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 탄 영화 속 장소,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2.04.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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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26면

POLITE SOCIETY 

‘록키’의 배경 된 필라델피아미술관 계단. [사진 박진배]

‘록키’의 배경 된 필라델피아미술관 계단. [사진 박진배]

1983년 영화 ‘로칼 히어로(Local Hero)’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해안마을 페난(Pennan)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속 장면 연출을 위해서 제작진은 마을의 호텔 ‘페난 인(Pennan Inn)’ 맞은편에 빨간 공중전화박스를 설치했다. 건축가 길버트 스콧(Sir 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한, 너무나도 유명한 영국의 아이콘이다. 소품이었기에 촬영 후 철거됐는데, 주민들과 영화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1989년 다시 놓여졌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찾아와 이 공중전화박스 안에 들어가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전화를 걸어 본다.

이처럼 어떤 장소가 영화 속에 등장하면서 지역의 명물이 되고, 끊임없이 방문객을 초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곳들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도 여럿이고, 찾아다니며 ‘성지순례(pilgrimage)’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영화의 스태프들은 특정 장면의 완성을 위해서 적합한 장소를 찾고, 그 평범한 배경에 스토리를 입혀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 디자인된 배경은 극적이고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지역이나 장소를 찾아가면 나도 모르게 영화 속의 장면으로 스며든다.

매년 30만명 ‘해리포터’ 속 교회 찾아

‘투스카니의 태양’의 배경 마을 코르토나. [사진 박진배]

‘투스카니의 태양’의 배경 마을 코르토나. [사진 박진배]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 건축물이 등장하는 건 흔한 일이다. 스토리의 배경 도시를 설명해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런던의 국회의사당이나 워털루 브리지,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센트럴 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데는 원래부터 유명해서, 영화 때문에 알려지거나 찾아가는 곳은 아니다. 반면에 영화로 인하여 재조명 되는 건축물들이 종종 있다. 1세기경 사막에 지어진 붉은 도시 페트라의 ‘알 카즈네(Al Khazneh)’ 신전은 세계문화유산이지만 ‘인디아나 존스 2’에 소개되면서 바야흐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 이후 그 곳을 방문하는 여행상품도 부쩍 증가했다. 영국 옥스퍼드의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 Cathedral)’ 역시 지역 교회 중 하나였으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학교 건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현재 연간 30만명이 찾는 관광명소다. 물론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해리포터의 장면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인디아나 존스2’에 등장한 알 카즈네 신전. [사진 박진배]

‘인디아나 존스2’에 등장한 알 카즈네 신전. [사진 박진배]

흥미로운 경우는 원래 그렇게 주목 받지도 못하고, 그저 동네사람들만 알던 평범한 곳이 영화 때문에 명소로 탈바꿈할 때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의 코르토나(Cortona)와 아레초(Arezzo)는 각각 다이앤 레인 주연의 ‘투스카니의 태양(Under the Tuscan Sun)’과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의 배경이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두 영화는 기존의 피렌체, 시에나, 피사 등의 유명 도시나, 주변에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 등에 비해 보잘 것 없고 소박하던 두 마을을 일약 대표 관광지로 만들었다. 또한 흔히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 불리는 ‘버내큘러 건축(vernacular architecture)’, 그리고 이탈리아의 작은 힐타운들에 관한 관심도 불러일으켰다. 휴 그랜트,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노팅 힐’ 역시 상대적으로 런던 관광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노팅 힐의 방문을 증폭시켰다.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그야말로 ‘탄생’한 명소들도 있다. 그 중 하나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대화를 나누던 조지아 주 사바나 ‘치페이와 광장(Chippewa Square)’의 벤치다. 원래 광장에는 벤치가 없었으나 소품으로 가져다 놓았다. 영화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사바나의 관광명소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사바나 역사박물관(Savannah History Museum)’으로 이전, 영구 보존되고 있다. 또 한 곳은 케빈 코스트너 주연 ‘꿈의 구장’의 배경인 아이오와 주의 옥수수 밭 야구장이다. “만들면 올 것이다(If you build, they will come)”라는 대사로도 유명한 이곳은 영화 이후 매년 수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급기야 바로 옆에 MLB 규격에 맞는 새 옥수수 밭 구장을 하나 더 건설하여, 2021년 뉴욕 양키즈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간의 메이저리그 야구경기가 열리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극적이고 유명한 장소는 뭐니 뭐니 해도 ‘록키’에서 주인공이 새벽운동을 하며 뛰어올라갔던 필라델피아미술관의 계단일 것이다. 촬영 당시 미술관 측의 허락을 받지 못했던 제작진은 새벽에 몰래 촬영을 했다. 영화의 대성공과 함께 사람들은 끊임없이 미술관을 찾았고, 입장료를 내고 그림을 감상하는 대신 계단을 뛰어오르며 영화 속 록키의 포즈를 취했다. 현재 계단 아래에 설치된 록키의 동상에도 늘 방문객들이 찾아와 함께 사진을 찍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크고 좋은 컬렉션으로 유명한 필라델피아미술관의 주인공은 따로 있는 듯하다. 엘리트와 대중의 차별된 코드를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할리우드엔 장소 전문 스카우트들도

