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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국회의원 부하 격?…'이재명 효과'에 금배지도 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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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제21대 국회의원 배지. 99%는 은이며 미량의 공업용 금으로 도금해 만들었다. 분실 후 추가 구매 가격은 3만5000원. 성별 구분 없이 자석형 부착식으로 제작됐다. 최근 금배지의 정치적 무게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가벼워졌다. 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 배지. 99%는 은이며 미량의 공업용 금으로 도금해 만들었다. 분실 후 추가 구매 가격은 3만5000원. 성별 구분 없이 자석형 부착식으로 제작됐다. 최근 금배지의 정치적 무게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가벼워졌다. 연합뉴스

6·1 지방선거는 1995년 지방자치제가 완전하게 부활한 이래 8번째 맞는 선거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둘러싼 비효율성 논란은 꾸준하지만 ‘내 지역 일꾼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원칙은 확고해졌다.

이렇듯 지방자치제가 30년을 향해 가면서 광역단체장(시·도지사)과 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의 몸값은 초창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는 대통령으로 가는 요직으로 여겨지고, 다선 국회의원이 되면 광역단체장 잠재적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부하 격(格)으로 치부되던 기초단체장의 위상도 상당히 높아졌다.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선 현직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에 도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의힘 강기윤(경남 창원 성산·재선) 의원은 창원시장 공천을 신청했지만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13일 강 의원을 컷오프(원천 배제)했다. “성산에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국민의힘이 유리한 곳이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강 의원은 이에 반발해 재심까지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지난 20일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 창원시장 도전했지만 컷오프

더불어민주당 김병욱(경기 성남 분당을·재선) 의원은 당초 성남시장 출마가 유력할 것으로 예상됐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0일 성남시장 선거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지정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도 출마 의지가 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튿날인 21일 김 의원은 “민생을 위한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실제 출마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성남시장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었다.

2020년 4월 15일 총선 당일 밤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인사하고 있다. 당시 황 대표는 총선 대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오종택 기자

2020년 4월 15일 총선 당일 밤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인사하고 있다. 당시 황 대표는 총선 대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오종택 기자

다선 경력의 전직 의원이 기초단체장에 도전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자가 상당수 생겨난 국민의힘에선 도전자 숫자가 상당하다. 이미 본선 진출권을 따낸 전직 의원도 여럿이다. 19대 국회에서 함께 활동한 김용남 전 의원과 이상일 전 의원은 23일 각각 수원시장 후보와 용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이 전 의원이 후보가 되기까지 용인시장에는 4선 출신으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대표를 지낸 한선교 전 의원과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은희 전 의원까지 3명의 전직 의원이 경쟁했었다. 한 전 의원은 컷오프를 당했고 권 전 의원은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공천을 받기 위한 도전자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서울에선 재선 출신의 정문헌·이성헌·이은재 전 의원이 종로·서대문·강남구청장에, 18대 국회에서 활동한 유정현 전 의원이 서초구청장에 각각 도전하고 있다. 경기도에선 4선 출신의 신상진 전 의원, 재선 출신의 주광덕 전 의원과 이현재 전 의원이 각각 성남시장, 남양주시장과 하남시장을 노리고 있다. 18대와 16대 국회에서 각각 활동한 홍장표 전 의원과 심규철 전 의원은 안산시장과 군포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강원도에선 19대 국회에서 활동한 이강후 전 의원이 원주시장 공천에서 배제되면서 무소속 출마 의지를 밝히고 있다. 경남에선 재선의 김한표 전 의원이 거제시장 후보 공천을 기대하고 있고, 4선의 김재경 전 의원은 창원시장에 도전했지만 경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21대 총선 민주당 압승하면서 낙선자 국민의힘 전직 의원 대거 출마

지난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에선 기초단체장으로의 ‘하향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다. 경기도에선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민희 전 의원이 남양주시장에, 충남에선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규희 전 의원이 천안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이처럼 격(格)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은 여러 요인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당장 일자리가 없는 전직 금배지 입장에선 2년 뒤 치러지는 총선을 마냥 기다리기가 어렵다. 2년 뒤에 당선은 고사하고 공천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 형편에 따라선 경제적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눈 앞에 있는 지방선거를 그냥 보내기 힘든 이유다. 게다가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란 위상은 있지만 실제 행정 권한은 기초단체장이 훨씬 크다. 각종 인·허가권을 비롯해 선거 때 자신을 도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일자리도 많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D-40을 하루 앞둔 지난 21일 경기 수원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정책선거와 투표독려 홍보 포스터를 검수하고 있다. 뉴스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D-40을 하루 앞둔 지난 21일 경기 수원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정책선거와 투표독려 홍보 포스터를 검수하고 있다. 뉴스1

올해 1월 13일 새로운 형태의 지방자치단체인 특례시가 출범한 것도 영향이 크다. 2020년 12월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경기 수원·고양·용인과 경남 창원은 특례시 자격을 얻었다. 아직까지는 광역단체로부터의 권한 이양이 미미하지만 특례시 권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향후 ‘특례시 지원 특별법’이 제정될 가능성도 있다.

시·도지사 아니지만 전국 스타 부상한 ‘이재명 효과’ 여파도

‘이재명 효과’의 영향도 있다. 2010년부터 8년간 두 번의 임기 동안 성남시장을 지낸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은 시장 시절의 인지도를 기반으로 2018년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에 당선됐고, 지난해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발돋움했다. 그래서 수원·고양·용인·창원 등의 특례시장이 되면 정치적으로도 광역단체장 못지않은 위상을 누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다선 의원의 기초단체장 도전을 여의도에선 마냥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국민의힘 경기도 지역의 한 당협위원장은 “그동안 지역에서 당원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 이미 국회의원으로서 천수를 누려놓고 또다시 기초단체장까지 노리는 건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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