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한동훈 사용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그는 콜라를, 나는 맥주를 마셨다. 만남을 청한 게 미안하게도 고기 몇 점으로 끼니를 대충 때웠다. 단답형이 아닌 논리 정연한 서술형으로 말하는 그의 습성 때문에 식사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무언가를 취재할 생각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는데 문답이 계속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한 지난 1월의 점심시간 이야기다.

월급 값 해야 한다는 원칙주의자 #직언하는 '바른 소리' 장관 기대 #당선인, '초심 지킴이'로 활용해야

대선 열기가 달아오른 시기였으니 선거와 그 이후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가 검찰총장이나 서울중앙지검장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널리 퍼져 있을 때였다. “저를 수사 책임자 자리에 앉히는 것은 몹시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봅니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이다, (문재인 정부의 박해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어떤 자리에 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윤 후보가 나를 칼로 쓰는 것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략 이런 흐름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되짚어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수사 지휘를 하는 검찰총장이나 중앙지검장으로 낙점되지는 않았으니 일단은 맞은 것이고, 검찰 사무에 관여할 수 있는 장관으로 지명됐으니 한편으로는 틀렸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을 향해 지휘권을 사용할 수 있는데, 윤석열 당선인은 장관의 수사 지휘권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한 후보자가 장관이 된 뒤 공식적으로 수사에 개입할 길은 사라진다.

직·간접 경험을 종합해 보면 한 후보자는 원칙주의자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예 입에도 안 대는지는 모르겠으나 동료 검사나 기자와 술을 마시는 걸 본 사람이 없다. “체질에 안 맞아서”라고 하는데 태도가 흐트러질까 봐 못 마신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기자나 일반인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와 SNS 메신저 글에 일일이 답을 한다. “기자 질문에 응하는 것은 공직자의 기본”이고 “공무원이 국민이 보낸 글에 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왜 여기저기에 그렇게 적을 많이 만들었느냐”고 묻자 “법을 어긴 사람을 기소하는 게 검사의 의무”라고 답한다. “국민이 그러라고 검사들에게 월급 주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지극히 교과서적인데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게 느껴진다. 범생이 공무원의 모범답안 암송이 아니라 원칙에 따른 투쟁에서 비롯된 소신이라는 인상을 준다. 듣다 보면 스며든다. 논란의 휴대전화 비밀번호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개인 저장 기록을 공개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법적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그 안에 예민한 게 있는 것 아니냐”고 반농반진의 질문을 던지자 “막상 보면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했다. “이상한 짓 한 것도 없지만 설사 했다고 해도 수사를 오래 한 내가 문제가 될 걸 남겨 놓았겠느냐”며 웃었다.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에게 부채 의식을 느낄 만하다. 그가 겪은 여러 차례의 좌천과 억지 검찰 수사는 윤 당선인을 겨냥한 것이었다. 두 사람을 한 묶음으로 여긴 친정부 인사들이 양쪽을 공격했다. 당선인의 “독립운동” 발언과 장관 지명에는 미안한 마음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줄곧 법·원칙·상식의 존중을 말해 왔다. 이것은 남과 상대보다 나와 주변에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하는 규범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글귀를 걸어 놓고도 그걸 지키지 못했다. “마음의 빚”을 말하며 무너졌다. 불행히도 윤 당선인이 벌써 ‘내 주변엔 봄바람’ 의심을 산다. 결격(缺格)을 가리는 잣대가 느슨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주변인의 호가호위 위험이 엿보인다는 말도 들린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기 쉬운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한 후보자는 월급 주는 국민을 주인으로 여기는 공직자라고 스스로 말했다. ‘미스터 바른 소리’ 장관의 활약을, 그 원칙주의자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지혜로운 대통령을 기대한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