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꽁꽁 숨긴 '목련천국' 열린다…천리포수목원 희귀한 보물

중앙일보

입력 2022.04.21 05:00

업데이트 2022.04.21 17:30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이 이달 24일까지 목련축제를 진행한다. 평소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던 목련정원과 목련산을 축제 기간에만 특별 개방한다. 사진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한옥이 민병갈 설립자가 살았던 후박나무집이다. 목련산 트레킹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그 앞으로 걸을 수 있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이 이달 24일까지 목련축제를 진행한다. 평소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던 목련정원과 목련산을 축제 기간에만 특별 개방한다. 사진 오른쪽 위에 보이는 한옥이 민병갈 설립자가 살았던 후박나무집이다. 목련산 트레킹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그 앞으로 걸을 수 있다.

어느새 반소매 티셔츠가 어색하지 않은 날씨가 됐다. 꽃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면 충남 태안으로 눈을 돌려보자. 천리포해변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에서는 4월 말에도 벚꽃과 목련꽃이 핀다. 벚꽃과 목련꽃뿐만이 아니다.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한국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이다. 올해는 천리포수목원에도 뜻깊은 해다. 설립자 고(故) 민병갈 박사(1921~2002) 20주기다. 수목원은 민 박사를 기리는 추모정원을 정비했고, 개원 이후 처음으로 비공개 지역을 개방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봄이 긴 바닷가 수목원

14일 오후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서울에서도 비교적 늦게까지 벚꽃을 볼 수 있다는 남산에서조차 벚꽃잎이 바닥에 나뒹굴던 시점이었다. 연못정원 옆에 진분홍꽃 뒤덮인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꽃이 땅 쪽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게 보통 벚꽃과 달라 보였다. 푯말을 보니 종벚나무다. 서울보다 한참 남쪽 동네인데 벚꽃이 이제야 피다니. 이른 봄 피었다가 후두두 지는 목련꽃도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요즘이 한창이다. 천리포수목원 최창호 기획경영부장이 “내륙보다 일교차가 적고 기온이 천천히 오르는 해양성 기후의 영향”이라고 설명해줬다.

27개 주제 정원으로 이뤄진 밀러 가든. 연못 주변에 벚꽃과 목련꽃, 수선화가 만개했다.

27개 주제 정원으로 이뤄진 밀러 가든. 연못 주변에 벚꽃과 목련꽃, 수선화가 만개했다.

연못 위쪽에는 ‘민병갈 추모정원’이 있다. 올해 민 박사 20주기를 맞아 재단장했다. 그가 생전에 애정을 가졌던 목련과 호랑가시나무를 중심으로 정원을 꾸몄다. 민 박사 흉상 옆에 자줏빛 꽃 만개한 별목련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천리포수목원이 설립자 민병갈 박사 20주기를 맞아 추모정원을 새단장했다. 그가 아꼈던 목련과 호랑가시나무 위주로 정원을 꾸몄다.

천리포수목원이 설립자 민병갈 박사 20주기를 맞아 추모정원을 새단장했다. 그가 아꼈던 목련과 호랑가시나무 위주로 정원을 꾸몄다.

수목원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 사람 손길이 탄 인공 세상이다. 수목원에서 최대한 인위를 배제했을 때 우리는 자연미를 느낀다. 천리포수목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수목원은 사람이 아닌 나무들의 피난처”라고 말한 설립자의 나무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민병갈, 나무 심은 사람』, 임준수, 2021년).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초가집 한 채에도 평생 수목원을 아끼며 가꾸다 간 사람의 온기가 스며 있다.

나무 천국으로 거듭난 황무지 

민병갈 기념관 2층에서는 민 박사의 집무실을 볼 수 있다. 그가 아끼던 애장품과 식물일지도 전시했다.

민병갈 기념관 2층에서는 민 박사의 집무실을 볼 수 있다. 그가 아끼던 애장품과 식물일지도 전시했다.

왜 서쪽 땅 끄트머리 천리포에 수목원을 만들었을까.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가 한국을 찾은 건,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이었다. 미군 정보장교로 부임한 그는 틈만 나면 서울을 벗어났다. 친구들과 팔도를 여행하다 한국의 산천과 풍속에 단단히 반했다. 그러다 1962년 천리포 해변에 땅을 샀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사구였는데, 잘 가꾸면 노년을 보내기에 적절한 것 같았다. 한옥을 짓고 나무를 심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한국은행 고문으로 일했다. 주식 투자를 병행하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번 돈은 모조리 천리포에 쏟아부었다. 추가로 땅을 매입하고 희귀한 나무를 국내외에서 사들였다. 1만㎡였던 수목원 부지는 57만㎡로 넓어졌다. 수목원을 시작한 건 1970년이다. 한국 최초로 민간 수목원을 연 민 박사는 1979년 귀화했다. 민병갈은 제1호 귀화 미국인이다.

