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카사노바, 권태 달래려 와인 즐기며 하루 13시간 글 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5호 27면

와글와글 

와글와글

와글와글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베네치아의 카사노바 생가를 매입할 정도로 그에게 매료됐다. 두 사람 모두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뛰어난 감각에 대한 예찬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카사노바의 이미지는 플레이보이, 호색한, 도박꾼, 사기꾼 등 부정적인 것들 뿐이다. 카사노바는 도대체 왜 회고록을 써서 불명예를 자초했을까? 사람들은 죽어가면서도 인생을 미화하기 마련인데, 그는 오히려 은밀한 사생활까지 너무나 솔직하게 공개했으니 말이다.

자코모 카사노바의 『내 삶의 이야기(Histoire de ma vie)』는 역사상 가장 독특한 회고록이다. 3700페이지 가운데 3분의 1이 남녀상열지사를 다루고 있고, 기록된 섹스 상대만 120명이나 되니 비난의 소지는 충분했다. 당대 지식인의 언어이자 사랑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썼다. 72세가 되던 1797년, 그는 논란이 예상되는 책을 왜 썼는지 적고 있다. “나는 보헤미아에서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는 끔찍한 권태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이 회고록을 쓰고 있다.”

그렇다. 육체의 노화와 권태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1m85㎝의 큰 키와 우월한 외모, 유창한 화술, 성직자로 시작해 군인과 바이올린 연주자, 사업가, 스파이, 유럽 각국의 군주들까지 가깝게 지낸 능력자였지만 신은 공평하다. 누구나 예외 없이 나이를 먹게 되니까. 환갑의 나이에 보헤미아 지방 둑스 성에서 도서관장 직함을 얻기는 했지만, 어울릴 친구가 없는 것이 힘들었다. 글쓰기는 좋은 치료제, 와인 한잔 마시며 하루 13시간씩 썼다고 한다.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둑스 성. [사진 위키피디아]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둑스 성. [사진 위키피디아]

도서관장과 바람둥이,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카사노바의 모순된 삶을 상징한다. 관능과 쾌락은 분명 카사노바가 추구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숨겨진 또 다른 진가가 있다. 철저한 기록 정신이다. 회고록은 아무리 빨라도 60대 초반의 나이에 착수했는데, 젊었을 때의 일들을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업무일지보다 더 꼼꼼한 기록 정신 덕분이다. 카사노바는 위대한 여행자 중의 한 명으로, 마드리드에서 콘스탄티노플과 모스크바까지 유럽 대륙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닌 인생을 모두 기록해 둔 것이다.

언변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글도 잘 썼다. ‘카르페 디엠’을 유행시킨 호라티우스와 키케로 등 고대 로마의 작가들을 스승으로 삼아 박진감 있는 문체와 독특한 구성으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길 줄 알았다. 73세로 죽을 때까지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번역과 『20일간의 이야기』라는 공상과학소설도 포함돼 있다. 그의 회고록 가운데 일부는 작가로서 상상력에 기반을 둔 픽션이 섞여 있다는 주장이 계속되는 이유다. “나의 생애는 감각의 노예였다”라고 카사노바는 적고 있는데, 성적인 것뿐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입는 것, 즉 미식가에다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예민하고도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였음을 시사한다.

회고록 일부. [사진 위키피디아]

회고록 일부. [사진 위키피디아]

“나는 솜씨 좋은 나폴리 출신 요리사가 만든 마카로니, 에스파냐 사람들이 즐겨 먹는 잡탕찜, 뉴펀들랜드에서 잡아온 대구 자반, 양념을 듬뿍 친 날짐승 고기,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치즈처럼 향이 강하고 맛이 진한 음식을 좋아했다. 특히 치즈의 참맛은 그 속에서 미생물이 활동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여성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 냄새를 풍기는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가 땀을 많이 흘릴수록 냄새가 좋았다.”

스스로 포도주 감정에 일가견이 있다고 주장할 만큼 ‘와글와글’ 인생이었다. 모두 12권으로 이뤄진 회고록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와인이 등장한다. 샴페인, 부르고뉴의 샹베르텡. 보르도, 랑귀독 같은 프랑스 와인은 물론이고 몬테풀치아노, 몬테피아스코네 같은 이탈리아 와인들, 알리칸테와 라만차 그리고 말라가 등 스페인 와인, 독일의 라인과 헝가리 토카이, 대서양의 포르투갈 섬인 마데이라, 남아공 케이프 와인까지 현란하게 거론된다. 그런가 하면 유럽의 와인 전문가들에게조차 익숙지 못한 이름들도 종종 등장한다. 그리스 키티라 섬에서 생산되는 ‘희귀한 체리고 머스캣’, 사모스와 케팔로니아, 샴페인 비슷하다는 실러리, 카나리아 제도에서 생산된 카나리가 그런 경우다. 카사노바는 18세기 유럽의 다양한 와인을 대부분을 경험해 보았던 매우 드문 경험의 소유자다. 심지어 이슬람국가인 오스만 터키의 이스탄불에 초대받았을 때조차 부르고뉴산 최고급 백포도주를 즐겼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성실한 이슬람교도 중에도 포도주를 약으로 마실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술탄의 주치의가 그것을 약으로 유행시켰지요. 덕분에 그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요.”

카사노바의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카사노바의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그곳에서 받은 열두 병의 스코폴로 와인은 매우 귀해서 선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하고 있다. 뛰어난 여행자답게 각국의 예절과 문화의 차이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런던 귀족의 자제에게 초대받았던 장면이 그중 하나다. “그는 굴 요리와 샴페인 한 병을 주문했는데 결국 우리는 샴페인 두 병을 마셨다. 그는 추가한 샴페인 한 병 값의 반을 나에게 지불하도록 했다. 영불해협 건너편 땅의 예절은 그렇다.”

카사노바가 굴을 좋아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 ‘M.M’으로 알려진 여성과의 밀회 장면은 너무나 선정적이다. “우리는 펀치를 마시고 굴을 먹었다. 우리는 입에 넣었던 굴을 서로 상대의 입에 옮기면서 즐거워했다.”

독자들로부터 욕먹을 것이 두려웠던 걸까? 마치 도망가듯 카사노바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회고록은 내가 저세상에 가고 난 다음에야 공개될 것이므로 나를 아무리 비난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인생 만년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유머 감각만큼은 잃지 않았다. 역시 카사노바답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 를 지냈으며,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책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