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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놓고 푸틴 때린 러 재벌 없었다…"이 미친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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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한 올렉 틴코프.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한 올렉 틴코프. 로이터=연합뉴스

“이 미친 전쟁의 수혜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무고한 사람들과 군인들만 죽어 나가고 있다.” “친애하는 ‘서방 연합’은 푸틴의 체면을 살리고 이 학살을 멈출 수 있도록 확실한 출구를 마련해달라. 더 합리적이고 인도적으로 나서달라.”

러시아의 유명 재벌 올렉 틴코프(55)가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틴코프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욕설까지 쓰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직격했다. 일부 러시아 재벌이 반전 메시지를 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푸틴과 전쟁을 비난한 이는 없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평가했다.

그는 “사령관들은 자신의 군대가 ‘개떡’ 같다는 걸 깨달았다”며 “국가의 모든 것이 다 개떡 같고 아첨과 비굴함, 족벌주의에 빠져 있다면 그 국가의 군대가 얼마나 좋겠냐”고 비난했다. 또 “크렘린 관리들은 지중해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기업인들은 남은 재산을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며 “물론 ‘Z’(러시아를 지지하는 상징)를 그리는 멍청이도 있지만, 어느 나라에나 10%의 바보는 있다. 러시아인의 90%가 이 전쟁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한때 10조원도 넘었던 자산 1/10 토막 

올렉 틴코프는 19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미쳤다"며 "푸틴의 학살을 막아달라"고 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올렉 틴코프는 19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미쳤다"며 "푸틴의 학살을 막아달라"고 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틴코프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 중 한 명으로, 2006년 러시아 디지털 은행 틴코프 뱅크(TCS)를 설립했다. 이 은행은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신용카드 사업자다. 그는 순자산은 2015년 82억 달러(약 10조1000억원)로 러시아 15위였지만, 2017년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로 미국 제재 명단에 오른 후 반 토막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만 해도 그의 자산 규모는 44억 달러였지만, 전쟁 이후 8억 달러로 줄었다고 포브스는 지난달 밝혔다.

그가 반전 메시지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백혈병 투병 중인 그는 전쟁 발발 직후인 2월 28일 인스타그램에 “국가는 전쟁이 아니라 사람들을 치료하고 암을 퇴치하기 위한 연구에 돈을 써야 한다”며 “우리는 이 전쟁에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2년간 나는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지 확신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다. 상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서다.

러시아 정부와의 선 긋기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달 6일 올린 글에선 “올리가르히는 국가와 결탁해 돈을 벌고 정부 계약과 예산에 ‘기생’하는 사업가”라며 “나와 세르게이 갈리츠키(러시아판 월마트인 마그니트 창업자)는 올리가르히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크렘린에 가본 적도 없고 관할자인 중앙은행장을 제외하고 어떤 관리도 만난 적이 없다. 국영기업이나 국유기업과 단 한 번도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며 “제발 나를 올리가르히로 부르지 말라”고 강조했다.

“올리가르히는 ‘기생’ 사업가” 선긋기  

2020년 백혈병 투병 사실을 밝히고 틴코프 은행 회장직에서 물러난 올렉 틴코프. [인스타그램 캡처]

2020년 백혈병 투병 사실을 밝히고 틴코프 은행 회장직에서 물러난 올렉 틴코프. [인스타그램 캡처]

그는 또 “나는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퇴직자”라며 “2년 가까이 틴코프 은행에서 어떤 직책도 갖고 있지 않았고, 이사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그저 소액주주이자 설립자일 뿐이고, 어떤 사업도 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투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쟁반대’ 해시태그와 함께 “이 미친 시간이 빨리 끝나길 기도한다”며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고도 적었다.

시베리아 탄광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이클링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한때 틴코프 사이클링 프로팀을 소유하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업대학 재학 시절 유학생 친구들과 함께 무역 사업에 나섰고, 에스토니아 출신 아내도 이때 만났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건 1992년 싱가폴 전자기기 도매 무역업을 하면서다. 199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첫 가전매장을 열고 미국까지 진출했다. 판매 컨설팅 교육을 도입하는 등 고급화 전략으로 3년 만에 크게 성공한 뒤 회사를 700만 달러에 매각했다.

그는 1998년 식품산업에 진출해 제품 생산 공장을 3년 만에 2100만 달러에 매각한 동시에 맥주 사업을 위해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이 역시 2005년 2억 달러 규모로 매각을 성사시킨 뒤 2006년 틴코프 은행을 출범시켰다. 틴코프 은행은 러시아 최초 원격 서비스 제공 은행으로 2013년 기업공개(IPO)와 함께 틴코프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그는 2020년 미국에서 탈세 혐의로 기소되자 약 5억 달러를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백혈병 투병 사실을 공개하고 은행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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