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군인간 성관계, 혐오라 볼수 없다" 대법 판례 바뀐 배경 [그법알]

중앙일보

입력 2022.04.22 05:00

업데이트 2022.04.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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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23] 군부대 밖 합의된 동성 군인 간 성관계, 처벌 대상인가요? 

남성 군인 2명근무 시간이 아닌 때에, 부대 바깥 사적 공간에서, 서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 두 사람은 군형법을 어긴 것일까요?

기존의 우리 대법원 판례는 상호 합의를 했더라도 군형법상 '추행'이라고 봐 왔습니다.그런데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무죄 취지로 판례를 바꿨습니다. '그법알'에서 판결문을 들여다봤습니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연합뉴스

관련 법령은!

먼저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을 살펴보겠습니다.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2013년에 한 차례 바뀐 것입니다. 기존에는 남성 간 성행위를 뜻하는 단어, '계간'이 법 조항에 있었는데요. 즉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 자체가 처벌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법이 바뀔 당시에 "계간이 동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용어"라며 단어가 빠졌고, '항문성교'라는 단어가 들어갔습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법이 바뀐 배경부터 살폈습니다. "항문성교는 남성 간 행위에만 한정해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다"라며 "법이 개정된 데에는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비하하거나 금기시해 무조건적인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법원의 해석 역시 바뀔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 판례는?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대상이 된 남성 직업 군인 두 사람은 1·2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 하에 가진 성관계로 지난 2017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2심 재판부는 "남성 피고인들 간의 성행위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서 군형법이 금지하는 '추행'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계간'이라는 단어가 법에서 빠졌다고 해도, 동성 군인 간 일어나는 항문성교나 성행위는 여전히 그 자체로 처벌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군형법에서 말하는 '추행'에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가 포함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위는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합의 여부 등을 따로 살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바뀐 대법 판단은?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추행'이라는 기존 해석을 바꿀 때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 왔다"면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다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다수의 대법관들이 '오늘날 국내외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한 것에 이번 판결 의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대법관 13명 중 8명의 다수 의견은 군형법상 추행을 처벌하는 것이 어떤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환기했습니다. 여기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뿐 아니라,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군 내 성폭력이 늘어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처벌 조항이 강화되어 온 배경을 살핀다면, 이 법 규정으로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적 자기결정권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 관념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 책임으로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행위를 할 권리'를 뜻합니다.

결국 성행위가 ① 사적 공간에서 합의에 따라 이뤄졌고 ②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침해한 게 없으니, 유죄로 본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게 이번 사건의 결론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런 사건까지 처벌한다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군형법을 오랫동안 적용받는 직업군인들의 경우 기본권이 매우 크게 제한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대법관 2명의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조재연 대법관과 이동원 대법관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성행위라고 하더라도,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은 침해되는 것이므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대법원 측은 "법원의 법률 해석 권한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어 기존 해석을 유지하자고 했을 뿐, 동성 간 성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설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재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재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은 이 사건이 법정에 서게 된 배경도 설명했습니다. 2017년 초,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이 성소수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적극적으로 수사 대상을 확대했다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이루어져 아무런 실질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 않던 과거의 행위를 수사하고, 십여명의 군인을 기소했다"라고도 했습니다. 다수 의견 역시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당시 진술거부권도 고지하지 않은 채 자백을 받고,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는 등 위법하게 수사한 건 군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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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이야기로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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