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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한슬이 고발한다

내각 19명 중 11명이 60대…이러고도 미래를 말하겠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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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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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73세의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대부분 60대 인사들이다. 그래픽=김은교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0일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73세의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대부분 60대 인사들이다. 그래픽=김은교 기자

윤석열 정부의 첫 내각 명단이 모두 공개됐습니다. 윤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운동 당시부터 강조했듯 할당이나 안배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후보자 19명 중 무려 11명이 60대 이상이었습니다. 당선인이 능력 하나만 보고 고른 분들이니 의심할 여지 없이 실력과 경륜을 갖췄겠지만, 우려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후보자들이 경륜을 쌓았던 시절과 2022년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의 괴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우리 정치인들은 유독 '마중물'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본인이 당 대표로 치른 대선에서 패배했는데도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는 “지선 승리 마중물이 되겠다"고 했고,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단일화 이전 대선 후보 시절 “새 시대 마중물이 되겠다”는 출마 선언을 했죠. 다들 알다시피 재래식 펌프를 이용해 지하수를 퍼 올리려면 미리 일정량의 물을 펌프에 부어줘야만 하는데, 이때 부어주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부릅니다. 마중물의 비유 ‘능력’이 좋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번 기억을 되짚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래식 펌프를 이용해 물을 길어 올린 것이 언제였을까요?

젊어지는 사회, 뒤처지는 정치

1991년생인 저는 마중물이라는 단어를 그저 글로만 배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부 통계를 보면 제가 태어나던 해의 서울시 수도보급률이 이미 99.9%였습니다. 수돗물이 아니라 지하수를 퍼 올린다는 행위는 너무 어색합니다. 비단 저뿐일까요? 서울 수도보급률이 90%를 넘은 게 1977년이니, 마중물을 직접 부어보긴커녕 재래식 펌프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미 40대입니다. 이처럼 연령대별로 경험한 시대가 너무나도 다르다 보니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다릅니다.

가령 MZ세대에겐 데이터 인프라가 펌프 사용법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도 휴대전화로 간이 와이파이를 만드는 핫스팟 같은 기술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죠.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디지털과 데이터,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려면 사실상 사어(死語)가 된 마중물 같은 단어보다 핫스팟이 더 익숙한 세대가 내각에 있어야만 합니다.

네이버 최수연 대표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네이버의 미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네이버 최수연 대표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네이버의 미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그런데 이번 내각에서 가장 젊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49)를 제외하면 심지어 50대 초반도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후보자(53)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제게는 정말 충격적입니다. 이미 기업에선 30~40대의 젊은 임원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습니다. 1981년생인 네이버 최수연 대표이사(41)야 예외적이라고 하더라도, 삼성이나 LG·SK 같은 대기업도 임원 절반이 X세대 이하입니다. 후보 시절 예고했던 파격적인 ‘30대 장관’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평균연령 60세를 훌쩍 넘는 내각은 우리 사회 평균으로 봐도 낯선 구성입니다. 정치만 이렇게 사회와 이질적인 인적 구성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각 세대별 강점 달라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나이가 들면 역량이 떨어진다거나, 나이를 이유로 무조건 물러나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고령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윗세대의 근면성과 책임감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조직된 업무를 꾸준히 처리하는 일을 수십년 반복한다는 것. 이제야 사회초년생 티를 벗고 있는 저로서는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면 제 또래 세대는 어떤가요? 저도 그 일원이지만 MZ세대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임명묵 작가가 『K를 생각한다』에서 지적했듯  '모든 종류의 책임과 간섭을 거부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를 갖고 움직이기에 윗세대가 보여주는 근면성과 책임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날 때부터 디지털 문화에 친숙했고, 지금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의 수혜를 입고 있습니다. 최근의 K팝 열풍을 비롯해 한국 문화 콘텐트가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MZ 세대만의 경험이 MZ 세대만의 강점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런 또래 세대의 강점에는 무심한 상태로 ‘경험 부족’에만 혀를 차면 무척 황당한 일들이 생깁니다. 2013년 한국철도공사에서 출시한 철도 예매 앱 이름은 ‘코레일톡’입니다. 단순히 철도 예매 관련 기능만 있고 메신저 기능이 없는데도 뜬금없이 ‘톡(talk)’이 붙은 이유가 뭘까요. 한 가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즈음에 카카오톡이 전 국민 메신저 앱으로 떠오른 터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앱들이 메신저 기능과 무관하게 'OOO톡’이라는 명칭을 남발했거든요. 수십 년 전 최첨단을 강조할 때 아무 데나 ‘콤퓨타’를 붙이던 것과 유사한 일이 무려 2010년대에 일어났던 겁니다. 철도 분야에선 풍부한 경륜을 쌓았을지 모르지만 디지털 경험은 부족하다는 인지조차 하지 못해서 빚어진 일이 아닌가 합니다.

젊은 내각은 할당 아닌 투자

내각이 조금 더 젊어져야 하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이번 내각의 최고령 인사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73)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까지 지낸 분이니 경륜이나 능력 면에서 감히 흠잡을 사람이 없겠죠. 그렇지만 70세가 넘은 고령이라 총리직 수행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저는 한 총리 후보자의 나이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두 번째로 총리에 지명될 수 있는 건, 그가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했을 때가 58세였기 때문입니다.

경제부총리 시절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국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 그가 노무현 정부 총리로 지명될 때 58세였다. [중앙포토]

경제부총리 시절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국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 그가 노무현 정부 총리로 지명될 때 58세였다.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는 인사와 관련한 파격이 많았습니다. 기존 인사 관행을 깨고 학력·나이·서열·성별과 무관하게 다양한 사람을 두루 등용했습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윤석열 내각보다 훨씬 젊은 내각이었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 첫 내각 평균연령이 54.5세였으니까요. 임기 내내 장관직 평균 연령을 내보아도 55.9세입니다. 15년 지난 지금도 당시 주역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그중 일부가 행정부로 다시 복귀할 기회를 얻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지역 안배이니, 성별이나 세대 할당이니 하는 형식적 정의를 논하기에 앞서 젊은 내각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미래세대 양성이란 결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경륜과 업적으로 증명된 능력만 고려하면, 40대가 60대 후보자보다 뛰어나기 힘들 겁니다. 능력은 기본인 엘리트층 내부에서 20여 년의 시차를 뛰어넘는 정도로 압도적인 능력을 보이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경험이 다른 각각의 세대는 모두 그 나름의 다른 강점을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가 새 정부의 주요한 목표라면 그 무게추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으로 기울어지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마중물은 새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부어주는 것 아니었는지요? ‘나눠먹기식’ 할당은 거부해야겠지만, 미래세대 투자로서 다음 인선은 조금 더 젊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