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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석열형 도와"…그가 '고시동지' 원희룡 대신 尹 택한 이유 [尹의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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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2월 18일 당시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후보가 부산 해운대구 KNN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후보 2차 맞수토론'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2월 18일 당시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후보가 부산 해운대구 KNN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후보 2차 맞수토론'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어떻게 내가 아닌 석열이형을 도울 수가 있느냐.”

지난해 7월 2일 저녁,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박민식 당선인 특별보좌역(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돕기로 한 박 특보에게 인간적인 서운함을 토로한 것이다. 원 후보자와 박 특보 두 사람은 사법고시 공부를 함께한 뒤 줄곧 친분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취한 목소리의 원 후보자에게 박 특보가 대답을 망설이는 찰나, 휴대전화에선 원 후보자가 아닌 다른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원 후보자의 전화를 건네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윤 당선인이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민식아, 원 전 지사도 우리와 함께 정권교체의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분 없던 尹, 사표 소식에 찾아왔다”

지난해 9월 13일 당시 윤석열 국민캠프 정치공작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인 박민식 전 의원(왼쪽 두번째)과 변호인단이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고발장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이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성명불상자 1인을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뉴스1

지난해 9월 13일 당시 윤석열 국민캠프 정치공작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인 박민식 전 의원(왼쪽 두번째)과 변호인단이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고발장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이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성명불상자 1인을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뉴스1

박 특보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고시생 시절 고락(苦樂)을 함께한 원 후보자가 아닌 윤 당선인을 돕기로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특수통 검사 출신인 그는 같은 특수통으로 사법연수원 2기수 선배인 윤 당선인과 검찰 재직 시절엔 별다른 친분을 쌓지 못했다. 인연은 박 특보가 검찰을 떠날 결심을 했던 2006년 9월 찾아왔다.

박 특보는 국정원 도청사건 수사 당시 김대중 정부 임동원ㆍ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기소 했다. 또 법조비리 사건 수사 땐 법조계 선배들을 대거 구속해 ‘불도저’란 별칭을 얻었다. 잘 나가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의 사의 소식에, 마찬가지로 평검사 신분이던 윤 당선인이 전화를 걸어와 대뜸 “만나자”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울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별 친분도 없던 박 특보에게 윤 당선인은 대뜸 “내가 사표를 쓰고 변호사를 해봐서 아는데, 너 같은 검사 체질은 변호사 못한다. 빨리 돌아가서 일이나 하라”며 훈계했다고 한다.

박 특보는 2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음엔 이름만 아는 선배가 오라가라 해서 떨떠름했다”며 “한시간가량 충고를 듣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는데, 잘 모르는 후배한테도 진심으로 대하는 윤 당선인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주고 받으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갔다.

尹의 ‘여론 전달자’

지난달 10일 대선 승리 확정 직후 함께 사진을 찍은 윤석열 당선인과 박민식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10일 대선 승리 확정 직후 함께 사진을 찍은 윤석열 당선인과 박민식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3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직을 사퇴하자 박 특보는 그를 돕기 위해 이른바 ‘심부름꾼’을 자처했다. 외교관(외시 22회), 검사(사시 35회) 출신으로 부산에서 18ㆍ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각계각층의 원로ㆍ전문가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이를 다시 윤 당선인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박 특보를 통해 윤 당선인과 인연을 맺은 보수 진영 정치인도 여럿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위원장이다. 윤 당선인과 김 위원장이 지난해 7월 첫 만남에서 와인 6병을 비우며 장시간 대화를 나눈 자리에 박 특보도 배석했다. 당시 캠프 인사에 따르면 “박 특보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날 때면 늘 두꺼운 공책을 들고 와 메모를 했다”며 “윤 당선인의 ‘여론 전달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 특보는 윤 당선인의 경선캠프에선 기획실장, 본선 캠프에선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다. 실시간으로 여론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이 주요 업무였다. 대선 승리 이후엔 특보에 임명돼 윤 당선인이 국민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고심하고 있다. 박 특보는 “내가 윤 당선인을 도운 게 아니라, 오히려 윤 당선인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며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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