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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살인' 검사 "검수완박안 통과 땐 수사 개시도 못해…재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지난 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지난 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계곡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사가 여야가 합의한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이 실현되면 "수사상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검 형사2부 박세혁 검사는 지난 24일 검찰 내부 전산망(이프로스)에 "중재안대로 검찰의 보완수사 혹은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가 좁은 의미의 동일성, 단일성 기준에 따라 운용된다면 살인 범행 및 보험금 편취 미수 범행의 본체를 규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범 추적 및 범인도피 등 사범 추적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지난 22일 박 의장의 중재에 따라 현행 검찰의 6대 범죄 수사 범위 중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4대 범죄 수사는 즉시 삭제하고 '부패·경제'는 남기되, 이 두 범죄도 1년 6개월 안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등 새 수사기관이 출범하면 폐지하도록 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중재안은 또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보완 수사할 수 있는 요건으로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한다’는 단서도 붙었다. 이날 글을 올린 박 검사를 포함한 법조계는 단일성·동일성 원칙이 별건 수사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검찰의 보완수사 재량과 경찰 견제 권한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박 검사는 "(계곡 살인 주범) 이은해, 조현수 등을 장기간 수사하고 있는 '평범 오브 평범'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처럼 평범한 검사가 무엇이라 논평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럴 생각도 없다"면서 일선 검사가 판단하는 중재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이어 경찰 송치 사건과 단일성·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 금지한다는 중재안의 모호한 규정 때문에 검찰 보완수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지거나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박 검사는 "범죄는 다른 인간사의 모든 사실이나 상황처럼 두부나 카스텔라처럼 딱 절단되어 구분 지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일성 혹은 동일성이라는 개념이 법률 규정 혹은 관념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 실무현장에서는 그 기준과 처리가 모호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수사상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왼쪽),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후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왼쪽),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후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또 "만약 중재안에 따른다면 저희가 확보한 차고 넘치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양양 복어독 살인미수와 용인 낚시터 살인미수는 최초 범죄 사실과 범행 일시, 장소, 범행수법 등이 판이하여 수사 개시조차 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 검사는 "검사의 눈앞에 이은해와 조현수의 별건 살인미수 범죄가 명백히 보임에도 칼을 꺼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면,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일 것"이라며 "결국 중재안에 따르면 거액의 보험금을 목적으로 반년에 걸쳐 장기간 수차례 고인을 살해하려고 한 이은해, 조현수 등의 영악한 범의와 사건의 실체는 영원히 암장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라고 수사의 차질을 예상했다.

박 검사는 "중재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억울한 죽음과 같은 범죄피해를 제대로 밝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관념이 파괴되어 사적 보복만이 난무하는 무법지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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