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밀 수출 지역인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판로가 막힌 틈을 타 인도가 이 시장을 넘보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세계 곡물 시장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의 밀이 묶인 사이 전 세계 밀 생산 2위인 인도가 이를 기회로 삼고 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도의 '밀 세일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직접 나서고 있다. 지난 11일 모디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전 세계 14억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을 갖고 있다"며 "내일 당장에라도 세계 각지로 식량을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BBC에 따르면 인도는 이달부터 7월까지 수출 분에 해당하는 밀 300만t 이상에 대한 추가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무역 상대국은 중동부터 중국, 아프리카를 망라한다. 외신에 따르면 인도는 세계 1위 밀 수입국 이집트를 비롯해 터키·중국·이란·보스니아·수단·나이지리아 등과 밀 수출을 협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집트는 기존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80%를 수입했지만, 최근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인도 정부는 올해 밀 수출량을 1000만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전쟁 발발 전까지 러시아는 전 세계 밀 수출 1위 국가였으며, 우크라이나는 다섯 번째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수출이 막히고, 우크라이나는 항구와 육로가 모두 막히는 등 수출 길이 차단됐다. 외신에 따르면 전쟁 후 전 세계 밀 공급량의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가격은 치솟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 따르면 국제 밀 7월분 선물가격은 지난 2월 24일 부셸(36L)당 9.34달러(약 1만1500원)였지만, 지난달 7일엔 12.94달러로 40% 뛰었다. 또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가 곡물 등 주요 농축산물의 국제가격 동향을 지수화한 식품가격지수(FPI)는 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부지리로 호기를 맞은 인도는 밀 수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수출품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 승인 연구기관 213곳을 모집해 국영 인도 표준국에서 품질을 감독하고 있다. 또 곡물의 신선도를 좌우하는 물류 개선을 위해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 있는 문드라항과 칸드라항에 대형 저장시설을 건설 중이며, 늘어난 물동량을 감당하기 위해 인도 동부 수출항을 개방할 계획이다.
인도의 밀 생산량은 2020년 기준 세계 2위지만, 수출은 9위로 그에 미치지 못했다. 서방보다 품질이 낮고, 잦은 물류 차질을 빚는 등 수출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식용 곡물은 먼지·모래·돌과 같은 불순물을 걸러야 하는데, 인도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또 밀 경작 과정에서 농약 남용도 문제였다. 이에 이집트는 인도 밀에 대해 품질관리 정밀 검사를 추가로 부과할 방침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인도 언론 더 힌두 등에 따르면 인도 밀 수출량은 2021~2022 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기준 785만t으로, 전년(210만t)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식량안보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미 싱크탱크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러시아 침공으로 세계 식량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UNFAO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등 주요 농산물 수출이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 세계 각국에서 1300만명이 넘는 영양실조 환자가 나올 수 있다고 관측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19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며, 이미 심각한 세계 식량 불안을 초래했다"면서 "식품 가격 인상만으로도 최소 1000만명 이상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