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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국가 이스라엘, 국가가 혁신기술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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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아미 아펠바움 이스라엘 혁신청 의장 인터뷰 

아미 아펠바움 이스라엘 혁신청 의장. 정부 수석과학자를 겸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아미 아펠바움 이스라엘 혁신청 의장. 정부 수석과학자를 겸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스타트업 내이션(Start-up Nation)’. 중동 아랍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별명이다.  인구 920만 명. 면적은 2만2145㎢로, 우리나라 경상남북를 합친 정도다. 게다가 영토의 절반을 사막이 차지하고 있다. 성서는 가나안(이스라엘 일대)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표현했지만, 실은 연 강수량이 한반도의 절반에 불과하고 천연자원도 거의 없는 불모의 땅이다. 하지만 경제는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강하다. 1인당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 수 세계 1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세계 1위의 나라다. 미국 나스닥 상장 기업 수 98개로 미국ㆍ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덕분에 202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3610달러(세계은행)에 달한다. 국가의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비결은 혁신기술에 기반한 스타트업 창업이다. ‘이스라엘 혁신청’(Israel Innovation Authority)은 이런 스타트업 생태계를 관장하는 정부기구다. 이스라엘은 지난 50년간 정부 내에 차관급 기구인 ‘수석과학관실’을 두고 이 같은 역할을 해왔다. 혁신청은 2016년 수석과학관실을 확대ㆍ독립한 기구다. 중앙일보가 지난 12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혁신청(Israel Innovation Authority)의 아미 아펠바움 의장(사진)을 인터뷰했다. 그는 혁신과학기술부 소속 차관급 신분의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 역할도 같이 하고 있다.

