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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중, 김정은이 사는 세계의 절반…우리가 잘 모르는 그 거래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19년 6월 2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9년 6월 2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세계가 냉전으로 회귀하듯 다시 분열하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대화와 북미 비핵화 협상에 나섰다. 한반도에서만큼은 냉기를 녹이는 훈풍이 부는 듯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바라본 세계는 미국과 한국뿐이었을까. 돌이켜보니 그는 일찌감치 신냉전을 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전통적 우방국과의 정치ㆍ경제 협력 강화  

2018년 전까지 외국 정상을 만난 적이 없던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쿠바, 베트남 정상들을 만났다. 그는 네 번 베이징에 갔고, 2차 북미회담이 결렬한 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평양에 갔다.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래 가장 빨리 정상화하고 있다.

중국 접경도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바라 본 북중 국경다리와 북한 신의주. 연합

중국 접경도시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바라 본 북중 국경다리와 북한 신의주. 연합

2019년 4월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북러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올라섰다고 자평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였다. 러시아에서는 경제 관련 고위 인사가 다수 참석했다. 그전까지 북한 대외무역에서 1%대였던 러시아의 비중은 2020년에 4.94%로 급증했다.

북한과 쿠바는 2017년에 경제협력 의정서에 조인했다. 2018년 11월에는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부부가 평양을 방문했다. 이들은 김정은 위원장 부부의 영접, 명예위병대 사열, 무개차 퍼레이드, “빛나는 조국” 관람 등,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동일한 예우를 받았다.

2019년 북미 정상회담차 하노이를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은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을 만나 베트남과의 관계 회복을 예고했다. 김정은 집권 이래 단 한 번도 북한의 10대 무역국에 들지 못했던 베트남은 2019년부터 3위 교역국으로 지위가 급상승했다.

2019년에 시리아와 북한은 무역과 노동, 과학기술 등 수십 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2020년에 북한은 이란에 합동무역기구를 만들자고 하고, 이란은 북한에 ‘제재 국가 모임’ 발족을 제안하는 등 양국의 협력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겉으로 드러난 교류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들 국가가 북한에 불법으로 유류를 공급해주거나, 북한 노동자를 북송하지 않고 현지에 남겨두게 하거나, 북한으로부터 무기나 관련 기술을 구매하는 등의 정황이 미국 정부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등을 통해 적발돼 왔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경제 활동 증가 및 다양화

북한은 제재가 닿지 않는 사이버 공간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차이나유니콤(ChinaUnicom) 외에 2017년 10월부터 러시아의 트랜스텔레콤(TransTelekom)에서 추가로 인터넷망을 공급받았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해외 인터넷 접속 양이 300% 증가했다.

미국 법무부가 전 세계의 은행과 기업에서 13억 달러(약 1조 4천억원) 이상의 현금 및 가상화폐를 빼돌리고 요구한 혐의로 기소한 북한 정찰총국 소속 3명의 해커들. 미 법무부

미국 법무부가 전 세계의 은행과 기업에서 13억 달러(약 1조 4천억원) 이상의 현금 및 가상화폐를 빼돌리고 요구한 혐의로 기소한 북한 정찰총국 소속 3명의 해커들. 미 법무부

해외 인터넷에 대한 접근 권한은 극소수 정권 엘리트에게만 주어지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인터넷 주사용 시기가 주말이나 저녁 시간대에서 주중 시간대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해외 인터넷 사용이 업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업무 중 하나는 외화벌이로 판단된다. 랜섬웨어로 자금을 탈취하고, 가상화폐를 훔치거나 범죄 수익금을 가상화폐로 세탁한다. 2019년에 유엔 전문가 패널이 확인한 수입만 20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 블록체인 비디오게임에서 6억 달러 이상의 가상화폐를 해킹한 배후로 북한 연계 조직 라자루스가 지목됐다.

외화벌이뿐 아니라, 해외 과학기술 정보 탈취도 중요한 업무다.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습득한 외국의 독자적인 선진 기술들이 쉽고 저렴하게 북한의 주체적 역량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당장 수익을 내진 못 할지라도, 북한의 경제 발전에 큰 동력이 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이 사는 세계의 절반

북한은 그간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경제적 이익 추구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폐쇄적인 세계를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또한 사이버 공간을 누비며 제재로 막힌 경제의 활로를 찾고 있다. 그 광활한 세계에서 북한이 무엇을 얻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4월 15일 북한 김일성 생일을 맞아 평양에서 막 올린 조명축전에서 시민들이 관람하고 이싸. 노동신문

4월 15일 북한 김일성 생일을 맞아 평양에서 막 올린 조명축전에서 시민들이 관람하고 이싸. 노동신문

그 불투명한 세계의 절반이 더욱 커지고, 공고해지려 한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정보를 판단하고 전략을 수립할 때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우리보다 더 넓은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을 거라는 점, 그리고 북한이 속한 불투명한 세계가 북한에 더 익숙하고, 갖기 쉬운 선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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