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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못잡아 1시간 허탕"...방역 풀리자 알게된 '택시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방역 풀리자 심야 ‘택시 대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난 1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는 자정을 앞둔 늦은 시간에도 시민들이 빈 택시를 잡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오랜만에 외부 활동을 즐기는 경우가 늘면서 ‘택시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지난 1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는 자정을 앞둔 늦은 시간에도 시민들이 빈 택시를 잡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오랜만에 외부 활동을 즐기는 경우가 늘면서 ‘택시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손님은 운이 좋은 거예요. 아까 태운 손님은 1시간 동안 택시 기다리다가 겨우 탑승했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11시, 서울 중구 시청역 근처에서 ‘운’ 덕분에 택시에 몸을 실은 정모(29)씨가 택시기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정씨는 “어제 저녁에도 잠실역 근처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는데 도무지 잡히질 않아 결국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며 “영업시간 제한이 느슨해진 이후 도심 곳곳마다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지옥도가 펼쳐진다”고 전했다.

1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되자 서울 도심은 밤늦게까지 시민들로 북적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심야시간(자정~오전 2시) 택시 이용 승객은 영업시간이 오후 9시로 제한됐던 지난 2월 대비 96.2% 증가했다. 거리두기 조치로 억눌렸던 야외활동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셈이다. 반면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2시 사이의 시간당 택시 운행 대수는 같은 기간 1만422대에서 1만6860대로 62% 증가에 머물렀다. 곳곳에서 귀갓길 택시를 잡으려는 승객들로 북적이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이유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20일부터 개인택시 3부제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일시 해제하고, 심야전용택시의 운영시간을 2시간 확대하는 등 특단의 조처를 내린 바 있다.

방역 풀린 뒤 택시 승객 두 배로 늘어

서울시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 갑작스레 택시 승차난이 벌어진 이유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택시 운전자 감소를 들었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택시 운전자 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8월 26만8277명에서 지난 2월 23만9434명으로 2만8000명 감소했다. 특히 법인택시 소속 운전자 중 3분의 1 가량이 택시 운전대를 놓고 다른 일터를 찾아 떠났다. 2019년 8월 10만3000명 수준이던 법인택시 운전자는 지난 2월 7만4000명까지 줄어들었다.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법인택시 기사 조충환씨는 “우리 회사에서도 약 30%의 차량이 번호판을 반납하고 운행을 중단했다”며 “야간에 근무하던 운전자들이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 굉장히 힘들어하다가 음식배달, 퀵서비스 등 비교적 수입이 좋은 업종으로 이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의 입장은 서울시의 진단과 사뭇 다르다. 기사들은 그동안 업계에 만연했던 불만이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매일 회사에 사납금을 내고, 일정 금액 이상 수입을 올려야 하는 법인택시 기사가 눈에 띄게 줄어든 배경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법인택시회사에서 일하는 60대 양원영씨는 “지금 배달, 일용직으로 일하며 버는 돈이 택시기사 일당보다 많은데 누가 택시기사를 하겠냐”며 “한창 손님을 태우고 다닐 시간인데도 이곳 장지동 택시 차고지가 꽉꽉 들어찬 건 택시는 더 이상 돈벌이가 안된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동료인 임종국씨도 “한 달 내내 하루 10~12시간씩 일하는데 월급은 최저임금도 안 된다”며 “법인택시의 경우 사납금도 내야 하는 데다 가스값도 계속 오르고 있어 현재 법인택시 가동률이 30%대로 떨어졌다”고 동조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수십 년간 누적돼온 열악한 노동환경 또한 택시기사들의 이탈을 부추겼다. 2020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택시노동자의 하루평균 실 운행시간은 10.2시간으로, 통상 임금노동자나 시내버스 운전자의 노동시간인 9시간보다 한시간 이상 긴 것으로 드러났다. 실 운행시간에 택시 입·출고시간이나 운행 중 휴식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의 절반가량을 택시 안에서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야간 운행을 꺼리게 되는 이유인 ‘진상 손님’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들을 지치게 한다. 조사결과 택시노동자 81.3%가 최근 1년간 승객으로부터 폭언, 욕설, 협박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매월 1회 이상 같은 경험을 하는 기사 또한 34.7%에 달했다. 양씨는 “야간 운행을 나서면 절반 이상이 술에 취한 진상 손님”이라며 “손님에게 반말, 욕설을 들으면서 운행하느니 차라리 빈 차로 돌아다니다 사비로 사입금을 채우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택시업계 잠식에 나선 플랫폼의 갑질에 백기를 든 기사들도 적지 않다. 서울 성북구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70대 김승학씨는 “빨리 가면 과속한다고 별점을 낮게 주고, 천천히 가면 고의로 속도를 늦춘다고 별점을 낮게 준다”며 “손님 찾기에는 편리한 플랫폼이지만 별점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택시모빌리티가맹점주협의회 소속 기사는 “승객들은 가까이에 있는 택시를 타길 원하는데 플랫폼은 오로지 별점, 후기에 기반해 배차를 해준다”며 “강남에 있는데 강북에서 나온 호출을 강제로 배차하니 손님들은 기다리다 호출을 취소하고, 기사들은 허탕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플랫폼 택시가 처음 도입됐을 때 블루오션을 노린 젊은 기사들이 많이 유입됐지만, 지금은 다 포기하고 떠난 지 오래”라고 전했다.

