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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안 깎고 4일간 5일치 업무 ‘탄력적 주4일제’에 공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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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16면

주4일제 논의 활발 

지난 1월부터 주 4.5일제를 시행한 CJ ENM 본사의 텅빈 사무실 모습. [사진 CJ ENM]

지난 1월부터 주 4.5일제를 시행한 CJ ENM 본사의 텅빈 사무실 모습. [사진 CJ ENM]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1개월간 이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가 정부 방침에 따라 18일부로 해제됐다. 이에 재택근무가 중단된 직장가(街)에선 차제에 주당 4일만 근무하는 ‘주 4일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위드 코로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불거졌던 찬반론이 최근 온라인의 직장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재차 분분한 것이다. 18일부터 대면근무에 나선 직장인 박모(39)씨는 “1년 넘게 재택근무를 했지만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보다 효율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직원들 사이에 형성됐다”며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에선 SK그룹 일부 계열사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카카오게임즈·에듀윌 등의 기업이 주 4일제 또는 주 4.5일제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벨기에 등 탄력적 주4일제 도입

그런데 최근의 주 4일제 도입 찬반론은 지난해와 달리 ‘임금 문제’로 한층 달아올랐다. 주 4일제를 도입한다고 가정할 때 대다수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급여를 기존처럼 주당 5일치가 아닌 4일치만 주는 데 나설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직장인 입장에선 금전적 손해가 적잖다. 특히 고정급보다 초과근무수당이 임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업종·직군에 속한 직장인은 가계에 타격이 커진다. 직장인 서모(46)씨는 “아직 은행 빚이 많은 나 같은 외벌이 가장들은 일이 힘들어도 지금처럼 (임금을) 받는 게 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10월 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4%는 “임금이 줄어드는 주 4일제엔 반대한다”고 밝혔다. “임금이 줄어도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29%에 그쳤다.

이 때문에 직장가에서는 임금 삭감이 없는 이른바 ‘탄력적 주 4일제’의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 4일제에 유연근무제를 결합해 직장인들이 주당 4일간 5일치 업무를 자유로이 하면서 임금은 5일치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기존엔 하루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 근무했다면, 탄력적 주 4일제에선 하루에 2시간씩 앞당겨 출근하거나 퇴근을 늦추는 식으로 4일간 근무를 몰아서 하고 남은 하루를 쉴 수 있다. 그러면 직원들은 기존 임금 그대로 받으면서 주말에다 월요일 또는 금요일을 합해 주 3일을 쉴 수 있다. 여기에 기업도 일반적인 주 4일제 도입 때 우려되는 생산성 저하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실제로 한국처럼 최근 사회적으로 근로제도의 개선 요구 목소리가 높아진 해외 주요국은 이 같은 탄력적 주 4일제 도입에 나서고 있다. 근로자와 기업 모두 만족할 만한 절충안이라고 봐서다. 일본과 벨기에가 대표적이다. 12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선 전자 분야 대기업 히타치(Hitachi)가 도쿄 본사 등의 직원 약 1만5000명을 대상으로 탄력적 주 4일제를 연내 도입하기로 했다. 보도에 따르면 히타치는 월 근무시간과 임금을 유지하면서 직원들이 상황에 맞게 근무시간을 바꾸게 하기로 했다. 히타치 측은 “다양한 인재 확보, 직원들의 동기 부여, 생산성 향상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일반 주 4일제를 도입하기엔 생산성 저하 우려가 만만찮고, 지금의 근로제도를 유지하자니 사회적 여론이 부담스러운’ 일본 내 다른 기업들도 탄력적 주 4일제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는 정부 차원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올 2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벨기에 정부는 근로자들이 주 4일만 근무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하루당 최대 근무시간을 기존 8시간에서 9시간 30분으로 외려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노사가 합의하면 최대 10시간 근무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삭감 없는 탄력적 주 4일제 도입을 목표로 한 것이다. 역시 연내 시행이 유력하다.

한국 근로시간 OECD 회원국 중 3위

이를 주도한 기업인 출신의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민들이 더 탄력적으로 일하면서 사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 도입에 나선 것은 이들 두 나라만이 아니다. 근로자들을 위해 근로시간만 줄이는 데 오히려 중점을 두기도 한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의회에선 500명 이상 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존의 주 5일(40시간)에서 주 4일(32시간)로 근로시간을 줄이는 법안을 발의했다. 다만 임금의 삭감은 없어야 하며 초과근무 땐 정규 급여의 1.5배 이상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법안 발의를 이끈 민주당 소속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캘리포니아주 의원은 “과거 산업혁명기의 근로제도를 고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더 많은 근로시간과 더 나은 생산성 사이엔 아무 연결고리가 없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 등 첨단산업 중심지로 구성돼 있어 법안 통과 땐 미국 전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대변혁이 일어날 전망이다. 이외에 4차 산업혁명론의 본고장 독일에서도 정보기술(IT) 업체 아윈(Awin)이 올 1월부터 급여와 복지 혜택 삭감이 없는 주 4일제를 시행하는 등 적극적 행보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금이 줄어드는 주 4일제는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강한 한국이 이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분석한다. 특히 생산성 유지에 민감한 기업들은 일본·벨기에의 탄력적 주 4일제 도입 성과가 좋을 경우 벤치마킹할 여지가 생긴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박사는 “정치권과 노동계가 임금은 그대로 두되 근로시간만 줄이는 주 4일제 도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고용주들은 일자리를 줄이거나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하는 식으로 벌충하려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실업률 상승과 고용 불안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어 주 4일제에 유연근무 개념을 더해 임금과 근로시간을 동시에 유지하는 방안을 유념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탄력적 주 4일제가 임금 수준을 유지해줄 수는 있어도 근로자들 삶의 질 개선엔 도움이 안 될 것이란 반론 또한 만만찮다.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0년 기준 190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1687시간을 크게 상회했다.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은 3위다. 이에 대한 근본적 개선 없이 5일치의 근무를 4일간 한다면 직원들의 피로감만 가중돼 기업 입장에서도 생산성 유지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 적용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며 “OECD 회원국 중 최장 수준인 근로시간 단축부터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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