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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이 빈 명동 상가, 외국인 발길 늘어 봄바람 기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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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15면

명동 상권 살아날까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썰렁하던 명동 상권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썰렁하던 명동 상권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연달아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는 상가 앞으로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지나간다. 영어·일어·중국어 등 간간히 외국어도 들려온다. 거리엔 양말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노점상이 드문드문 보인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명동은 일상회복 초읽기에 들어선 모습이었다. 즐비한 공실에도 불구하고 최근 명동거리의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거리에 있는 사람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산했지만, 지금은 점심부터 초저녁까지 직접 세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늘었다. 지난 9일엔 국내 애플스토어 3곳 중 가장 큰 애플스토어 명동점이 문을 열었다. 과거 명실상부 쇼핑 1번지로 불렸던 명동은 다시 부흥할 수 있을까.

2월부터 거리 노점상도 다시 많아져

“이 길 따라 쭉 올라가시다가 네 번째 골목 오른쪽에 풀 달린 건물입니다.”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관광통역안내사가 화장품 상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올해로 10년차라는 이윤우 안내사는 “몇 달 전보다 유동인구가 늘었고 해외입국자 자가 격리 면제 이후 싱가포르·태국 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도 증가했다”며 “상황이 나아지면서 지난 2월부터 거리에 노점상도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거리에선 쇼핑을 위해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여행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캐서린(22·미국)은 “모두가 쇼핑하려면 명동에 가라고 해 공실이 많은 걸 알면서도 명동을 찾았다”며 청바지와 시계가 담긴 쇼핑백을 흔들어 보였다. 쇼핑 거리에 있는 한 식당 종업원은 “확실히 몇 달 전보다는 손님이 많이 늘었고 특히 점심시간에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명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풍옥 공인중개사도 “날씨가 따뜻해지고 코로나19 거리두기도 완화되면서 상가 임대 문의가 지난달보다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하지만 상권이 다시 부흥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윤우 안내사는 “유동인구와 관광객이 늘어났다고 해도 예전보다 많이 적은 편이고, 아직까지는 입점하는 가게보다 폐점하는 가게가 더 많다”며 “이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려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풍옥 공인중개사 역시 “아직은 사려고 하는 사람보다 내놓는 사람이 더 많다”며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달부터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는 20년차 악세사리 판매 노점상은 “최근 거리에 사람이 늘어난 건 맞지만, 회복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명동은 오래도록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뷰티 상권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의 최신 유행 물품을 받아들이는 통로였고, 1950년대부터 양복점, 양장점, 미장원이 밀집했다. 1990년대부터 청소년과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브랜드가, 2000년대 들어 글로벌 SPA 브랜드, 화장품 로드숍, 신발 멀티숍 등이 입점하며 패션·뷰티 거리로 명성을 누렸다. 인근에 백화점과 호텔이 밀집돼있고 대중교통도 발달해 접근이 용이한 서울의 대표상권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서울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했다. 각 브랜드들은 억대 임대료를 감수하고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한한령과 일본 경기 악화로 휘청이던 명동 상권에 코로나19는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96만명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1750만명)에 비해 94.5% 감소했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85%는 명동을 방문한다. 결국 외국인 관광객의 감소가 곧 명동의 유동인구 감소로 이어진 셈이다.

현재 명동 상가의 절반은 비어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명동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50.1%로 전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인 13.5%, 서울 중대형 상가 공실률 10%보다 높다. 서울 내 주요 상권인 광화문(23%), 시청(8.4%), 강남대로(11.8%) 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실제로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부터 명동예술극장 사거리까지 명동의 메인 쇼핑거리인 명동8길을 걸으며 공실인 1층 점포를 세어봤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에 위치한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점 등 코너에 있는 상점까지 포함해 명동8길에서 보이는 1층 상점은 총 59개였고, 그중 30개가 비어 있었다. 메인 골목의 1층 공실률이 50.8%에 달한 가운데 입점을 준비하고 있는 상점은 5월 오픈을 앞둔 에이랜드뿐이었다.

