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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수완박 여야 합의, 담합 아닌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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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30면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 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국회사진기자단]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 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국회사진기자단]

여야 “국회의장 중재안 수용, 4월 국회 처리”

검찰 보완수사 유지, 공직자·선거수사 배제

검찰수뇌부 총사퇴…법조계 “권력자만 좋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위장 탈당’까지 낳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여야 합의 속에서 이달 중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일방처리로 인한 극한 대치가 벌어지지 않은 건 다행이다. 하지만 ‘야합’이란 비판이 나올 만큼 합의 내용이 좋지 않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하고 여야가 수용했다는데, 국민 피해는 외면하고 정치인들엔 ‘방패’를 두르는 내용이어서다. 이에 김오수 검찰총장에 이어 서울·수원·대전·대구·광주·부산고검장 등 6명 고검장 전원과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가 일괄 사표를 냈다. 유례없는 검찰 지휘부 총사퇴다. 법조계에서도 “위헌적 법률안 내용은 논의에서 쏙 빼고, 부패한 국회의원들과 권력자들에게만 좋은 내용”(김정철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인권이사)이라고 반발한다.

박 의장의 중재안은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를 원칙으로 했다.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 등 설치를 위한 특위를 구성하고 6개월 내 입법하며, 입법 조치 후 1년 이내에 중수청이 발족하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한시적으로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유지하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가 아닌 부패·경제 범죄만 담당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정의당도 합의했으니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전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수도 있다.

문제는 대법원도 위헌을 우려했을 정도의 내용이 개선됐느냐다. 일단 민주당 안과 달리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한 건 긍정적이다. 살인·강간·절도·사기 등 일반인의 삶과 훨씬 밀접한 사건에서 경찰의 수사에 불만이 있는 피해자가 계속 검찰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재안은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했다. 심각한 여죄가 나와도 수사를 못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피의자·피해자, 범행의 일시·장소 등은 서로 다르지만, 최상위의 범인이 동일한 다단계 사기 사건의 경우 수사로 밝혀낼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못지않게 중대한 문제는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 범죄에서 선거·공직자 범죄를 빼, 사실상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를 봉쇄했다는 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단죄한 ‘적폐청산의 칼’이 검찰의 직권남용 적용이었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이나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도 마찬가지인데, 중재안대로 처리되면 이들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능해진다. 특히 선거 범죄의 경우 암장(暗葬)될 수도 있다. 공소시효가 180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서의 수사지연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선거범죄가 경찰로 승계되고 나면 공소시효가 완성되거나 졸속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속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 공정성조차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포 4개월 후 시행도 문제다. 형사사법 체계의 큰 변화를 초래하는 제도임에도 넉 달 만에 체제를 정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원도 “적어도 6개월 내지 1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두라”는 의견을 냈었다.

중수청 설치가 합의대로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공수처의 경우 수십 년 논의가 있었지만 2019년 말에야 관련 법안이 통과됐고 2020년 1월에야 출범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소한 게 한 건이다. 중수청의 경우 유사한 논의 과정조차 없었다. 일각에선 “검찰·경찰·증권거래소·금융감독위·금융감독원·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의 인력·예산·노하우를 합치는 작업이 윤석열 정부 5년 내내 해도 겨우 완성될지 모르겠다”(김후곤 대구지검장)는 지적도 있다.

결국 이날 합의로 여야 간 갈등을 해소했는지 모르겠으나 현장의 혼란을 해결하진 못했다. 수사를 통해 범죄를 밝혀낼 가능성도, 국가 수사 총량도 줄었다. 한마디로 좋지 않은 합의다. 이번 국회에서 중재안을 처리하지 말고, 의견을 더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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