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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오프라인의 귀환]2030 ‘뉴트로 본능’ LP사려고 한겨울 밤 새워 줄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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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10면

SPECIAL REPORT

LP로 음악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사진관에서 현상하고, 만년필로 손편지를 쓰고, 식물을 키우고, 차(다도) 문화를 즐기고, 등산을 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 얘기이고, 기성세대가 아닌 20대의 일상이다. 요즘 인기있는 약과를 줄서서 사먹고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약과 (5만4000여개) 해시태그 숫자가 인기 도넛 #올드페리도넛 (3만8000여개) 보다 많고 #랜디스도넛 과 비슷하다. 약과는 할머니 시절 먹거리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디지털에 가장 능한 20대가 왜 아날로그 문화에 탐닉하는걸까. 디지털 네이티브가 소비하는 아날로그의 공통점은 일상이다. 일상의 문화적 요소만 소비한다. 결코 일이나 생산성을 위한 요소를 아날로그로 선택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편리한 디지털을 버리고 불편한 아날로그로 간다는 식의 억지가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 경험과 취향의 확장으로 봐야 한다. 디지털을 다 버리고 아날로그만 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여전히 소셜네트워크에서 살아가는 현 2030세대의 소비 코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취향’ 이다. 효율성, 합리성, 생산성이 지배하지 않는 영역이 바로 취향이다.

국내에서 신규 제작되는 LP가 2017년 연간 2만장 규모에서 2021년 20만장으로 늘었다. 미국도 최근 10년간 매년 LP 시장이 성장세인데 2020년 대비 2021년은 50% 정도 가파르게 늘었다. 심지어 2021년에는  LP 판매량이 CD 판매량을 앞질렀다. 국가는 달라도 주 소비층이 2030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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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추운 날씨에도 LP를 사겠다고 줄을 선 사람이 800명 가까이 됐다. 전날밤부터 대기줄이 시작돼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계속 늘어나더니 오픈 시간에 최대치가 됐다.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렸던 날의 일이다. 2011년 시작된 서울레코드페어는 바이닐 레코드 음반이 주인공인 행사인데, 수만명이 찾는다. 이들은 대부분 2030이다. LP에 열광하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을 보며 놀랄 것 없다. 이들은 카세트 테이프에도 관심이 많다. BTS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 음반을 LP와 카세트테이프로도 판매했다. 신곡이 카세트 테이프로 나오고,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도 다시 거래된다. 워크맨, 마이마이 같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중고 시장의 인기 품목이 됐다.

1980~90년대가 카세트 테이프의 전성기였고, LP는 그보다 더 이전이 전성기였다. 둘 다 CD에 밀려 소멸된듯 했는데 2010년대 들어 LP와 카세트 테이프 모두 되살아났고 시장은 점점 커진다. 기성세대들은 잊어버린 추억속 LP와 카세트 테이프인데, 디지털 음원이 대세인 시대에 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아날로그 음반으로 음악을 들을까? 디지털은 골라서 듣는데 편하다. 대신 편식이 될 수 있다. 아날로그는 전곡을 다 듣게 된다. 의외의 발견도 하고, 기다림도 생긴다. LP와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디지털 음원과 CD로도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풍부하게 소비하는 셈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아날로그 확장이지, 디지털을 대체하는 아날로그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사람은 모두 과거를 추억하는 욕망을 가진다. 레트로는 본능에 가깝다. 지나온 자신의 과거든, 사회가 겪은 과거든 타임머신을 탄 듯 추억하며 그 시절의 문화를 소비하는 경향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이걸 기성세대의 레트로와 구분하기 위해 ‘뉴트로(new+retro)’라는 말을 만들어냈을뿐 본질에서 큰 차이는 없다. 현재 겪지 못하거나, 현재 잘 볼 수 없는 것들을 욕망하는 건 세대나 시대와 상관없이 나오는 욕망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날로그를 탐닉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본성이다. 아날로그 세대도 살면서 편리와 진화를 위해 디지털을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아날로그를 다 버린 건 아니다. 반대로 디지털 네이티브도 디지털로만 이뤄진 삶을 살려는 게 아니다. 우린 로봇이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디지털 세대든 아날로그 세대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적당히 섞어서 누리며 살아간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날로그에 빠지는 건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김용섭 트렌드 분석가·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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