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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무성의한 입법 재해"…‘입법 폭주’ 성토장된 변협 토론회

중앙일보

입력

"통계를 보면 1년간 형사소송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시민 숫자는 100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이런 법을 대의명분만 앞세워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내던지는 처사는 무성의한 '입법 재해'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까?"(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회관. 뉴스1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회관. 뉴스1

대한변호사협회가 21일 서울변호사회, 한국형사소송법학회와 공동 개최한 ‘형사소송법ㆍ검찰청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 및 개선 방안에 대한 긴급 토론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현직 검사와 변호사, 대학교수 등 법률 전문가들은 검수완박의 내용은 물론 충분한 논의 없이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보완수사권 박탈, 시민 억울함 호소 기회 빼앗길 것"

토론회에 참석한 이완규 변호사는 민주당의 개정안을 두고 검찰의 직접수사는 물론 보완수사 영역의 수사권까지 모두 폐지하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검찰 보완수사는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와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로 구분된다. 민주당 개정안은 이 가운데 직접 보완수사를 제한한다.

이 변호사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도 즉각적으로, 검사가 원하는 만큼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경찰의 보완수사가 지체돼 사건 처리가 늦어지거나, 공소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에서 보완수사가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고 짚었다.

이는 실제 통계로 뒷받침된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인천지검 이기명 검사는 지난해 상반기 전국 검찰청이 경찰에 요청한 보완수사 요구가 어떻게 이행됐는지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3개월을 넘겨 이행되는 비율이 30.5%(2만2010건)에 달했다. 보완수사가 미이행된 비율도 13%(9429건)였다.

민주당 발의 검수완박 그래픽 이미지..박춘환 기자

민주당 발의 검수완박 그래픽 이미지..박춘환 기자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에 나서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완규 변호사는 "공소권을 행사하기 위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더라도 검사는 대처할 수 없다. 공소 수행 업무와 형사사법 체계 운영에 큰 어려움이 생기다"고 했다. 그는 "보완수사는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시정을 통한 인권 보호 기능을 띤다. 보완수사 영역에서마저 '검수완박'이 이뤄지면 시민이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마저 빼앗길 것"이라며 "공소권의 적정한 행사에 필수적인 보완수사권은 인정하고, 직접수사는 필요성이 있다고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범위로 축소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더딘 수사에 사법 불신 커졌는데… '검수완박' 무리

검경수사권이 조정된 지 1년 만에 추진되는 '검수완박'은 시기적으로 무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선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던 사법개혁특위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를 검찰에 남긴 것은 해당 범죄 수사에 외압 가능성이 크고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경수사권이 조정 이후 경찰 업무는 폭증했다. 경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안착시키는 데 1년은 충분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검수완박은 경찰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변협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피해실태 사례를 보면 의뢰인이 수사지연 등에 따른 불만을 표출한 사례는 305건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응한 변호사들은 이 같은 불만이 회복지연 등 실제적인 피해로 연결되고, 결국 자포자기하거나 사법제도를 불신하게 되는 피해자들도 많다며 우려했다.

고소당한 피의자가 몇 달씩 조사를 받지 않아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본 끝에 피의자와 경찰의 유착 관계를 의심하는 사례도 있었다. 1년이 지나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피의자 불기소 결정이 나자 사건 진행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더딘 진행에 합법적인 구제마저 포기하는 피해자도 많다"며 "변호사로서 앞으로 어떻게 대체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민형배 의원.뉴스1

민형배 의원.뉴스1

"검수완박 위한 민형배 탈당…상상 초월한 폭거"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본래 경찰이 담당하던 중대산업 재해 수사를 검찰과 근로감독관의 수사 관할로 바꿨던 바로 그 국회의원들이 이제는 검수완박을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숨진 여자친구를 발견해 신고했다가 범인으로 몰렸던 '신림동 김순경' 사건을 예로 들며 "시급한 것은 경찰 수사 내용에 책임질 사법경찰관을 명확하게 지정하고, 오랜 시일이 지난 이후라도 담당 경찰관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래야 사건을 대충 처리해 내던지는 무책임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처리를 위해 전날 민형배 의원이 탈당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호선 교수 국민대 법대 교수는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법사위에서 여당의 들러리 서기를 거부하자 민주당이 민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 의원으로 만들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거를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검수완박의 실체적 위헌성을 떠나서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농단하는 이런 입법과정의 불법성에 대해 대통령이 법률 공포를 통해 추인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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