기사들은 낮은 수입, 열악한 노동환경, 플랫폼 갑질의 삼중고가 결국 택시업계의 고령화를 부추겼고, 그 결과 심야시간 택시 대란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택시 운전자 중 약 45.5%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해당한다. 서울 송파구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60대 노광주씨는 “지금 택시업계에서 40대는 ‘보물’, 50대는 ‘청년’이다”라며 “불합리한 체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기사들은 업계를 떠났으니 야간에 눈이 침침한 고령 기사들이 어떻게 운행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노씨는 “야간에 운행해봤자 손님 1~2명을 태우고 나면 거리가 텅텅 비기 때문에 고령층인 기사들이 생활패턴을 바꿔가면서 운행할 이유가 없다”며 “개인택시 3부제를 일시적으로 해제한다고 해도 지금의 택시 대란이 쉽게 해소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택시 대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결국 택시업계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택시산업의 폐쇄적인 구조상 자체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건 쉽지 않다”며 “정부가 개입해 총량제, 임금구조 등 모빌리티 산업 전반에 산재한 문제를 해결해야 고령화된 택시업계를 재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서울시가 기사들의 건강을 위해 도입한 3부제가 결과적으로 업계 연령대를 상당히 높였다”며 “이해단체 간 갈등이 유발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이 문제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취 승객 횡포에 야간 운행 기피

택시 공급량을 조절해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겠다며 도입했던 택시총량제도 젊은 택시기사들의 유입을 막는 걸림돌이다. 현재 개인택시 영업을 시작하려면 폐업하려는 기사로부터 면허를 양수받는 방법이 유일한데, 이때 투자해야 할 비용이 만만찮다. 개인택시 중개 플랫폼 남바원택시에 따르면 이달 전국 택시면허 시세는 5000만원에서 2억원 수준이다. 차량 구매비용과 보험료 등 기타 제반 비용을 포함하면 최소 1억원가량의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정부가 지난해 관련 법령을 개정해 개인택시의 진입장벽을 낮추자 양수교육 신청자가 3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택시기사 숫자는 되려 줄어드는 이유다. 송제룡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택시면허는 개인택시 기사에게 퇴직금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그렇다면 젊은 기사들이 고비용을 감수하면서라도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직은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택시 공급과 요금을 수요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플랫폼 산업 규제를 풀어 수요에 맞는 모빌리티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타다가 200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는 건 ‘비싸더라도 기사와 승객 모두가 편안한 택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확인시켜준 것”이라며 “피크타임에 타다와 같은 플랫폼 택시가 운행할 수 있도록 하거나 택시도 배달업처럼 단시간 겸업이 가능하도록 제한을 풀면 지금과 같은 대란을 쉽게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처럼 정해진 범위 내에서 사업자가 자유롭게 요금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 교수는 “우리만큼 기사들이 고령화됐던 일본도 요금체계와 임금체계를 바꿔 연봉이 오르니 젊은이들이 제발로 찾아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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