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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의 번스 미 대사 사용 설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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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중국이 미국 연구와 관련해 과연 얼마만큼의 공을 들이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끈다. 중화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多維)는 최근 중국 하이난(海南)대학 일대일로(一帶一路) 연구원이 실시한 조 바이든 미 정부의 초대 주중대사인 니콜라스 번스에 대한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원은 번스 연구를 위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분석 모델을 만들고 여기에 경제학, 국제정치학, 국제관계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의 이론과 경험, 통찰, 그리고 인맥 조사 등을 결합해 분석에 나섰다. 이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번스 대사가 미·중 관계의 중요한 연결고리란 점이 연구의 배경이 됐다고 하는데 미국을 대하는 중국의 지극정성 자세가 읽힌다.

조 바이든 미 정부의 초대 주중대사인 니콜라스 번스가 중국 도착 후 격리를 끝내고 이달부터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정부의 초대 주중대사인 니콜라스 번스가 중국 도착 후 격리를 끝내고 이달부터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구원은 자체 개발한 독자적인 분석 모델을 통해 번스를 연구한 뒤 그 주요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미·중 갈등의 시대에 번스가 중국에 어떤 압력을 가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조사해 열 가지를 추려낸 뒤 그 순위를 매겼다. 번스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중국에 압력을 가할 1순위 사항은 무역 문제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 시작된 미·중무역전쟁이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란 이야기다. 이는 미국의 대중 외교 최고 관심사가 경제적 이익에 있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2순위엔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가 중시하는 인권 문제가 올랐고, 미·중 기술패권 전쟁과 관련된 기술 문제는 3순위에 랭크됐다. 이어 코로나 19 사태, 자유, 문화교육, 투자, 관광, 대만해협, 남중국해 문제 순으로 조사됐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이 뒷순위에 포진한 걸 볼 때 이른 시일 내 미·중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은 번스를 어떻게 볼까. 중국 정부는 일단 미국이 중국에 꽤 중량급 인사를 보냈다는 평가다.

미 정부가 상하이주재 영사관의 필수 인력이 아닌 직원에게 코로나를 이유로 상하이를 떠날 수 있게 하자 중국 당국이 반발하고 있다. [뉴스1]

미 정부가 상하이주재 영사관의 필수 인력이 아닌 직원에게 코로나를 이유로 상하이를 떠날 수 있게 하자 중국 당국이 반발하고 있다. [뉴스1]

미·중 수교 초기 양국의 신뢰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을 때 미국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대사를 지내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직업 외교관인 데이비드 브루스를 중국에 보냈는데 번스의 체급이 브루스에 필적한다는 이야기다. 번스는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27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며 그리스와 나토 대사를 역임했다. 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까지 무려 네 개의 정권에서 일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에서 국무부 정무차관에 이르기까지 주요 직책을 전전한 뒤 퇴임 이후엔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과 외교를 강의하는 등 학문적 소양도 뛰어나다.
일각에선 중국통이 아니라고 말하나 대학에서 미·중 관계를 강의하고 중국에 관한 칼럼도 곧잘 게재하는 등 중국에 대한 이해가 얕은 건 결코 아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외교 경험이 풍부해 미·중 관계가 충돌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지지 않도록 조율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민간의 번스에 대한 호감도는 낮은 편이라고 연구원은 말했다. 중국 여론조사에서 번스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은 25%에 그쳐 1995년 이래 취임한 미 대사 중 가장 낮았다. 반면 번스를 부정적으로 보는 중국 네티즌은 35%에 달해 이 또한 지난 27년간 주미 대사에 주어진 평가 중 가장 나빴다. 이 같은 결과는 번스가 신장(新疆)과 대만 문제 등에서 강성 발언을 한 이유도 있지만, 미·중 관계가 긴장 상태인 현 상황을 고려하면 누가 와도 중국에서 후한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니콜라스 번스 미 주중대사(왼쪽)는 지난 6일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는 등 이달 들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중국 펑파이망 캡처]