혁신청, 생소한 이름의 정부기구다. 역할이 궁금하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혁신을 이끄는 게 혁신청의 역할이다. 이를 위한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스타트업과 기업의 연구개발(R&D), 즉 그들의 차별화된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다. 둘째는 양자컴퓨팅, 양자역학 또는 인공지능, 바이오엔지니어링 등 미래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5년 후 가장 경제적 효과를 불러 일으킬 기술과 플랫폼에 투자한다. 셋째는 신기술을 위한 규제 개혁이다. 자율주행차나 신약처럼 신기술엔 항상 규제 문제가 따른다. 혁신청은 혁신적인 신기술에 재정지원을 통해 기술 테스트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다른 정부 규제기관의 절차를 조절해주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혁신기술은 어디서 싹 트나.
철학적으로 답하자면 혁신은 필요에서 나온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때 우리는 한국처럼 석유ㆍ가스 등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였다. 지정학적으로도 이웃 국가들로부터 큰 도전을 받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게 바로 혁신이었다. 이스라엘의 혁신은 군과 대학에서 나온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필요에 의해 다양한 종류의 기술을 만들었고, 군을 제대한 사람들은 그 경험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방위산업의 기술을 기업으로 가져갔다. 대학 또한 연구를 통해 혁신기술을 만들어낸다. 또 다른 축은 이스라엘에 들어와있는 400개 이상의 다국적기업의 R&D센터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졸업 후 스타트업 뿐 아니라, 삼성ㆍ애플ㆍ마이크로소프트ㆍ인텔 등 글로벌 대기업에 취직해 3~5년을 다니다 그만두고 창업에 나선다.
아미 아펠바움 이스라엘 혁신청 의장. 정부 수석과학자를 겸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아미 아펠바움 이스라엘 혁신청 의장. 정부 수석과학자를 겸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과학기술이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학은 정치와 기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성이 필요하다. 과학은 인간의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해 탐구ㆍ추구돼야 한다. 만약 과학을 특정 영역에 맞추려고 한다면 과학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과학자들에게 독립성과 학문ㆍ연구의 자유가 주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그 연구의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느냐는 건데, 여기서 바로 혁신청의 역할이 빛을 발한다. 혁신청은 대학과 연구소의 기술을 지원해 기술이 학교에서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은 교수의 연구가 좋은 성과로 이어졌는데, 그 성공은 바로 혁신청이 교수들이 연구한 결과의 기술이전과 상업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기술연구와 기술이전은 분야가 확실하게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초연구는 교수가 제일 잘 알고 심도있게 연구할 수 있다. 정부가 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연구된 기술을 기존의 상품에 적용하고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산업계가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래서 혁신청은 예산의 100%를 모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만 지원한다. 
정부가 어떻게 투자할 스타트업을 찾나. 그건 벤처캐피털과 같은 민간이 할 일 아닌가.
이스라엘도 미국이나 다른 자본주의 국가처럼 민간이 국가경제를 주도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엔 삼성이나 애플과 같은 초대형 기업이 없다. 또 때로는 민간분야가 시장실패를 겪기도 한다. 이스라엘 혁신청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벤처캐피털이 투자하지 않는 실패 위험이 큰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먼저 기업가 또는 기업이 혁신청에 지원서를 내면, 관련 전문가가 지원서를 낸 기업들을 평가한다. 혁신청에는 180명의 주제별 전문가들이 프로젝트 기반으로 계약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작성한 리포트를 혁신청과 재무부ㆍ경제부 등의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최종 평가하는 구조다. 그 위원장을 내가 맡고 있다. 
정부가 직접 투자를 하면 도덕적 해이도 우려될 텐데.
어느 나라건 사람들은 정부의 돈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산의 50%만 혁신청에서 지원하고 나머지 50%는 지원자가 부담한다. 지원자도 프로젝트의 위험부담을 안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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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의 기술사업화가 잘 되는 비결이 있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문화가 있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는 게 아니라, 실패의 원인을 찾고 시정해서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 이스라엘에는 창업에 실패한 사례가 많다. 그런데 한 회사에서 실패한 기술로 19개의 기업이 탄생한 일도 있다. 이런 문화와 더불어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창업 생태계도 있다. 이스라엘 대학은 대부분 정부에서 펀드를 받는다. 교수들은 펀드의 일정 %를 기술이전하는 대가로 투자를 받는다. 기술이전에 컨설팅비ㆍ학생연구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연구진들에게 기술을 이전할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GDP 대비 R&D 투자 세계 1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긴 하지만, 정부 투자는 아주 작은 수준이고, 대부분 외국자본 덕분이다. 전체 R&D의 5~9%만 정부기관이 투자한다. 25~27%는 이스라엘 벤처캐피털, 60%는 외국자본이다. 대부분 1억 달러 가치의 이스라엘 기업의 3~5년 만에 10억 달러 가치가 되는 성공 스토리를 보고 새로운 투자기회를 위해 오는 경우다.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는 이스라엘 다음인 세계 2위다. 하지만 내용은 차이가 있다. 2020년 기준 전체 R&D 투자 중 정부ㆍ공공재원이 23.2%, 민간ㆍ외국 재원은 76.8%다. 이스라엘보다 정부의 R&D 투자비율이 훨씬 높다는 얘기다. )

한국 대학의 R&D 성공률은 98%를 넘지만 기술상용화가 잘 안된다. 그래서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말이 나온다.
R&D의 성공이라고 한다면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인용이 많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연구의 성공은 정량화하기 힘들다. 회사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교수에게 인센티브를 줘서 기술이전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인센티브로 돈을 줄 수도 있지만, 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자긍심을 주면 기꺼이 기술이전을 하는 교수들도 있다. 한국도 어떤 인센티브를 줘야 교수들이 연구에서 한발짝 더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인센티브의 작동은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이스라엘에서 통하는 것이 한국에서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문화가 다르지만,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협력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아미 아펠바움

혁신청 이사회 의장 겸 혁신과학기술부 소속 수석과학자다.  이스라엘 남부 브엘세바의 벤구리온대학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북부 하이파의 테크니온공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석과학자가 되기 전까지 36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ㆍ개발과 경영을 담당했다. 과학기술 분야에 50권 이상의 책을 썼고, 반도체 장비 분야에 특허 7개를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업체 KLA에서 22년간 일하며 한국을 15차례 이상 방문한 한국통이다.

이스라엘 혁신청

2016년 이스라엘 경제산업부에서 분리돼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설립됐다. 현재는 혁신과학기술부 산하다. 기업처럼 이사회가 혁신청을 운영한다. 따라서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가 따로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시장 변화에 적응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사회는 정부기관 소속 5명, 공공기관 소속 3명으로 구성된다. 혁신청은 일종의 정부기관이나, CEO는 정부가 아닌 독립 법인 소속이다. 이런 구조 덕분에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문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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