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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만지고 먹는 게 모두 예술품…‘국대 한식당’ 꿈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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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식당 벽면에 민화를 주제로 한 족자 형태 미디어 월이 설치되었다. 식탁과 장식품도 유명작가가 만들었다.

식당 벽면에 민화를 주제로 한 족자 형태 미디어 월이 설치되었다. 식탁과 장식품도 유명작가가 만들었다.

새로운 개념이라 할까, 다른 경지라고 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한식 레스토랑이 지난 19일 문을 열었다. 박주은(33) 헤드 셰프 이름을 상호로 삼은 ‘주은’. 셰프의 명운을 이곳에 걸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무엇보다 위치와 준비한 공간이 특별하다. 경희궁 뒤, 신축 빌딩 경희당 맨 위층(8층)에 자리를 펼쳤다. 건물 부지 안에서 궁의 담장 터가 발굴됐을 만큼 궁궐과 가까운 곳이다. 실내를 돌아보면 경희궁 후원과 인왕산·안산의 편안한 능선이 눈앞에 보인다. 청와대 뒤 백악산과 멀리 북한산 보현봉·문수봉도 산수화처럼 배경이 된다. 고층빌딩 사이로 남산타워가 지척에서 손짓한다. 옥상에 가면 그 장쾌한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근대화 이전 서울 풍광이 저절로 그려진다.

메인 홀 벽에 걸린 족자 형태의 대형 미디어 월에서는 민화를 주제로 한 40분짜리 영상 작품이 돌아간다. 영상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주제로 정기적으로 바뀐다. 대관 행사 때는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도 있다. 요즘 말로 ‘경치 맛집’은 떼어 놓은 당상이겠다.

‘세계인이 찾아오는 한식 레스토랑’ 목표

옥상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을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했다. 남산과 인왕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옥상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을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했다. 남산과 인왕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준비 중이지만, 옥상에는 정자를 짓고 한식 잔칫집이라는 뜻의 ‘한연당(韓宴堂)’ 현판을 걸 예정이다. 한 팀만 받고, 때로는 가벼운 국악 공연 판도 벌이려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시원한 조망과 ‘서울다움’을 보여주는 한식당이 있었던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식당을 연 고품격 투어 전문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서현정(55) 대표는 “한국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꾸며 서울에서 단 한 번만 식사할 수 있다면 꼭 가고 싶은 레스토랑을 만든다는 의욕으로 작업했다”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할 공간 치장과 기물·식자재 조달은 동원이 가능한 국내 정상급 손길을 두루 빌렸다.

조희숙 전 한식공간 셰프(왼쪽)와 박주은 헤드 셰프. 신인섭 기자

조희숙 전 한식공간 셰프(왼쪽)와 박주은 헤드 셰프. 신인섭 기자

부문별로 보면 ▶장과 식초: 김명성발효연구소 ▶일부 채소: 자연농 혜림원 김주진 ▶백자: 해인요 김상인 작가 ▶청자: 서광도예원 박병호 작가 ▶분청: 허상욱 작가 ▶목기: 최기 작가 ▶칠기: 나은·반김 크래프트, 신미선 작가 ▶유기(납청유기): 이형근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옹기: 안시성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53호 부거리 옹기장 ▶가구(식탁): 김윤관 작가 ▶인테리어: 아름건축사사무소, 모노컬렉션 장응복 대표 ▶미디어 월: 공간작업소&정재진 작가 ▶보자기: 소곤소곤 당신과의 대화 연구회 등이다.

한식당 ‘주은’의 문패. 신인섭 기자

한식당 ‘주은’의 문패. 신인섭 기자

이들의 정성과 기술로 꾸민 음식점은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 같기도 하다. 완성도 높은 토털 디자인의 결정을 보는 듯하다. 식기만 해도 한 끼 코스 안에 백자, 유기+나전칠기, 목기, 칠기, 분청, 청자, 옹기, 유기+옹기, 주칠상+분청·백자, 백자 다기, 백자 3단 합이 음식에 어울리게 차례로 등장해(13일 식사의 경우) 아름다운 한국 그릇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이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세계인이 찾아오는 한국 대표 한식 레스토랑”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의 한국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때, 한국음식이 세계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에서 외국인들에게 본토 한국음식을 즐기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 대표 여행사는 ‘주은’ 주변의 포시즌·조선·플라자·롯데 등 고급 호텔 외국인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국내 미식 여행 상품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내부는 3개 구역으로 구성했다. 식사 공간은 메인 홀, 룸 2개, 반 개방 룸 1개로 되어있다. 그리고 주방과 주방 옆에 작은 스튜디오가 있다. 두 개의 룸 내부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중 내금강 부분 이미지를 원용한 ‘금강산실’과 백자 달항아리를 경쾌하고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백자호실’로 꾸몄다. 장응복 작가 솜씨다. 스튜디오에서는 요리 교실을 열거나 미식 여행 외국인을 위한 공간, 또는 셰프와 함께 음식을 해 먹는 ‘셰프의 테이블’로 이용할 예정이다.

