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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배수의 진'이 파국 막아…'검수완박'싸움 멈춰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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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국회의장의 막판 중재가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회의 파국을 막았다. 22일 오전 박 의장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8개항의 중재안을 제시했고 양당은 의원총회를 거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박 의장과 양당 원내대표는 오후 3시 합의문에 서명했다. 박 의장은 “양당 입장의 간극이 워낙 커서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을텐데 뜻을 함께 해 준 것에 대해 한분 한분께 감사한다”며 “더 이상 검찰개혁 관련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앞으로는 민생과 국민을 위한 국회,다시 신뢰받는 국회가 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건조정위에 회부한 법안을 철회하고 다음 주 합의에 따른 새 법안을 법안소위→법사위 전체회의→본회의에서 차례로 심사ㆍ의결해 5월3일 국무회의 전에 정부로 이송하기로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 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국회사진기자단]

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 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국회사진기자단]

양당이 합의한 중재안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아 직접수사권은 단계적으로 폐지하되, 보완수사권은 절차와 요건을 한정해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6개 범죄 영역(부패ㆍ경제ㆍ공직ㆍ선거ㆍ방위사업·대형참사) 중 부패ㆍ경제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당분간 유지하되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FBI)이 설치되면 폐지된다.

검찰의 직접 수사 총량을 줄이기 위해 특수부 6개를 3개로 감축하고, 특수부 검사 수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다.

여야는 중수청 설치 논의를 위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6개월 내에 입법을 완료하고 그 후 1년 내에 중수청을 발족시킨다는 일정에도 합의했다. 박 의장은 사개특위 구성도 제시했다. 민주당 7명, 국민의힘 5명, 비교섭단체 1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다수당인 민주당이 맡는 방안이다. 중재안에 따르면 중수청이 설치되더라도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무원의 범죄는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별건 수사는 금지되고 검찰의 보완수사권은 검사가 시정을 요구했던 사건,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 등에 한해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법 시행 유예기간은 4개월로 못박았다.

이날 오전까지도 평행선을 달리던 양당을 합의로 몰고 간 건 박 의장의 배수진이었다. 박 의장은 이날 오전 9시45분 양당 원내대표에게 중재안을 제시한 사실을 알리면서 “오늘 양당 의원총회에서 의장 중재안을 수용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국익과 국민의 관점에서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수용한 정당의 입장을 반영해 국회 운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양당 원내지도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중재안 외에는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은 중재안이라도 처리할 것이냐 수사권 박탈 입법을 포기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국민의힘은 중재안의 처리냐 입법 불발이냐가 과반의석을 점한 민주당의 선택에 달린 처지에서 각기 의총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1시간23분 만에, 민주당은 2시간4분 만에 “수용”을 결정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의총 대체로 순탄…김용민 “의장 중재방식 헌법파괴적”

양당 의총은 예상보다 순탄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법사위원은 “현재 시스템보다 더 열악해지는 거 아니냐, 결국 민주당이 원하는 검수완박이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강한 반대는 없었다”며 “권 원내대표가 검찰의 역사까지 설명하면서 ‘검ㆍ경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한쪽만 강하면 부패한다는 관점에서 봐달라’는 취지의 말을 여러번 하며 동의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총에선 홍영표ㆍ우원식ㆍ김민석 등 중진그룹이 주도해 수용론으로 기류가 잡혔고 검수완박 강경파인 김용민ㆍ이학영 의원만 반대 의견을 주장했다고 한다. 민주당 소속의 수도권 초선 의원은 “이 의원의 반대는 언론중재법 개정 TF도 공전하고 있는데 사개특위서 중수청을 도입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취지였고 중재안 자체를 전면 반대한 것은 김용민 의원 하나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총 참석자는 “검ㆍ경 수사권 조정 등을 주도했던 김종민 의원 등 다수의 의원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인정은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나 기소권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해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다만 김용민 의원과 법안 꼼수처리를 위해 탈당까지 감행한 민형배 의원은 장외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병석 의장의 최종 중재안 제안과정은 헌법파괴적”이라며 “의장이 자문그룹을 통해 만든 안을 최종적으로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입법권 없는 자문그룹이 실질적인 입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 의원도 박 의장의 중재방식에 대해 “입법권을 의장이 전유한 것이고 의회민주주의 파괴한 것”이라며 “헌법파괴적이고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강행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형배 법사위원이 탈당한 것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를 형해화시키려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꼼수″라고 반발해다. 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강행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형배 법사위원이 탈당한 것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를 형해화시키려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꼼수″라고 반발해다. 뉴스1

민주당은 수사·기소 분리, 국민의힘은 보완수사권 유지 명분 

민주당은 수사ㆍ기소 분리 원칙 명시와 중수청 설치 합의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폐지하려던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하게 된 것과 부패ㆍ경제 범죄 수사권 박탈을 저지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우리가 그렇게 싸운 게 보완수사권 때문”이라며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검찰단계에서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어져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고 말했다. 이어 권 원내대표는 “부정부패 척결을 맡겨 놓은 공수처도 경찰도 큰 사건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래서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지켜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으로 생긴 여러가지 국민 기본권 침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식 하에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과 4월 처리, 그리고 국가 반부패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한 한국형 FBI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반복 주장했다”며 “세 부분이 기본적으로 반영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한국형 FBI가 만들어지면 남겨놓은 2대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권도 법안 처리에 6개월, 준비 및 설치에 1년 정도 뒤에는 폐지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야의 극한 대결이 극적 타협으로 귀결된 것에 대해선 박 의장의 배수진 외에도 새정부 출범과 6월 지방선거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결과는 해석도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합의가 불발됐다면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무리수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입장에선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회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려면 민생모드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걸 의원들이 다 느끼고 있었다”며 “민주당 도움 없인 윤석열 정부가 필요한 입법이 불가능한 상황을 잘 아는 국민의힘도 처음부터 사생결단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여야 합의로 한국형 FBI 기획과 구상 등은 합의사항 이행은 5월10일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숙제가 됐다. 최지현 대통령직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인수위는 원내에서 중재안이 수용됐다는 점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재 수용이 윤 당선인의 의중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 대변인은 “(당선인의 입장을) 별도로 듣지 못했다”며 “해당 분과의 입장을 받아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중재안을 윤 당선인에게도 보고했느냐’는 질문에 “이제 끝났으니까 사후에 간단하게 보고할 것”이라고 반응했다. 윤 당선인은 2019년 7월 인사청문회에선 별도의 수사청 설립을 전제로 한 수사ㆍ기소 분리 문제에 대해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지만 대선 국면에선 “중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입장을 취했다. 익명을 원한 인수위 관계자는 “한국형 FBI는 경찰ㆍ검찰ㆍ공수처의 기능 조정과 인적구성 재편성 등 복잡한 문제”라며 “쉽지 않은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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