니콜라스 번스 미 주중대사(왼쪽)는 지난 6일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는 등 이달 들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중국 펑파이망 캡처]

연구원은 또 번스의 사회 관계망 조사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같은 번스의 상사 외에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 20대 사항을 조사해 열거하면서 그중 다섯 가지를 중국은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미국의 안보와 외교 문제를 주로 논의하는 아스펜전략그룹(ASG)과 ASG가 매년 개최하는 아스펜안보포럼이다. 번스가 한때 이곳에서 일하며 중국공산당 중앙당교와 정치대화를 연 적도 있다는 것이다. ASG는 번스의 사회 관계망 중 3위, 아스펜안보포럼은 5위에 올랐다.
두 번째는 번스가 퇴직 후 몸을 담았던 하버드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의벨퍼(Belfer)센터다. 국제안보와 과학, 기술, 환경 문제 등을 다루는 이 센터에서 번스는 ‘미래외교’ 프로젝트의 창시자로 통한다. 번스의 관계망에서 이 미래외교 프로젝트는 4위, 케네디학원은 6위, 벨퍼센터가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원은 번스의 사회 관계망에서 주목해야 할 언론인 한 명을 중국이 눈여겨봐야 할 세 번째로 꼽았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현재 케네디학원의 강사이자 미래외교 프로젝트의 고급 연구원으로 번스의 관계망에서 13위에 올랐다.

병상 4만 개의 임시 격리소로 탈바꿈한 중국 상하이의 신국제전람센터. 미국이 ‘중국 여행 자제’ 성명을 내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병상 4만 개의 임시 격리소로 탈바꿈한 중국 상하이의 신국제전람센터. 미국이 ‘중국 여행 자제’ 성명을 내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네 번째는 미 국가민주기금회(NED) 총재인 대몬 윌슨으로 번스와는 나토 관련 방면에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국무부에서 중국 담당으로 일하기도 했고 또 미국의 주중대사관에서도 근무해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다. 번스의 관계망 19위에 랭크됐다. 중국이 주목해야 할 번스의 사회 관계망 다섯 번째로 일대일로 연구원은 미 스포츠팀들을 꼽았다. 번스가 미 프로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NFL 미식축구팀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열렬한 팬이란 것이다. 핑퐁외교를 통해 미·중 수교의 물꼬를 텄던 중국이 미·중 갈등 완화를 위해 스포츠 분야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은 번스에 대한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중국 당국에 번스 사용 설명서를 내놓았다. 우선 중국의 관련 부서가 번스를 따뜻하게 대해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번스를 중국의 학술기구나 대학 등으로 초청해 강연과 좌담회 등을 개최하면서 그에게 중국이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중국의 관련 부서가 번스에게 미·중의 차이와 협력에 대해 성의를 갖고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하이난대학 일대일로연구원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미중 관계의 연결고리인 니콜라스 번스 미 대사를 분석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하이난대학 일대일로연구원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미중 관계의 연결고리인 니콜라스 번스 미 대사를 분석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런 노력을 통해 중국이 번스의 마음을 사게 되면 미국의 대중 압박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 압박의 강도를 약하게 할 수는 있다는 게 연구원의 주장이다. 여기서 몇 가지 상념이 든다. 하나는 이 연구원의 번스 연구가 중국 각 싱크탱크의 수많은 번스 연구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이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를 맞아 미국 연구에 기울이는 공력이 절대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중국이 과연 한국 새 정부에 대한 연구에 있어선 과연 얼마만큼의 공을 들일까 하는 점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신조로 삼는 나라 중국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석에도 정성을 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우리는 시진핑(習近平)이 이끄는 중국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의 축적된 연구 결과를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자신 있다고 말할 사람이 별로 없는 게 국내 현실인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번스 분석 #미국의 중국 압박 10대 항목 순위 추려내고 #번스에 영향 미칠 인맥과 스포츠팀도 찾아내 #중국은 한국 새 정부 분석에도 큰 공 들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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