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참았다" 분노의 여행…항공권 1500만원 넘어도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2022.04.23 05:00

업데이트 2022.04.23 11:59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따라 대형 항공사들의 국제선 유류할증료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가 붐비고 있다.  이날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5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거리 별로 3만3800~25만6100원이 부과, 2016년 5월 유류할증료 거리 비례구간제가 적용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뉴스1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따라 대형 항공사들의 국제선 유류할증료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가 붐비고 있다. 이날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5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거리 별로 3만3800~25만6100원이 부과, 2016년 5월 유류할증료 거리 비례구간제가 적용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뉴스1

초등학교 2학년과 5학년 자녀를 둔 김민석(47·서울 공덕동)씨는 올여름 미국 하와이나 올랜도 디즈니랜드로 휴가를 계획 중이다. 문제는 4인 가족 왕복에 1500만원이 훌쩍 넘는 항공권 가격. 김 씨는 “1년만 참으면 훨씬 싸게 갈 수 있을 것 같아 고민이 되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 가족여행은 제주도 한 번뿐이었다”며 “돈이 들더라도 제대로 멀리 떠나고 싶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지고 일상 회복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해외여행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년 넘게 억눌렸던 수요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보복여행’ ‘분노의 여행’이란 말이 나온다.

최근 한달 해외 비행기표 11배 폭증  

이런 현상은 이미 유통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22일 G마켓과 옥션에 따르면 정부의 해외입국자 자가격리 의무가 면제된 직후인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1일까지 해외 항공권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086%, 해외 현지투어 매출은 1620% 치솟았다. 여행에 필요한 캐리어(가방)와 가방 커버(덮개) 판매도 크게 늘었다. 그동안 억눌렸던 해외여행에 대한 보상 심리에, 미뤄왔던 신혼여행이나 효도여행 수요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급증하는 해외여행 상품 판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급증하는 해외여행 상품 판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TV홈쇼핑에서도 해외여행 상품은 내놓자마자 ‘완판(완전판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지난 3일 현대홈쇼핑에서 판매한 ‘북유럽 10일’ 여행상품이 26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인당 629만원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4000건이 넘는 상담전화가 빗발쳤다. 롯데관광개발은 오는 23일엔 홈앤쇼핑에서 사이판 월드리조트 상품을, 24일엔 현대홈쇼핑에서 북유럽 3개국(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 8일짜리 여행상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롯데홈쇼핑이 지난달 업계 최초로 선보인 유럽여행 상품. 한 시간에 2500건의 주문이 몰리며 코로나19 전 유럽 여행 상품과 비교해 주문량이 2배 증가했다. [사진 롯데홈쇼핑]

롯데홈쇼핑이 지난달 업계 최초로 선보인 유럽여행 상품. 한 시간에 2500건의 주문이 몰리며 코로나19 전 유럽 여행 상품과 비교해 주문량이 2배 증가했다. [사진 롯데홈쇼핑]

롯데홈쇼핑이 여름휴가에 맞춰 지난 16일 판매한 ‘노랑풍선 다낭여행’은 약 2600건, 17일 판매한 ‘참좋은 여행 터키 패키지’는 약 3100건의 주문건수를 기록했다. 이에 롯데홈쇼핑은 베트남 다낭과 태국 방콕·파타야 등 동남아 인기 여행지를 포함해 해외여행 편성을 확대할 계획이다.

“멀리 떠나자” 유럽·북미가 80% 

흥미로운 건 더 멀리, 더 미리 계획해서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G마켓과 옥션이 해외항공권 판매순위를 집계해보니 캄보디아·로스엔젤레스·하와이·방콕·밴쿠버·토론토 순이었다. 판매순위 10위 중 6곳이 비행시간 6시간을 넘는 장거리 여행지인데,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같은 기간에는 오사카·다낭·후쿠오카 등 가까운 주변 국가 인기가 높았고 판매순위 10위권에 비행시간 6시간 이상인 여행지는 방콕이 유일했다.

항공권 예약 Top5.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항공권 예약 Top5.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실제 참좋은여행이 이달 1~17일 판매된 해외여행 상품의 지역별 예약자를 분석해보니 유럽이 압도적으로 많은 7553명(68%)이었다. 이어 북미·하와이 1607명(15%) 동남아 1032명(9%) 사이판·괌 427명(4%) 순이었다. 이 기간 예약자 1만1103명도 지난해 같은 기간(497명)에 비해서 20배 이상 늘어났다.
이런 추세에 맞춰 CJ온스타일 홈쇼핑은 유럽 여행상품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이정필 CJ온스타일 교육문화사업팀 부장은 “매주 1회 이상 해외여행 방송을 배정하는 등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더 다양한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CJ온스타일이 지난 20일 판매한 괌여행상품 방송화면. [사진 CJ온스타일]

CJ온스타일이 지난 20일 판매한 괌여행상품 방송화면. [사진 CJ온스타일]

50대 남성 고객 늘어난 이유 

여행 준비도 더 철저해졌다. 지난 3월 한 달간 판매된 항공권 예매의 출발일을 봤더니 8월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최장 5개월 전부터 미리 계획을 세워 준비하는 셈이다. 지난 2019년 같은 기간에는 예매 후 약 한두 달 안에 떠나는 비중이 절반(54%) 이상이었다. 코로나 전에 부담 없이 떠나는 즉흥적인 여행이 많았다면, 지금은 여행지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계획적으로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심리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성별·연령별 구매비중.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성별·연령별 구매비중.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이 밖에 2019년엔 43%에 그쳤던 남성고객 비중이 올해 처음으로 절반(51%)을 넘어섰고, 50대 이상 고객 비중이 32%로 3년 전 20%대에서 크게 증가했다. 중년의 남성이 가족여행을 위해 과감하게 지갑을 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주철 G마켓 전략사업본부 본부장은 “그동안 억눌렸던 해외여행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전에는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았던 여행지의 인기가 높다”며 “위생과 방역 수준을 고려해 사전에 철저하게 여행을 준비하는 경향이 한층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국내 여행업계 관계자는 “해외는 이제 막 항공 노선운항이 회복 단계에 접어든 만큼 당장 출발하는 수요는 아직도 제한적”이라며 “올 하반기에 운항이 확대되면 해외여행 재개는 더욱 탄력을 받고 진정한 리오프닝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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