매니저는 지난해 소믈리에대회 우승자

음식 맛을 뒷받침할 주류와 홀 관리를 담당하는 매니저 겸 소믈리에도 실력자를 영입했다. 김주용(42) 매니저는 미쉐린2스타 레스토랑 정식당·임프레션·알렌의 총괄 매니저를 거쳤으며, 지난해 한국 국가대표 소믈리에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음식점이므로, 이 모든 것들보다 앞에 음식이 있다. 박 셰프는 “좋은 재료로 사계절과 각 지역 특색을 담는 순수 한국음식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가을 문 닫은 조희숙(64) 셰프의 ‘한식공간’ 출신이다. 거기서 함께 일한 젊은 요리사 7명을 모두 이끌고 새 둥지로 옮겼다. 조 셰프를 뺀 8명 전원이 호흡을 다시 함께하게 된 것이다.

임시영업 기간인 지난 13일, 조희숙 셰프가 주방 팀을 격려하러 간식을 한 보따리 사 들고 찾아간 자리에 끼어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지만 저녁 코스로 차린 이 날의 음식은 다음과 같다.

①식전 음료: 김명성발효연구소의 사과식초 물에 당귀 잎 즙을 탔다.

한 입 거리로 나온 메밀 증편, 더덕으로 감싼 육회, 콜라비로 만든 향병(香餠). 신인섭 기자

한 입 거리로 나온 메밀 증편, 더덕으로 감싼 육회, 콜라비로 만든 향병(香餠). 신인섭 기자

②한 입 거리: ▶바닥은 바삭하고 몸통은 부드러운 메밀 증편 ▶종이처럼 얇게 저민 더덕으로 감싸고 미나리 줄기로 묵은 육회 ▶제주 콜라비를 찌고 기름에 지져 잣가루를 묻힌 향병(香餠).

박달대게 살과 내장으로 쌀죽을 쑨 대게 죽. 신인섭 기자

박달대게 살과 내장으로 쌀죽을 쑨 대게 죽. 신인섭 기자

③대게 죽: 박달대게 살과 내장으로 쌀죽을 쑤고 다진 쪽파와 생강즙으로 맛과 향을 더하고 엄지손톱 크기 대게 다리 살 두 점을 고명으로 올린 죽.

새조개 냉채. 신인섭 기자

새조개 냉채. 신인섭 기자

④새조개 냉채: 살짝 데친 새조개·갑오징어·표고 위에 미나리 잎을 고명으로 올리고 사과즙 초고추장을 곁들인 회와 냉채의 중간 스타일.

잡채와 땅두릅 전. 신인섭 기자

잡채와 땅두릅 전. 신인섭 기자

⑤잡채와 땅두릅 전: 참두릅·동충하초에 버섯·오이 등을 섞어 잣가루로 버무린 잡채와 밀가루 죽을 입혀 부친 땅두릅 전.

⑥쑥 도다리 만두: 도다리 살을 양념해 소로 넣은 만두 쑥국. 도다리 쑥국의 새로운 해석이다.

무와 톳을 넣은 금태 조림. 신인섭 기자

무와 톳을 넣은 금태 조림. 신인섭 기자

⑦금태 조림: 무와 톳을 넣은 금태 조림에 곰취숙쌈 주먹밥.

⑧갈비증(蒸): 찜솥에 증기로 찐 한우 떡갈비 위에 찐 밤 보숭이(고물)를 도톰하게 올리고, 어린 겨자잎 샐러드를 곁들였다. 『진주 허씨 묵동댁 내림음식』의 갈비찜을 응용한 요리.

⑨주칠(朱漆) 쟁반에 차림 반상: 수향미로 지은 냉이 무쇠솥밥에 바지락 된장국과 칠게 강정, 주꾸미 원추리 무침, 김치가 한 상으로 나오고, 솥밥 누룽지를 삶아 토하젓과 함께 다시 내왔다. 조선 시대 주칠상은 임금님 수라상으로만 썼다.

다과와 함께 나온 차. 신인섭 기자

다과와 함께 나온 차. 신인섭 기자

⑩다과: 백자 3단 합에 담아 특별히 디자인한 보자기에 싸서 귀한 선물처럼 내왔다. 단마다 ▶쑥 매작과와 진달래 수수 화전 ▶생강이 많이 들어간 개성약과와 우엉튀김 강정 ▶오미자 물을 들인 배 정과와 흑임자 다식.

다과는 백자 3단 합에 담아 보자기에 싸서 내왔다. 신인섭 기자

다과는 백자 3단 합에 담아 보자기에 싸서 내왔다. 신인섭 기자

조희숙 셰프 색채가 뚜렷한 음식들은 젊은 요리사들이 간절한 의욕으로 고민하고 노력한 태가 엿보였다. 아직은 좀 아쉬운 연륜의 맛 터득의 지름길도 그 의욕이 열어줄 것이다. 식사비 점심 12만원, 저녁 20만원. 술 페어링은 한국술 8잔, 와인 5잔 각 12만원.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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