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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러시아를 어떻게 탈나치화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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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들여다보니 그곳 상황이 심상치 않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탈나치화’를 내세웠지만, 정작 탈나치화가 필요한 것은 그곳이 아니라 러시아로 보인다. 지금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이 나치 치하의 독일사회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인을 ‘나치즘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히틀러는 러시아인을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계 주민이 사는 크리미아와 돈바스를 요구한다. 히틀러는 체코에게 독일인들이 사는 주데텐을 달라고 했다.

푸틴, ‘나치즘 해방 위해 전쟁’ 주장
히틀러의 ‘공산주의 해방’과 유사
러시아, 지식인 떠나고 병영국가화
러시아인, 더 나은 삶 살 권리 있어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이 지배하는 제3제국을 꿈꾸었다면, 푸틴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제국을 꿈꾼다. 히틀러에게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이 있었다면, 푸틴에게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지정학’이 있다. 히틀러와 교황의 콘코르다트(정교화합)는 푸틴과 키릴 대주교의 콘코르다트로 반복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압도적 지지다. 히틀러 역시 독일 국민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파시즘은 그냥 독재가 아니다. 그것은 ‘대중’의 독재다. 그 시절 독일 국민들이 스와스티카(swastika=하켄크로이츠)에 열광했다면, 지금 러시아의 국민들은 ‘즈와스티카’(zwastika=Z)에 열광하고 있다.

파시스트 국가에서 유일한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프로퍼갠더다. 지금 러시아에 사는 이들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곳에 사는 제 가족의 말도 믿지 않는다. 이미 세뇌된 머리 앞에서는 사실과 증거도 무력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서방언론의 음해일 뿐이다.

러시아의 독립언론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은 체포된다. 심지어 의회에서는 반전시위에 참가했다 체포된 이들을 강제 징집해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낸다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다. 전쟁을 ‘전쟁’이라 불러도 안 된다. 톨스토이의 명작은 ‘특수작전과 평화’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나치 시절 수많은 지식인들이 망명을 했던 것처럼, 러시아에서 그나마 제정신 가진 이들은 지금 러시아를 떠나고 있다. 수십만명이 러시아 국경을 벗어났는데, 그 중 상당수가 IT 계열 등 첨단분야에서 근무하는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나라가 온통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치 시절 독일의 청소년들이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다면, 지금 러시아의 청소년들은 ‘유나르미야’라는 조직에 가입하고 있다. 그 시절 히틀러 유겐트들처럼 유나르미아의 청소년들 역시 캠핑을 하며 제식, 유격, 사격 등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그중에는 낙하산을 메고 공중강하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시절 독일처럼 나라가 온통 병영국가로 변한 느낌이다. 케이블 TV로 접하는 러시아 영화는 대부분 2차대전을 다룬 영화. 푸틴 러시아의 상상계는 나치를 물리쳤던 위대한 ‘조국전쟁’으로 채워져 있다. 이번 침공의 명분을 뜬금없이 ‘탈나치화’로 설정한 것도 그 영광의 재연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히틀러가 ‘세계 유태인 음모론’을 동원해 국민들에게 피해망상을 심어주고, 이를 제국주의적 공격성으로 연결시켰다면, 푸틴은 ‘서방 음모론’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포위망상을 심어주고, 이것으로 자신의 침략전쟁을 방어전쟁으로 호도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소련의 몰락 역시 서방의 음모에 의한 것이다.

독일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만행을 지금은 그 땅에서 러시아군이 벌이고 있다. 학살, 처형, 강간과 약탈. 러시아군은 소련군 시절에도 잔혹행위로 유명했다. 만행이 너무 심해서 연합군 사령관들이 항의를 하자, 주코프 장군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병사들에게도 즐길 권리가 있소.”

그래도 독일군은 군사적으로 유능하기라도 했다. 지금 러시아군의 탱크는 곳곳에서 농민들(‘ukrainian farmed forces’)의 트랙터로 견인되어 우크라이나군에게 인도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정규군도 비정규군도 아니고 오직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있다.

푸틴의 군대는 과연 우크라이나인들을 해방시켰다. 살 집에서, 먹을 것에서,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권리에서, 한 마디로 일체의 소유에서 해방시켰다. 우크라이나군들에 파괴된 러시아군 트럭과 장갑차는 약탈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세탁기, 냉장고, 팩스 등. 그중에서 삼성 복합기가 눈에 들어온다.

감청 당한 러시아 병사들의 통화가 가관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뭘 약탈해야 할지 일러준다. 중국산은 빼란다. 아내는 남편에게 우크라이나 여인을 강간하라고 말한다. 다리 하나 잘린 채 제대해 그 보상금으로 자가용 사고, 쇼핑 하겠다는 어느 병사 부부의 소박한(?) 꿈은 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그 넓은 영토, 그 풍부한 자원, 그 발달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러시아인들은 푸틴이 제공한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권리, 푸틴이 강요한 것보다 더 나은 꿈을 꿀 권리가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