‘모래시계’로 알려진 정동진. [사진 박진배]

‘모래시계’로 알려진 정동진. [사진 박진배]

이외에도 많은 장소들이 영화로 인하여 알려지고 방문객들을 초대하고 있다. ‘쇼생크 탈출’의 배경이 된 오하이오 주의 교화시설(Ohio State Reformatory)이나 ‘귀여운 여인’의 로데오 거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커버드 브리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나 ‘바그다드 카페’의 배경이 되었던 카페도 대표적인 예다. ‘이웃집 예쁜 소녀(girl next door)’의 이미지를 간직한 맥 라이언은 뉴욕의 두 식당을 명소로 만들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유명한 오르가즘 장면을 연기한 ‘캐츠 델리(Katz Delicatessen)’와 ‘유브 갓 메일’에서 톰 행크스와 말다툼하던 ‘카페 랄로(Cafe Lalo)’다. ‘레인 맨’에서 주인공 더스틴 호프만이 이쑤시개 박스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 숫자를 모두 기억했던 인디애나 주의 카페나 톰 크루즈와 로드 트립 중 들렸던 켄터키 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있다.

영화에서 장소의 중요성은 많은 감독들도 틈틈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흔히 대본만큼 중요하다고 하고 흥행을 좌우하는 장치라고도 한다. 문학은 읽고 상상하지만 영화는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극장의 의자에 앉을 때는 각박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기본이다. 당연히 감상하는 영화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공간의 이미지가 멋지고 근사하기를 기대한다.

‘레인 맨’에 등장했던 켄터키 주의 폼필리오즈. [사진 박진배]

‘레인 맨’에 등장했던 켄터키 주의 폼필리오즈. [사진 박진배]

영화의 배경 공간을 찾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다.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아 복잡한 과정과 검증을 필요로 한다. 스태프는 배경 선택을 위해서 발품을 팔아 장소를 사냥한다. 또 후보 촬영지에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예상되는 영화의 장면들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할리우드에는 장소 전문 스카우트들도 있다. 영화의 장면에 잘 어울리도록 선택된 장소가 부여하는 느낌은 세트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내는 배경과 비교할 수 없다.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의 느낌이 잘 반영한 연출은 영화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영화 속의 장소들은 그 곳을 찾아가는 방문객들에 의해서 다시 탄생된다. 감독이 꿈꾸고 영감을 받고, 창의적인 시간을 보냈던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알지 못했던 특별한 세상을 배우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 장소에 대한, 또 그 곳을 발견하고 영화를 통해서 소개한 안목에 리스펙트도 가지게 된다.

‘유브 갓 메일’에서의 뉴욕 ‘카페 랄로’. [사진 박진배]

‘유브 갓 메일’에서의 뉴욕 ‘카페 랄로’. [사진 박진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영화로 알려진 장소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일이다. ‘모래시계’로 알려진 정동진은 장소 본연의 맛과 아름다움을 확실하게 망친 예다. 고요한 바다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배경은 온갖 조잡한 조형물이 가득한 싸구려 테마파크로 변질되었다. 혹시라도 드라마의 감흥을 기억하고 찾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실망시킨다. ‘구니스’에 등장한 오리건 주의 해변이 아무 유흥시설 없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영화 속 장면 그대로의 모습이지 허접한 안내판이나 조형물, 영화를 소재로 만든 테마파크나 체험관이 아니다. 가장 소박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는 편이 최선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던 지역들은 지금도 영화에서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방문객들이 영화 속 장면과 함께 바람을 느끼면서 조용히 감정이입 할 수 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뉴욕 아이디어』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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