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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오프라인의 귀환]프라다의 맨해튼 에피센터, 현대적 공간 브랜딩 시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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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11면

SPECIAL REPORT 

2020년 리뉴얼 오픈한 뉴욕 나이키타운은 몰입적 체험 공간,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갖췄다. [사진 acceptandproceed.com]

2020년 리뉴얼 오픈한 뉴욕 나이키타운은 몰입적 체험 공간,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갖췄다. [사진 acceptandproceed.com]

글로벌 트렌드 정보 사이트 WGSN에 의하면 ‘여행’ ‘경험’은 MZ 세대에게 ‘럭셔리’다. 스페인의 천재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은 “최고의 럭셔리는 스토리를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MZ세대는 ‘진정성’ ‘연결’ ‘개인화’를 충족시키는 공간적 유희를 즐긴다. 또한 그 경험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이제 사람들은 유형적 소비보다 무형적 ‘경험 소비’에 가치를 둔다. 물건은 직접적 비교의 스트레스가 있지만, 경험은 온전히 나만의 소유물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그 공간을 경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 공간은 자신이 직접 공간에서 움직이는 체험으로만 온전히 경험된다. 스스로가 경험한 감동은 SNS에 공유되고, 그 경험된 이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욕망의 자극제가 된다. 결국 공간이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2021년 6월 뉴욕 첼시에 구글 첫 오프라인 매장이 들어섰다. 왜 검색과 인터넷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한 걸까. 기업 확장성에 대한 ‘인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구글의 새로운 비즈니스들을 알리는 데 온라인 프로모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고객에게 설명하고 그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런데 오프라인 공간은 꼭 그곳에 가봐야만 경험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으로 비즈니스의 가치관, 미학적·사회적 가치 경험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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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애플스토어를 방문한 사람들이 감동하는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투명 유리 계단이다. 초현실적 유리 계단은 스티브 잡스가 직접 고안한 장치다.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계단을 그는 구체적으로 주문했는데, 그 단순한 인상 하나로 극명하게 애플의 첨단 기술력과 미래 지향성을 느낀다.

1996년 문을 연 뉴욕 5번가의 ‘나이키타운’은 매출과 상관없이 고객이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라는 가치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구축됐다. 경영진은 고객의 경험이 브랜드 광고보다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건물의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의 파사드는 의도적으로 1960년대 뉴욕 공립학교 체육관의 외관을 차용했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 같은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한 인터랙티브한 공간은 나이키 추종자들로부터 ‘사원’이라 불리며 맨해튼의 명소가 됐다.

지역의 환경·역사·문화 등 맥락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 브랜딩(space branding)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오픈한 샤넬의 혁신적인 스토어를 들 수 있다. 네덜란드 건축가 MVRDV가 디자인한 크리스털 하우스는 평범한 건물의 1층과

2층 벽돌을 유리블록으로 덮어 투명건물처럼 보인다. 거리 풍경을 해치지 않고 지역의 맥락을 함께 하면서도 매우 창의적인 공간이 연출된 예다.

뉴욕의 프라다 에피센터. 쇼핑의 개념을 바꿔놓은 감각적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2x4]

뉴욕의 프라다 에피센터. 쇼핑의 개념을 바꿔놓은 감각적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2x4]

필자는 프라다 에피센터를 현대적인 의미의 공간 브랜딩이 시작된 지점이라고 평가한다. 오프라인 공간 하나로 브랜드의 인상을 새롭게 만들었고 침체된 비즈니스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2000년 프라다는 파산에 직면했다. 창업주의 손녀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브랜드의 사활을 공간에 걸었다. 그는 온라인 쇼핑이 확산되며 오프라인 매장의 위상이 사라져가는 시기에 공간의 지향성을 고민했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와 함께 진행한 에피센터는 쇼핑 공간이지만 소비 지향적이지 않은 공간이다. 면적당 임대료가 비싼 맨해튼 소호 건물 1층 바닥을 절반 가까이 뚫어 스케이트보드 경기장처럼 1층과 지하 공간을 직접 연결시켰다. 이 경이롭고 충격적인 공간 하나로 프라다는 ‘프라다의 럭셔리’가 무엇인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성공적인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선 영화상영, 음악공연, 패션쇼와 강연, 미술 작품 전시 등 변화무쌍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프라다는 2005년 황량한 미국 텍사스 사막 마르파 지역 도로변에 충격적인 오프라인 매장을 짓는다. 스칸디나비아 듀오 아티스트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설치작품이다. 쇼윈도를 통해 프라다의 2005년 FW 제품들이 보이지만 지키는 사람은 없고 문도 굳게 닫혀 있다. 결국 이 명품 매장은 설치 6일 만에 유리창이 부서지고 가방과 신발은 도난당했다. 럭셔리 산업의 현실과 고급화되어가는 미술시장, 젠트리피케이션과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만든 작품답다. 물론 구매가 아니라, 단지 보고 느끼고 사진 찍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는 멋있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우러러 본다. 실재하는 오프라인 공간은 기업의 옷이다. 환상적이고 멋진 옷은 고객의 상상력과 호감을 일으킨다. 기업이 제공한 공간 속에서 자신을 문화인으로 공조시킨 고객들은 기업의 충성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대표 패션 디자이너 꼼데가르송은 2004년 런던에 편집숍 도버스트리트마켓을 열었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실내는 펑키함과 미니멀한 분위기가 공존하며 저녁에는 공연·라이브쇼가 펼쳐지는 핫한 공간이 됐고, 런던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몰리는 쇼핑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브랜드 DNA와 ‘미친 존재감’의 공간으로 인식된 것이다.

『감각 마케팅』의 저자 댄 힐은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통해 얻고 싶어 하는 것은 감각·감성적 확신”이라고 했다. 그 확신은 오프라인 공간 경험을 통해 어떤 방식보다도 쉽고, 확실하게 만들어진다. 고객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경험은 기업이 제공하는 진정한 ‘부가가치’다. ‘경험’은 단순한 서비스나 제품보다 훨씬 더 전체적이고 포괄적이며 감성적이고 강력하다. 『체험의 경제학』을 쓴 B.조지프 파인과 제임스 H. 길모어는 “이제 광고를 중단하고 기업은 적극적으로 비즈니스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을 창출하라”고 주장했다.

김주연 홍익대 미술대 공간디자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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