민 박사는 한옥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가든스테이'를 신청하면 수목원 안 한옥에 묵을 수도 있다. 사진은 해송집.

민 박사는 한옥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가든스테이'를 신청하면 수목원 안 한옥에 묵을 수도 있다. 사진은 해송집.

천리포수목원은 세계적인 수준의 수목원이다. 2000년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에서 12번째로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꼽혔다. 5대 수종(목련·호랑가시나무·동백·단풍·무궁화)에 집중한 공로가 컸다. 김용식 천리포수목원장은 “설립자는 전 재산을 수목원에 쏟고도 수목원을 사유화하지 않고 1997년 재단법인에 증여했다”며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수목원 본연의 역할인 식물 연구와 보존,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초로 개방하는 목련산

천리포수목원은 24일까지 목련 축제를 진행한다. 평소 비개방 구역을 가드너 프로그램과 트레킹 프로그램 예약자에 한해 입장시켜준다.

천리포수목원은 24일까지 목련 축제를 진행한다. 평소 비개방 구역을 가드너 프로그램과 트레킹 프로그램 예약자에 한해 입장시켜준다.

지금 천리포수목원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하다. 수선화, 동백꽃, 진달래꽃 등 온갖 꽃이 만개했다. 주인공은 목련이다. 수목원에는 64종, 871 분류군의 목련을 보유하고 있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종류의 목련꽃이 수목원을 물들인다. 그래도 목련의 계절은 봄이다. 이달 9~24일 목련 축제를 여는 까닭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본 다양한 목련. 왼쪽 위부터 시계 순서대로 레너드 메셀, 빅 버사, 로부스타, 불칸.

천리포수목원에서 본 다양한 목련. 왼쪽 위부터 시계 순서대로 레너드 메셀, 빅 버사, 로부스타, 불칸.

수목원 본원인 ‘밀러 가든’에도 목련이 많다. 관람객은 대부분 밀러 가든을 중심으로 수목원을 즐긴다. 밀러 가든 외 지역은 식물 연구와 증식을 위한 공간이어서 출입이 제한되지만 목련 축제 기간에는 들어갈 수 있다. ‘가드너와 함께 걷는 목련정원’ ‘목련산 트레킹’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목련산은 개원 이후 올해 최초로 개방했다.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걷는 코스다.

에코 힐링센터 뒤편 목련정원은 목련 천국이라 할 만했다. 꽃에서 수박 냄새가 나는 ‘불칸’, 꽃 한 송이가 사람 머리만 한 ‘로부스타’, 아이스크림 색깔 같은 ‘스트로베리 크림’ 등 난생처음 보는 목련이 가득했다. 나무 모양도 동네서 보는 목련과 달랐다. 최창호 부장은 “수목원 목련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 나무 밑동부터 가지가 뻗는다”고 설명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동백나무도 많다. 무려 1096 분류군이나 된다. 목련산을 걷다보면 온갖 종류의 동백을 볼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동백나무도 많다. 무려 1096 분류군이나 된다. 목련산을 걷다보면 온갖 종류의 동백을 볼 수 있다.

목련산은 꽃향기로 그득했다. 축제를 앞두고 만든 걷기 길은 1시간 반 코스였다. 트레킹 코스에는 민 박사가 거주했던 ‘후박나무집’도 있었다. 집 앞에는 민 박사가 남달리 아꼈다는 ‘선듀(Sundew) 목련’ 한 그루가 있었다. 민 박사의 기품을 닮은 나무였다. 그 곁에 한참 앉아 있었다.

여행정보
천리포수목원은 연중무휴다. 4~10월은 오전 9시 개장, 오후 6시에 닫는다. 입장 마감은 오후 5시다. 수목원 안에 숙소도 있다. 저렴한 에코힐링센터는 6만원(2인실)부터, 독채형 가든 하우스는 15만원부터다. 목련 축제는 이달 24일까지다. ‘가드너와 함께 걷는 목련정원’ 프로그램은 4만원, 목련산 트레킹은 3만원이다. 수목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가드너 프로그램은 회차당 인원이 정해져 있고, 트레킹은 인원 제한이 없다. 입장료는 어른 9000원, 14세 미만 어린이는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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