내국인 소비만으로 임대료 감당 힘들어

하지만 명동의 메인 쇼핑거리 1층 상가에는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길의 1층 상가 공실률은 50%에 달한다. 윤혜인 기자

하지만 명동의 메인 쇼핑거리 1층 상가에는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길의 1층 상가 공실률은 50%에 달한다. 윤혜인 기자

명동을 방문한 시민들은 외국인을 위주로 한 명동 상권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명동 상권 몰락의 이면에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내국인을 외면한 영향도 있다는 의견이다.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명동을 찾았다는 김모(40대)씨는 “물건도 응대도 다 외국인 위주라 한동안 오지 않았다”며 “관광지로 대표되는 곳인 만큼 다시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외국인만 바라보고 장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모(36)씨와 신모(36)씨 부부는 “북적이지 않는 브랜드별 대형 매장에서 편하게 쇼핑할 수 있어 간간히 명동을 찾는다”며 “비싼 노점 음식 가격과 내국인을 외면하는 태도 등은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명동 상권의 재기를 위해선 무엇보다 외국인 유입이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긴자거리나 뉴욕의 타임스퀘어처럼 자국민보다 외국인 소비가 많은 판매 상권이기 때문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명동은 식당도 유흥가도 많지 않고 순수하게 의류, 화장품 매장이 있는 상권”이라며 “명동에 몇몇 특색있는 카페나 식당이 생긴다고 상권의 부흥을 이끌기는 힘들기 때문에 결국 외국인에게 기댈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명동은 서울 상권이라기 보다는 세계인이 모여드는 글로벌 관광 상권”이라며 “한국인만을 상대로 해서는 고가의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 외국인이 얼마나 자유롭게 우리나라에 방문할수 있느냐, 명동에서의 쇼핑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뉴욕 5번가나 파리 샹젤리제 거리가 명품을 둘러보고 구매하는 관광 명소 역할을 하는 것처럼 명동을 K-뷰티, K-패션의 메카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미 한국인에게는 명동을 대체할 신흥 상권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명동을 외국인들이 한국식 화장, 미용, 패션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명소로 개발해야 그나마 상권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서 가장 비싼 명동 땅에 명품 매장이 없는 이유

코로나19 영향으로 명동 상권이 침체됐지만 여전히 명동은 국내에서 가장 비싼 땅이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 중구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부지(169.3㎡)의 공시지가는 1㎡당 1억8900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해 공시지가(1㎡당 2억650만원)보다 8.5% 하락했지만 2004년부터 19년째 국내에서 가장 비싼 땅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번째로 비싼 땅도 명동이다. 명동2가 우리은행 부지(392.4㎡)가 1㎡당 1억8750만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명동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쇼핑거리다. 2019년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가 68개국 448개 지역을 조사한 결과 명동의 임대료는 제곱피트당 862달러로 9위를 차지했다. 1위는 제곱피트당 2745달러를 기록한 홍콩 코즈웨이 베이였다. 미국 뉴욕 5번가는 제곱피트당 2250달러로 2위, 영국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는 1714달러로 3위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4위), 이탈리아 밀라노 비아 몬테 나폴레오네 지역(5위), 일본 도쿄의 긴자 거리(6위)가 뒤를 이었다. 위 지역들은 모두 손꼽히는 세계 각국의 쇼핑 평소이자 명품 브랜드가 모인 명품 거리다. 한국 명동 상권의 주력 상점이 화장품 로드숍, SPA 브랜드인 점과는 사뭇 다르다.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명품 브랜드가 이곳에 자리한 이유는 상징성에 있다. 지금은 오프라인에서 홍보하고 온라인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시대다. 명품 거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명동 상권에 명품 브랜드가 입점하지 ‘못한’ 이유는 백화점과의 관계 때문이다. C&W 리테일총괄 김성순 전무는 “코로나19로 국내 명품 소비가 급성장하기 전에는 백화점이 우위에 있어 백화점에 입점한 명품 브랜드가 오프라인 매장을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현재 명동 상권이 침체됐어도 국내 대표 쇼핑 상권이라는 입지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명동은 해외 관광객과 지방에서 온 내국인 수요를 품을 수 있는 상권이므로 애플스토어, 나이키처럼 앞으로 명동 내 규모가 큰 건물에 명품 매장이 입점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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