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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략 러시아의 거대 모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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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20면

지도 위의 붉은 선

지도 위의 붉은 선

지도 위의 붉은 선
페데리코 람피니 지음
김정하 옮김
갈라파고스

이 책은 “여행은 더 잦아지고 있지만 이해의 정도는 이에 반비례한다”는 도전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탈리아 기자이자 작가인 지은이는 여행 경험과 국제 뉴스 취재로 축적한 지리 정보를 바탕으로 전 세계 13개 지역·국가의 과거·현재·미래를 살핀다.

단연 눈길이 가는 나라가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다. 지은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옛 소련 지도자나 과거 제정 시대 차르와 같은 미망에 사로잡혔다고 지적한다. 거대한 러시아를 지배하면서도, 자신이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도록 강요당했다는 묘한 열등감이 그것이다.

페데리코 람피니는 세계 지도 위에 붉은 선, 혹은 나라 영토의 붉은색 농담으로 한나라의 세력 판도를 표현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에 비해 영토가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 지도가 소련 시절, 아래 지도가 현재 러시아의 영토다. [사진 갈라파고스]

페데리코 람피니는 세계 지도 위에 붉은 선, 혹은 나라 영토의 붉은색 농담으로 한나라의 세력 판도를 표현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에 비해 영토가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 지도가 소련 시절, 아래 지도가 현재 러시아의 영토다. [사진 갈라파고스]

지은이는 러시아에서 거대한 모순을 본다. 푸틴의 러시아는 여전히 영토가 광대하지만, 소련 시절보다 줄었다는 게 불만이다. 소련 당시 영토와 영향권을 둘러싼 붉은 테두리에서 우크라이나는 빠졌으며, 동유럽 위성 국가들은 대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다. 푸틴은 이들을 적대 세력으로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원인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러시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발전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경제 규모는 미국의 15분이 1 수준이며, 석유·가스 등 에너지가 핵심이다. 수학·정보·의학 전공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일쑤다. 허약한 경제·사회 속에서 푸틴은 정신 승리를 추구한다. 초강대국 지위에 집착하면서 민족주의적인 보상을 모색해왔다. 이처럼 러시아는 후진성과 유라시아 제국이 되려는 야망, 서구에 대한 열등감과 몰락하는 유럽 문명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확신이 공존하는 모순 세계다. 이런 러시아가 평범한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 지은이가 품는 의문이다.

중국의 신실크로드 지도에서 실선은 육로, 점선은 해로다. 중국이 추구하는 확산정책을 엿볼 수 있다. [사진 갈라파고스]

중국의 신실크로드 지도에서 실선은 육로, 점선은 해로다. 중국이 추구하는 확산정책을 엿볼 수 있다. [사진 갈라파고스]

대조적으로 미국은 강대국이 될 조건이 넘친다. 광대한 영토에는 농산물·광물·에너지·산업체가 가득하다. 미국을 둘러싼 태평양과 대서양은 천혜의 요새다. 일본이 1941년 진주만을 공격했어도 본토 침략은 엄두도 못 냈다. 할리우드 영화·드라마에서 주로 외계인이 미국을 침공하는 설정은 이런 지리적 배경 때문이라는 게 지은이의 너스레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공격 위협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냉전 당시 소련과 중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고, 최근엔 북한도 이론상으론 알래스카에 도달하는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진주만 희생자보다 더 많은 약 3000명이 2001년 9·11테러에서 희생되기도 했다. 그래도 미국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지은이의 판단이다.

붉은색 점으로 표시한 미국의 해군 기지를 선으로 이으면 미국의 세력 판도가 보인다. [사진 갈라파고스]

붉은색 점으로 표시한 미국의 해군 기지를 선으로 이으면 미국의 세력 판도가 보인다. [사진 갈라파고스]

미국 제국을 지탱하는 건 경제력이다. 경제력은 군사력의 바탕이다. 지은이는 군사비 지출이 지속가능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주요 미 해군기지에 점을 찍은 뒤 붉은 선으로 연결했다. 미국은 전 세계 모든 지역·대륙·바다에서 지역 동맹국을 위해 군사력을 전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국 해군기지를 잇는 붉은 선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의 붉은 선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가치동맹 유지야말로 미국 제국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미국이 지리적 이점에다 기술적 창조력을 더하고, 법치로 독재를 배제하면서 자본주의 발전을 극대화했다고 평가한다. 자본주의는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나 중국 공산당도 발전시켰지만, 독재로는 지속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미국도 경제적 불평등 등 몰락의 징후를 보이면서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후 변화, 공공서비스와 기간산업의 침체 등 당면 과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에 대해 지은이는 나치 지정학자 카를 하우스호퍼의 말을 빌려 그 의도를 설명한다. “쇠퇴에 접어든 문명은 요새를 구축하지만, 발전하는 국가는 도로를 건설한다”는 말을 남긴 인물이다. 중국이 새로운 고속도로와 철도, 송유관과 송전탑, 통신용 광섬유를 까는 것은 저항을 막으면서 중앙아시아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제국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 지역에 한족을 대대적으로 이주시키고 원주민을 소수파로 전락시키는 중국화 정책을 함께 밀어붙이는 것으로 본다. 지난 2200년의 세월과 마찬가지로 현재도 변경을 걱정하는 중국은 최근 영해와 섬들의 붉은 선, 즉 해양 영향력도 적극 확대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다.

2006년 북한을 방문했던 지은이는 평양을 “가짜 같고, 쥐라기 공원 같다”고 표현한다. “아이들이 외국인에게 미소를 보이지 않고 반갑게 인사하기는커녕 시선을 내리거나 두려움을 드러내는 아시아의 유일한 지역”이라고 평가했다. 지은이는 한때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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