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미군 주둔 질곡의 역사 ‘용의 땅’ 100년 만에 용틀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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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14면

대통령 집무실 들어설 용산 

보름 뒤면 ‘용산시대’가 열린다. 현재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 집무실(대통령실)이 들어서는데, 주변 용산 미군기지 부지가 공원화되면 미국 백악관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될 전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미국의 백악관 주변처럼 ‘프레지덴셜 에어리어’(presidential area)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용산은 풍수상 길지로 꼽힌다. 조선 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는 현재 국방부 터인 언덕에서 용이 나타났고 해서 용산(龍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용은 왕을 뜻하므로, 많은 풍수지리가들은 이곳을 명당으로 꼽는다. 실제로 넓은 평지에다 남쪽으로는 한강을 끼고 있고 북쪽으로는 남산이 포진해 있다.

대통령실·미군기지 이전 시너지 효과

풍수를 떠나 용산이 대통령실로 낙점된 건 ‘지리적’ 이점 덕분이다. 용산은 서울의 한 가운데에 있는 ‘노른자위 땅’으로, 서울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다. 용산역은 KTX의 출발점이고, 용산역과 그 주변으로는 서울·수도권 전철 1·4·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가 지난다. 여기에 GTX-A노선, B노선과 함께 지난해 D노선도 용산까지 직결 운행을 추진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사통팔달’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연구원은 “용산의 지리적 이점이 그동안 덜 부각돼 왔으나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슈를 기점으로 상징성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과거에는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702년(숙종 28년)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 격인 승정원이 조선국정 전반을 담은 기록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용산은 경강(서울 뚝섬에서 양화나루에 이르는 한강 일대를 이르던 말) 일대 상인들의 본거지였다. 전국에서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이 몰리며 수륙 교통의 중심지이자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용산이 이처럼 뛰어난 입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강남이나 광화문·목동 등지에 비즈니스·주거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내줘야 했던 건 역설적으로 입지 여건이 ‘너무 뛰어난’ 때문이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양 등 수도가 코앞인 데다 한강변에 위치해 군사 물자 이동이 편리하다는 장점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용산에는 몽골·일본·미국 등이 차례로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개발이 제한됐다. 김천수 용산연구센터장은 “1906년 러·일전쟁 이후 용산, 이태원 일대였던 둔지산 자락이 병영으로 군사 기지화되면서 용산은 질곡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군은 용산 일대 990만㎡의 토지를 강제 수용했고, 이 중 389만㎡ 규모에 군사시설을 들였다. 광복 이후 일본군은 떠났지만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군의 근거지가 됐다.

이로 인해 용산은 상대적으로 강남 등지에 비해 개발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김 센터장은 “용산 미군기지로 인해 서울의 어떤 균형적 발전이 분명히 저해된 측면이 있고 주변부의 개발에 대한 제한이 많이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197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한강이남 개발을 본격화하자 주택 수요는 강남권(서초·강남·송파구)으로 대거 이동했다. 1970년대부터 동부 이촌동 일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동부 이촌동과 한남동 일대가 개발되긴 했지만, 서부 이촌동 부근은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사실상 용산이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워낙 입지여건이 좋기 때문에 그동안 집값은 강남 못지않았다. 1980년대 초 강남 압구정동이 떠오르기 전부터 동부 이촌동과 한남동을 중심으로 용산은 한국의 대표적 ‘부촌’이었다. 한남동 일대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재벌 총수들의 주택이 줄지어 있고, 이촌동 일대 아파트는 서울 집값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촌동·한남동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눈길을 끌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미군기지 이전’ 논의가 시작되면서 용산이 서울 부동산시장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 논의가 구체화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면서 곧 관심에서 멀어졌다.

용산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07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는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오 시장은 정비창 51만5483㎡에 15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를 비롯해 초고층 빌딩 20여 동과 주택·상업·문화시설을 들여 용산을 서울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 인천공항이 차로 1시간여 거리이고, 업무시설이 밀접한 광화문·여의도·강남권 삼각벨트의 한 가운데에 있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었다. 실제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조성되면 용산이 홍콩에 버금가는 동북아의 비즈니스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총 사업비가 50조원이 넘어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이 사업은 그러나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좌초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호재로 무섭게 오르던 용산 일대 집값·땅값은 2013년에만 6.34% 떨어지기도 했다. 사업 좌초 직후에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참여했던 민간 사업자들끼리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개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에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소극적이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마저 용산 개발을 추진했지만, 이 역시 주택시장 불안 등의 이유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용산역 주변 개발사업 재추진 가속도

이런 역사적 이유 때문에 보름 뒤에 출범할 대통령실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통령실이 자리하면 규제가 가해질 것이라는 우려와 대통령실로 인해 용산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엇갈린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성격상 ‘경호’에 따른 규제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저격총 사정거리가 보통 2㎞로 알려져 있는데, 용산의 높은 빌딩이 지어지면 상식적으로 경호는 더 지켜지기 어렵게 된다”며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경호가 무시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하면서 집값이 들썩이고 있지만 (개발제한으로)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며 “대통령 경호 문제로 인해 규제를 강화하는 건 아닌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실과 미군기지 이전이 시너지를 내면서 개발이 더 신속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용산 미군기지는 2017년 평택 이전이 결정됐고, 현재까지 용산 미군기지 부지(203만㎡)의 10분 1가량인 21만8000여㎡가 반환됐다. 올해 상반기 내 부지의 25%까지는 반환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윤지해 연구원은 “대통령실이 들어오게 되면 주변 도로 요건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며 “고급 빌라나 주상복합아파트 같은 경우 재평가 이슈로 작용할 수 있고, 재개발 지역 등 저층 주거지에 대한 개발 기대감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나 개발 여부를 떠나 대통령실 입주라는 상징성 때문에 용산의 운명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용산은 아픔이 많았고 진통도 있었다”며 “지난 20년 간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이번 집무실 이전이 용산의 여러 여건과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용산구 최근 아파트값 상승률 강남·서초구와 비슷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설 용산 국방부 일대 전경.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설 용산 국방부 일대 전경. [연합뉴스]

대통령실 입주를 두고 여러 전망이 나오지만 당장은 주변 부동산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대선 직후 한 달간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값 변동률은 용산이 가장 높은 0.38%였다. 중구(0.33%)와 동작구(0.13%)가 그 뒤를 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매매 변동률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주(18일 기준) 용산구 아파트값은 0.03% 올라 서울에선 강남구(0.03%), 서초구(0.03%)와 비슷한 상승률을 보였다.

14일 용산구 문배동 용산KCC웰츠 타워는 15억30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 아파트의 직전 신고가는 지난해 4월 15억원이었다. 지난달 24일 한남동의 나인원한남 206㎡(이하 전용면적)는 85억원의 신고가로 손바뀜했고,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140.81㎡은 지난달 18일 40억5000만원으로 거래되며, 지난해 7월 신고가인 33억보다 7억원 가량 뛰었다.

한남동 부근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집무실 이전이 딱히 호재라고 보지 않는다”며 “최근 신고가를 쓰고 있는 건 지리적 이점이나 용산기지 공원화 등의 다른 호재가 이미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입주한 뒤에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은 “주택가격엔 영향이 크진 않을 것 같다”며 “해당 일대는 교통 인프라나 교육 등의 요소가 훨씬 더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집무실 이전이 아파트값에 특별히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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