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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127년 만에, 여성 작가 뚜렷한 존재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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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출범 이래 최다 여성 작가 출품을 기록했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최고 작가상을 받은 미국 작가 시몬 리의 청동 조각 ‘브릭 하우스(Brick House)’. [연합뉴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출범 이래 최다 여성 작가 출품을 기록했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최고 작가상을 받은 미국 작가 시몬 리의 청동 조각 ‘브릭 하우스(Brick House)’. [연합뉴스]

우리가 마주했던 수많은 미술 작품은 남성 작가, 특히 백인 남성 작가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성은 오랫동안 작품 속 대상이었고, 작가라고 해도 존재감 없이 묻혀 있거나 지워진 경우가 많았다. 그것을 깨닫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이 지난 23일(현지시각) 이런 뜨끔한 질문을 세상에 던지며 개막했다.

미국관 대표작가로도 참여한 시몬 리가 미국관 앞에 선보인 조각 ‘위성(Satellite)’. [연합뉴스]

미국관 대표작가로도 참여한 시몬 리가 미국관 앞에 선보인 조각 ‘위성(Satellite)’. [연합뉴스]

3년 만에 막을 올린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여성’이라는 이름의 초강력 태풍을 몰고 왔다. 두 흑인 여성 예술가가 올해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나란히 받았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작가 시몬 리(55)가 본 전시 부문 황금사자상(최고 작가상), 영국관 대표작가 소냐 보이스(60)가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평생공로상 역시 카타리나 프리치(66·독일), 세실리아 비쿠냐(74·칠레) 등 두 여성 작가에게 돌아갔다.

시몬 리

시몬 리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개막 전부터 ‘여성’이라는 화두로 주목받았다. 제목이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인 올해 비엔날레 총감독은 여성인 이탈리아 출신 세실리아 알레마니(뉴욕 하이라인 아트 감독 겸 수석 큐레이터)다. 본 전시엔 58개국 작가 213명이 참여했는데, 여성이 188명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127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작가가 남성보다 많다. 가디언은 “역사적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 참여작가 중 10%가 여성이었고, 최근 몇 년간 30%까지 증가했다”며 “알레마니 총감독이 이끈 (올해) 참여작가의 약 90%가 여성”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여성 설치미술가 정금형(42), 이미래(34)가 본 전시에 초청받았다.

영국관에서 소냐 보이스의 사운드 설치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 [연합뉴스]

영국관에서 소냐 보이스의 사운드 설치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 [연합뉴스]

본 전시 최고 작가상을 받은 리는 미국관 앞에 대형 흑인 여성 청동 조각 ‘브릭 하우스(Brick House)’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올해 비엔날레 심사위원장 아드리엔 에드워즈(휘트니 박물관 큐레이터)는 리의 작품에 대해 “엄밀하게 연구되고,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구현된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리는 검은 액체가 거울처럼 사방을 비추는 논밭 형태의 공간에서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흑인 여성 조각도 선보였다. 오랫동안 소외돼온 흑인·여성·원주민의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국가관 부문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보이스는 작품 ‘그녀 방식으로 느끼기(Feeling Her Way)’를 통해 영국 음악사에서 주류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여성 뮤지션을 부각했다. 흑인 여성 뮤지션의 음악을 다룬 비디오, 콜라주, 음악, 조각을 결합한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보이스는 “영국 음악 시스템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것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심사위원단은 “사운드를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 읽기를 제안했다”고 평가했다.

소냐 보이스

소냐 보이스

평생공로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시각예술가 겸 시인인 비쿠냐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비중 있게 소개됐다. 돌·나무·조개 껍질 등 자연 재료와 전통적 직조 기술을 결합해, 생태·공동체·사회 정의 등 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를 다뤄왔다. 비쿠냐는 현대차가 후원하는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 터빈홀 전시 ‘현대 커미션’ 올해의 작가로도 선정돼 오는 10월 작품 공개를 앞뒀다.

알레마니 총감독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남녀 비율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다들 이 자체에 집착하고 있다”며 “그동안 미술계에서 남성이 대다수였던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게 오히려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이스와 리 등이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첫 흑인 여성 작가로 언급되는 건 피곤한 일”이라며 “미국관이 1930년에, 영국관이 1912년에 지어졌지만, 흑인 여성이 그것을 차지하는데 시간이 지금까지 걸렸다는 게 더 당혹스럽다. 우리는 충격을 넘어 과거를 반성하고, 역사를 재해석하고, 어떻게 우리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철 작가의 설치작품 ‘채도’가 걸려 있는 한국관. [사진 문화예술위원회]

김윤철 작가의 설치작품 ‘채도’가 걸려 있는 한국관. [사진 문화예술위원회]

공식 개막에 앞서 20일 개관한 한국관은 ‘나선’을 주제로 김윤철 작가의 현장 드로잉 1점과 설치작품 등 총 6점을 선보였다. 미술 전문매체 아트뉴스페이퍼는 이번에 꼭 봐야 할 국가관 전시로 미국,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노르딕, 루마니아와 함께 한국을 꼽았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당초 2021년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팬데믹으로 연기돼 올해 열렸다. 1895년 시작한 베니스비엔날레가 제때 열리지 못한 건 제1차 세계대전 때를 빼곤 처음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 27일까지 계속된다.

한편, 비엔날레 기간 베니스에서 박서보(90), 하종현(87), 이건용(80) 등 한국 미술계 거장들이 나란히 전시를 연다. 특히 박서보 전시는 영국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주최하며, 이사무 노구치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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