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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종차별, 나치 독일의 본보기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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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21면

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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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카스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당연히 인도다.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4대 계급(바르나)과 그 아래 가장 하층의 불가촉천민(달리트)으로 구성된다는 인도의 카스트는 고대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강력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사실상 카스트 체제가 400년 넘게 존속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이저벨 윌커슨은 ‘자유의 땅’ 미국이 인도의 카스트와 다를 바 없는 체제를 강요해 왔다고 고발한다. 1619년 여름 아프리카인들이 버지니아 식민지에 도착하면서 흑인·백인 간의 미국 카스트 체제가 처음 생겨났다는 것이다. 1776년 미국이 독립하기 150여 년 전의 일이다. 링컨 대통령 사후 1865년 12월 노예제가 공식 폐지됐지만 카스트 체제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금도 미국 사회의 근본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 발생 직후인 2020년 6월 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벌어진 그에 대한 항의 시위. [사진 알에이치코리아]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 발생 직후인 2020년 6월 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벌어진 그에 대한 항의 시위. [사진 알에이치코리아]

윌커슨은 백인 대신 ‘지배 카스트, 특혜받는 카스트, 상류 카스트’라는 말을 사용했다. 아시아인과 라틴계는 ‘중간 카스트’, 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은 ‘피지배 카스트, 최하위 카스트, 냉대받는 카스트’라 불렀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피정복민, 토착민’, 인종과 관계없이 모든 여성이나 모든 종류의 소수민족은 ‘소외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부러진 팔을 감싸는 깁스(cast)처럼, 연극에 발탁된 배역(cast)처럼 카스트는 미국에서 모든 사람의 자리를 미리 정해 놓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 왔다고 말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미국 동남부에는 ‘짐 크로 사우스(Jim Crow South)’라는 흑백분리법이 잔존했지만 서서히 최하층 카스트에서도 주류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몇몇은 지배 카스트 계급까지 올라갔으며 급기야 2008년에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렇다고 미국 사회에서 카스트 체제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위계 구조의 역전으로 백인우월주의를 신봉하는 극렬 지배집단의 분노가 고조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악화했으며 인종차별은 더욱 노골화했다. 지은이는 트럼프가 승리한 2016년 대선 결과를 카스트의 영향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백인들은 의식을 했든 하지 않았든 카스트 체제 안에서 가장 확실한 보상을 직접 약속한 트럼프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출구조사에 따르면 백인 58%가 트럼프에 표를 몰아줬다. 윌커슨은 지배 카스트들이 단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지금도 미국 사회에선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캐치프레이즈를 건 저항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리카계뿐만 아니라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도 섬뜩할 정도로 심하다. 미국에 여전히 카스트 체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흑백 사이의 계층벽이 아직도 높다는 사실이다.

아리아인의 인종적 우수성을 내세운 히틀러 나치 독일은 유대인 절멸을 부르짖으며 193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을 본보기로 삼았다. 그런 독일은 지금에 와서 수도 베를린 한복판은 물론 전국 곳곳에 유대인 학살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기념물들을 설치해 놓고 있다. 반면 미국에선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들을 탄압하고 인권을 말살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아직도 수두룩하게 남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2042년이면 미국에서 백인이 다수인 시절도 끝날 것이라고 예측한 인구통계가 나와 있다. 백인의 수적 열세가 찾아오면 카스트 체제도 사라질까. 오바마 시대에도 그랬던 것처럼 백인 최상층 카스트가 설혹 지배권을 잃는다 해도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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