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내가 아닌 석열이형을 도울 수가 있느냐.”
지난해 7월 2일 저녁,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박민식 당선인 특별보좌역(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돕기로 한 박 특보에게 인간적인 서운함을 토로한 것이다. 원 후보자와 박 특보 두 사람은 사법고시 공부를 함께한 뒤 줄곧 친분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취한 목소리의 원 후보자에게 박 특보가 대답을 망설이는 찰나, 휴대전화에선 원 후보자가 아닌 다른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원 후보자의 전화를 건네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윤 당선인이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민식아, 원 전 지사도 우리와 함께 정권교체의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분 없던 尹, 사표 소식에 찾아왔다”
박 특보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고시생 시절 고락(苦樂)을 함께한 원 후보자가 아닌 윤 당선인을 돕기로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특수통 검사 출신인 그는 같은 특수통으로 사법연수원 2기수 선배인 윤 당선인과 검찰 재직 시절엔 별다른 친분을 쌓지 못했다. 인연은 박 특보가 검찰을 떠날 결심을 했던 2006년 9월 찾아왔다.
박 특보는 국정원 도청사건 수사 당시 김대중 정부 임동원ㆍ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기소 했다. 또 법조비리 사건 수사 땐 법조계 선배들을 대거 구속해 ‘불도저’란 별칭을 얻었다. 잘 나가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의 사의 소식에, 마찬가지로 평검사 신분이던 윤 당선인이 전화를 걸어와 대뜸 “만나자”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울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별 친분도 없던 박 특보에게 윤 당선인은 대뜸 “내가 사표를 쓰고 변호사를 해봐서 아는데, 너 같은 검사 체질은 변호사 못한다. 빨리 돌아가서 일이나 하라”며 훈계했다고 한다.
박 특보는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음엔 이름만 아는 선배가 오라가라 해서 떨떠름했다”며 “한시간가량 충고를 듣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는데, 잘 모르는 후배한테도 진심으로 대하는 윤 당선인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주고 받으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갔다.
尹의 ‘여론 전달자’
지난해 3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직을 사퇴하자 박 특보는 그를 돕기 위해 이른바 ‘심부름꾼’을 자처했다. 외교관(외시 22회), 검사(사시 35회) 출신으로 부산에서 18ㆍ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각계각층의 원로ㆍ전문가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이를 다시 윤 당선인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박 특보를 통해 윤 당선인과 인연을 맺은 보수 진영 정치인도 여럿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위원장이다. 윤 당선인과 김 위원장이 지난해 7월 첫 만남에서 와인 6병을 비우며 장시간 대화를 나눈 자리에 박 특보도 배석했다. 당시 캠프 인사에 따르면 “박 특보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날 때면 늘 두꺼운 공책을 들고 와 메모를 했다”며 “윤 당선인의 ‘여론 전달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 특보는 윤 당선인의 경선캠프에선 기획실장, 본선 캠프에선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다. 실시간으로 여론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이 주요 업무였다. 대선 승리 이후엔 특보에 임명돼 윤 당선인이 국민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고심하고 있다. 박 특보는 “내가 윤 당선인을 도운 게 아니라, 오히려 윤 당선인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며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