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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삶은 계속된단다” 소중한 이를 잃은 모든 이를 위로하며

중앙일보

입력 2022.04.22 06:00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망가진 정원』이 떠오른 건 바로 이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여느 주말처럼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집어 들고 SNS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4월 16일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날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이보다 더 맞는 문장을, 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이 책에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다. 죽은 멍멍이에게 손을 얹은 채 고개를 떨군 에번의 뒷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절망이 느껴진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다. 죽은 멍멍이에게 손을 얹은 채 고개를 떨군 에번의 뒷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절망이 느껴진다.

이 책은 이 문장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문장 전엔 밝고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행복의 주인공은 에번, 그리고 에번의 반려동물 멍멍이죠. 이 둘은 정원을 가꾸며 세상 행복하게 삽니다. 그림만 봐도 미소가 절로 나올 정도로요. 그러던 어느 날, 멍멍이가 죽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죠.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소중한 이가 죽었는데, 에번의 삶은 계속됩니다.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오죠. 가혹하게도 말입니다. 창밖의 정원을 보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어느 날 아침, 에번은 성을 내며 괭이를 마구 휘두르죠. 정원을 깡그리 망가뜨려 버립니다. 정원은 에번의 삶, 그러니까 인생입니다.

하지만 정원은 곧 다시 무성해집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망가뜨리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듯이요. 정원을 가득 채운 건 잡초였습니다. 만지면 가려운, 뾰족하고 까끌까끌한, 냄새마저 고약한 잡초요. 에번은 어둡고 거친 잡초가 마음에 듭니다. 잡초들을 돌보기 시작하죠.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요.

이 책이 수작(秀作)인 건 남겨진 이의 감정을 너무도 세밀하게 그렸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달리 먹고, 정원을 다시 가꾸기 시작한 에번은 어느 날 문득, 다시 이런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멍멍이도 없는데 지금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한 번 마음을 달리 먹는 것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면 깊은 슬픔이 아니겠죠. 그의 아픔을 가늠하려는 시도마저 힘이 듭니다.

이 책이 수작임을 증명하는 장면. 에번은 무성해진 잡초를 보고 다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지만, 곧 다시 정신을 차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이 수작임을 증명하는 장면. 에번은 무성해진 잡초를 보고 다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지만, 곧 다시 정신을 차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에번의 발밑에 호박 덩굴이 차입니다. 처음엔 잘라버릴 생각으로 덩굴을 들여다보죠. 꺼끌꺼끌한 줄기, 보송보송한 솜털 잎, 가늘고 길고 꼬불꼬불한 덩굴손을요. 그리고 덩굴을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끝내 모질어지지 못한 그의 마음이 알듯 모를 듯 전해집니다. 호박은 쑥쑥 자라죠. 그리고 에번만큼이나 커집니다.

그 어떤 일이 터져도, 삶은 계속됩니다. 가혹하게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 가혹한 삶을 우리는 끝내 살아냅니다. 왜일까요? 그건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죠. 누구도 돌보지 않지만 무성해지는 잡초처럼요. 호박처럼요. 에번이 잡초와 호박을 보고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은 건 그래섭니다. 그 잡초가, 호박이 에번을 다시 양지로 끌어내죠.

가꾸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속에서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호박. 바로 이 호박이 에번을 다시 삶으로 끌어낸다.

가꾸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속에서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호박. 바로 이 호박이 에번을 다시 삶으로 끌어낸다.

자신만큼이나 큰 호박을 들고 에번은 품평회에 나갑니다. 에번의 담장 안 정원은 어둡고 쓸쓸했지만, 담 넘어 세상은 활기가 넘칩니다. 품평회에 간 에번은 친구를 만나고, 공 던지기를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죠. 피자나 핫도그 같은 행사 음식도 먹고요. 예전과 똑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에번의 호박은 품평회에서 3등을 합니다. 부상은 상금 10달러 혹은 아기 동물이 든 상자. 에번은 10달러를 고릅니다. 상금을 받아들고 돌아서다 상자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죠. 그리고 무심코 상자를 들여다봅니다.

에번은 품평회에서 상금 10달러 대신 어린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덜컹거리는 에번의 빨간 자동차에서 리듬감이 느껴진다.

에번은 품평회에서 상금 10달러 대신 어린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덜컹거리는 에번의 빨간 자동차에서 리듬감이 느껴진다.

이 책은 2019년 칼데콧 아너상을 받았습니다. 영국 그림책 작가 랜돌프 칼데콧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상으로, 뉴베리상과 함께 그림책 노벨상으로 꼽히는 상입니다. 그림책 좀 읽은 양육자라면 아실 겁니다. 수상작의 '비밀'을요. 수상작을 아이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어요. 이런 책들은 주로 죽음이나 이별, 전쟁 같은 어린이책이 잘 다루지 않는 주제를 다루거든요. 이런 주제를 다루면서 서사가 풍부하긴 어렵습니다. 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하게 되죠. 아이들은 서정적인 이야기보다 서사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에 상이 수여되는 건 아이들도 삶의 진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느새 8년이 지났습니다. 세월호가 떠난 지요. 소중한 아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하겠지만요. 남겨진 가족들의 정원에도 잡초가, 호박이 자랄 겁니다. 그 잡초와 호박이 담 너머로 나올 수 있는 끈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상자를 열어 작은 생명을 만나고, 다시 사랑하게 되길 마음 깊이 기도합니다.

한 줄 평  소중한 이를 잃은 이의, 짐작할 수 없는 아픔을 담아낸 수작(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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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간 박쥐』 책을 좋아하는 박쥐들이 열린 창문으로 도서관에 들어가 한 밤의 축제를 벌인다.

추천 연령  글밥은 적지만, 남겨진 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이해한다고 공감하진 않을 수 있어요. 책 전반에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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