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함 침몰이 푸틴 바꿨다…"굴욕감에 협상카드 접어"

중앙일보

입력 2022.04.25 16:01

업데이트 2022.04.25 16:2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함 침몰 이후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 카드를 접고, 영토 점령 확장 전략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파이낸설타임스(FT)가 이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소식통 3명은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14일) 모스크바함을 침몰시킨 후 격분했다"며 사실상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이 무산됐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이어 "푸틴은 (이 일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흥미를 잃었고, 대신 가능한 많은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푸틴, 지난달까진 합의 심각하게 고려"   

러시아 흑해함대를 이끈 기함 모스크바함의 침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해군의 최대 수모"란 평가가 나왔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자국군이 발사한 대함 미사일 넵튠 두 발이 모스크바함에 명중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이후 우크라이나의 넵튠 미사일 제조 공장을 공격하면서 모스크바함 피격설에 힘이 실렸다.

이들 소식통에 따르면 당초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고전하자 키이우와의 합의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5차 평화협상을 통해 양국의 협상은 진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모스크바함이 지난해 11월 16일(현지시간) 흑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군함 추적 임무를 마친 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항구로 입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모스크바함이 지난해 11월 16일(현지시간) 흑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군함 추적 임무를 마친 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항구로 입항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이달 초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 증거가 공개된 후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협상은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 12일 푸틴은 평화협상에 대해 "막다른 길(dead end)에 다다랐다"며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이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다.

소식통은 이때까지도 "합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푸틴은 (협상에 대한 생각이) 왔다갔다 했다"며 "푸틴은 이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푸틴의 심경은 모스크바함 침몰 후 변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소식통은 "(모스크바함 침몰 후) 푸틴은 어떤 서명에도 반대했다"며 "모스크바함 침몰은 푸틴에게 굴욕감을 줬고, 승자가 아닌 듯이 됐다"고 밝혔다.

서방 "러시아, 애초 협상 의지 의문"  

또 다른 소식통은 "푸틴은 러시아군의 고위 관계자나 러시아 방송에 의해 묘사되는 전황을 믿고 왜곡된 견해를 갖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크게 이기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2일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의 통화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피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모스크바함의 침몰로 푸틴 대통령의 자존심이 손상되면서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커지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욱 위험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7일 촬영된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함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일 촬영된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함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서방 일각에선 러시아가 애초에 평화협상을 통한 해결 의지가 없었고, 공세를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모스크바함 침몰 이전부터 미국 정부 관리들은 푸틴이 전쟁 목표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장악으로 변경하고, 오는 5월 9일(2차 대전 승전 기념일) 전쟁 승리를 자축하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유엔 총장 회담 성과 의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오는 26일 푸틴 대통령, 28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각각 현지에서 만나 회담한다. 외교적 해결의 전환점이 될지 주목받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선 벌써부터 부정적인 관측이 나왔다.

이고르 조브크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부보좌관은 24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성과만 낼 수 있다면 좋지만, 구테흐스 총장이 주선하는 평화협상이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CBS와 인터뷰에서 "구테흐스의 이번 방문이 러시아와의 외교적 돌파구를 시사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며 "러시아와 푸틴은 협상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날 텔레그래프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구테흐스 총장에게 "푸틴 대통령이 이번 총장의 모스크바 방문을 크렘린궁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선전 도구로 조작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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