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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거면 대장암 수술 안했다"…배변 고통 날린 기적의 운동 [나영무 박사의 '말기 암 극복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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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막내 누님은 부인암 4기였다. 수술받은 다음 날 병문안을 가서 음료수를 권해 드렸더니, 누님은 아직 방귀가 나오지 않아 음료수를 마실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누님께 “그냥 누워만 있는데 방귀가 나오겠어?”라며 운동을 알려 드렸다. 처음에 누님은 “어제 7시간 수술한 내가 오늘 무슨 운동이란 말이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고 누님이 누워서 할 수 있는 운동을 6가지 정도 찾아 가르쳐 주었고, 그 운동을 2회 정도 실시하고 ‘방귀’가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촌세브란스 김남규 교수님과 함께 수술 후 대장암 환자 병상 운동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운동이 환자의 장 회복을 도와 퇴원을 1~2일 앞당기고, 근육 손실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도 발표하였고, 최근 대장항문학회에서도 발표하였다.

운동이 가져온 놀라운 효과다. 재활 운동을 통해 암을 극복한 사례는 많은데 솔병원 나영무 원장님도 그중 한 분이다.

나 원장님과 한 달 전에 만나 암 재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책임을 맡은 연세대학교 미래융합 연구원 ‘암당뇨운동의학센터’ 와 솔병원과 MOU를 맺고 돌아왔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2009년부터 시작한 암 연구들과 연구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환자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009년 1학기 치료레크리에이션 수업을 진행하며, ‘말기 암 환자가 자신의 죽는 날을 기다리며 우울하게 사는 것보다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최대한 즐겁고 재미있게 살다 보면 삶의 질이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데 암 환자가 즐겁게 살다 보면 수명도 늘어나지 않을까?’라고 미처 생각해 보지 않은 이야기가 나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내 강의에 스스로 설득돼 연구실로 올라와 ‘운동’ ‘암’ 그리고 ‘생존’ 이라는 키워드로 의학 학술지 사이트를 검색하였다.

그때 하버드대학교 마이어하트 교수(Meyerhardt, J)가 신체활동이 대장암 재발을 50%가량 낮추고, 홈스 교수 (Holmes, M)가 신체활동이 유방암 재발 역시 50% 낮춘다는 논문을 읽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런데 왜 운동이 이런 암의 재발을 낮추는지 자료를 조사해 보니, 2009년 당시엔 그 분야 연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비만이 암의 발병과 재발의 위험을 높이는 기전을 조사해 보니, 비만이 당뇨병의 위험을 높이는 이유와 거의 흡사했다.

사실 나는 캐나다 알버타에서 석사와 박사,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왜 비만이 당뇨병을 유발하고, 어떻게 그리고 왜 운동이 당뇨병을 개선하는지 연구했다.

그래서 운동이 암 환자의 재발을 낮추고, 생존율을 높이는 이유가 운동이 당뇨병을 개선하는 이유와 같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 외과 김남규 교수님을 뵈러 가정의학과 이지원 교수님, 간호학과 우상희 교수님과 함께 찾아가 명함을 드린 날을 기억한다.

그때 김남규 교수님은 나의 명함을 보시며 “전용관 교수님! 꼭 과학적 근거기반 암 환자 운동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세요. 환자들이 매일 어떤 운동을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데, 잘 몰라서 그냥 걸으라고만 합니다.” 이 말씀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추상희 교수님과 고민하면서 과학적 근거기반 운동프로그램 개발 10단계를 만들어, 지난 13년간 운동과 암 관련 연구를 국내외 학술지에  90여편 발표하면서 그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운동과 암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영무 원장님의 ‘말기 암 극복기’ 칼럼에 서술한 것 같이 배변 문제로 고생하시는 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고생 정도가 아니라 “이럴 줄 알았으면 대장암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하시고, 배변 문제로 죽고 싶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배변 문제 개선 운동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

배변 증상이 있는 환자들 120명을 대상으로 운동 군과 대조군으로 나누어 12주간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환자들이 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3-4주 만에 하루 수십 번 화장실에 앉아 계시던 분들이 하루 3~4번으로 배변횟수가 줄고, 가스 참이 줄고, 변실금이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운동이 대장암 환자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유방암 환자가 수술하고 6개월, 심지어는 1~2년이 지나도 수술한 쪽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촌세브란스 유방암센터와 함께 5년에 거쳐 운동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 효과를 검증한 결과, 수술 후 운동프로그램 적용을 한 그룹은 불과 4주 만에 수술 전 수준으로 어깨관절 가동 범위와 근력이 회복되었고, 6개월이 지나서는 수술 전보다 어깨 근력이 1.5배 이상 더 좋아졌다.

반면 운동을 참여하지 않은 그룹은 6개월이 지나도 근력이 수술 전과 비교해 60%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암 환자에게 좋은 운동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도, 현재 의료법상 물리치료사, 그리고 의사 외에는 환자에게 운동치료를 시행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솔병원과 MOU는 암 환자 운동프로그램을 개발 검증할 뿐 아니라, 암 환자의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기회와 함께 우리 연구실의 비전인 ‘운동과 신체활동을 통해 건강한 대한민국 만들기’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운동 관련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운동이 이긴다’를 검색하시거나 https://youtu.be/V8H-wcLVo2E 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전용관 교수 연세대학교 암당뇨운동의학센터장, 스포츠 응용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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