 불가’로 결론이 났다. 김재현 경총 규제개혁팀장은 “반도체 관련 규제 중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거나 회사가 자체적으로 안정성을 담보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수용 불가능하단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설치 어려운데 정부 "예외 인정 못 해"  

예컨대 반도체 장비 주변의 비계(시공상 설치하는 가설물) 설치 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건의에 대해 정부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현장 내 비계 설치가 어려운 경우 다른 자재로 보강하거나 구조 검토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한 경우는 예외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해왔다. 기존 시설물 간섭 등으로 현장에서 설치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별도의 예외규정이 없어 벌금 등 행정 지적 우려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김부겸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중소기업 규제혁신 대상 행사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망치로 규제 혁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중소기업 규제혁신 대상 행사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망치로 규제 혁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연소기 설치·변경 공사의 완성 검사를 간소화해 달라는 요청도 정부로부터 ‘불가’ 답변을 받았다. 정부는 도시가스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라 월 사용량이 2000㎥ 이상인 연소기와 부속설비의 설치·변경공사는 완성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 역시 업계는 “반도체 업계는 공정 변화에 따라 설비의 증설·철거가 빈번한데 한 대를 설치할 때마다 완성 검사를 받아야 해 설치 즉시 설비의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경총은 대표 설비에 대해 완성 검사를 받은 경우 나머지 동일 모델에 대한 설치 검사는 정기 검사까지 이행하면 되도록 절차를 간소화해 줄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밖에 반도체 고압가스용 실린더캐비닛 방호벽 설치 규제 완화, 반도체 가연성 고압가스 용기 보관 기준 완화 등의 건의도 정부로부터 수용 곤란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나마 정부는 반도체 생산설비 방폭 규제 적용 제외와 관련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의견을 냈다.

경총 “세제 지원보다 규제 완화를”

이에 경총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수용 곤란’으로 분류된 과제도 전면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규제 개혁 핫라인’을 개설해 회원사의 애로사항을 정부에 지속해서 건의하고 추진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

김재현 팀장은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인해 기업이 위험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를 풀어 달라는 것”이라며 “반도체 분야 세액 공제 등 제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선 규제를 풀어줬을 때 생산이 빨라지고 고용·투자가 늘어나는 실질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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