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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새 정부는 4대 공적연금 통합 방안 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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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대론 지속 불가능한 공적연금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리셋 코리아 연금개혁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리셋 코리아 연금개혁분과장

한국 사회에서 연금은 뜨거운 감자다. 연금 문제가 프레임 전쟁의 출발점이 되고 있어서다. 연금 개혁 우선순위로 국민연금이 먼저 거론되는 것에 상당수 국민연금 가입자는 의아해한다. 적자 보전으로 세금을 투입하는 공무원연금·군인연금은 놔두고 왜 국민연금부터 거론하느냐는 거다. 국민연금도 세금 걷어서 적자를 메우면 될 것 아니냐고, 만만한 게 국민연금이냐며 따진다. 하려거든 공무원·군인연금 먼저 한 뒤 국민연금을 개혁하라고 한다.

공무원·군인연금의 반발도 거세다. 숫자는 적으나 조직화한 집단이다 보니 대응 강도가 격렬하다. 공무원연금 관계자 대부분은 2015년 개편 이후 신규 임용자가 국민연금 가입자보다도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험료를 2배 부담하고 퇴직금이 적으니(민간 퇴직금 대비 39% 정도) 더 받는 것이 당연함에도, 주기적으로 공무원연금을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등장한다.

“연금은 복된 돈이며, 피와 땀이 어린 일생의 돈이요, 향기로운 돈이요, 존경스러운 돈이요, 고귀한 돈이요, 생명의 돈이다.” 『공적연금 재정현황과 전망』의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조병화 시인의 글이다. “현행 보험료율은 공무원연금의 재정수지 안정화에 요구되는 균형보험료율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연금재정 수지 부족분은 정부가 전액 보전하도록 되어 있으며 정부의 보전액은 공무원연금 재정수지 부족액 규모가 커짐에 따라 증가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무원·군인연금 국가 부채 1138조원, 국민·사학연금도 심각
비밀주의, 불투명한 제도 운용으로 공적연금 재정 불안정 확대
투명한 연금제도 위해 연금 통합 운영 필요하다는 공감대 필요
새 정부는 이해 관계자 배제, 중립적 전문가들로 통합안 도출해야

세금으로 기득권 보호한 공무원·군인연금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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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이 우리 삶에서 이리도 소중하고 재정 불안정이 심각함을 알고 있어, 두 차례 제도 개편을 했으나 사정이 더 악화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국가 부채가 1138조원, 1년 동안 93조5000억원이 증가했다. 연금 부채는 이자율, 즉 할인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낮은 국고채 금리로 인해 연금 부채가 빠르게 늘어난 측면이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보험료 부담과 급여 수준의 괴리가 너무도 커서 발생하는 문제다. 엄청나게 고통 분담했다는 제도 개편이 이루어졌음에도 시간이 갈수록 국가 부채가 확대일로에 있다. 국가가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 부채로 발표되지 않는 국민연금과 사학연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유사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내 탓은 없고 네 탓뿐이다.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세계은행 구조조정 차관을 얻기 위해 국가적 수모를 당했다. 30억 달러 구조조정 차관 조건에 노후 소득 보장 개편이 포함됐다.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개편하는 백서 발간이 차관 제공 조건의 하나였다.

세계은행 보고서 『기로에 선 한국의 연금』은 공무원연금을 당시 국민연금 지급률인 60%(연간 지급률 1.5)에 맞추라고 했다. 당시 공무원연금 급여율은 84%(연간 지급률 2.1)였다. 22년 전인 2000년에 국민연금 미적립부채(GDP의 30%)와 공무원연금 미적립부채(GDP의 25%)의 합이 GDP의 55%로 추산되었다. 이후 국민연금은 급여율을 33.3% 삭감(지급률을 60%에서 40%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에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은 재정 불안정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한 제도 개편, 특히 기득권을 철저히 보호하면서 적자를 국가 세금으로 충당하는 국가지급보장조항을 도입했다.

문제 많은 공무원연금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최근의 제도 개편인 2015년 공무원연금 개편 과정을 되돌아보자. 2014년 2월 중순 박근혜 정부의 박준우 정무수석으로부터 티타임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왔다. 비서관과 선임행정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박준우 수석이 칼럼을 언급했다. 2013년 12월 13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필자의 시론 ‘시한폭탄 공무원연금’ 내용을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2010년 공무원연금 개편을 평가한 시론이었다. 대통령 관심 사항이라 내용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개혁 강도가 너무 약하다. 5년도 못 가서 문제가 발생할 것 같다. 연금 밥 먹고 사는 사람의 솔직한 평가다. ··· 이해 관계자가 주도한 연금 개혁의 한계를 입증한 셈이다. 공무원연금·국민연금 모두 시한폭탄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공무원연금 이해 당사자를 배제한 객관적인 기구를 통한 연금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 이 만남 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는 청와대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연금 개혁 논의 주최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논란 끝에 국회가 총대를 멨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를 통해 2015년 공무원연금 개편안이 도출되었다. 정치권과 이해 관계자들은 자랑 일색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적 논의 기구를 통해 성공적인 제도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하면서. 과연 그러한 건지, 합의안 발표 직후인 2015년 5월 4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필자의 시론, ‘문제 많은 공무원연금 합의안 이대론 안 된다’를 통해 살펴보자.

“2009년 개혁 후 5년도 지나지 않아 공무원연금 개혁이 불가피했던 것은 과거 세 차례 개혁이 소위 말하는 무늬만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은 적자보전조항으로, 2009년은 공무원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10년 이상 재직자의 연금을 한 푼도 깎지 않아서다. ··· 급여승률 1.7에 퇴직수당(39%)을 급여승률로 환산한 0.25%를 합하면 개혁 후 우리나라 공무원연금 급여승률은 1.95%가 된다. 독일처럼 운영한다면 38%를 부담해야 한다.” 38%를 부담해야 추가적인 국가 부채가 늘어나지 않을 제도를, 18%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해 놓고서 자화자찬한 것이다.

공무원·국민연금 통합 운영이 시대 흐름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합의안이 그대로 입법화되었다. 더 심각한 대목은 합의안 입법 과정 자체가 블랙박스라는 점이다. 통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외형을 비슷하게 맞추었다 해도 입법 과정에서 작지 않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연금액을 좌우하는 여러 요인들(연금산정보수의 재평가 기준, 소득재분배 방식 등)을 국민연금과 다르게 적용할지라도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법안 작성에 관여한 소수의 공무원연금 이해 관계자만 알고 있는 특급 기밀사항이다. 통상 발표 내용과 제도 개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배경이다.

이처럼 불투명한 제도 운용으로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의 문제를 더 키웠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투명한 제도 운용으로 혹 덩어리를 더 키운 것이다. 문제점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린 뒤 국민의 동의를 얻어 일반 국민과는 독립적인 별도의 제도로 운영하는 영국·독일의 투명한 제도 운용 사례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공무원과 정부의 부담 노력과 그 투명화 과정이 이들 국가의 성공적인 공무원연금 제도 운용의 담보 사항이기 때문이다. 투명한 제도 운용을 해 온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되는 것이 시대 흐름이다.

혼탁한 연금제도, 국가 몰락 초래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법대로 깨끗하게 연금제도를 운용하지 못했다. 공무원연금의 재정 불안정은 투명하게 운영하지 못한 대가다. 비밀주의, 불투명한 제도 운용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동안 충분한 기회를 주었음에도 관련 규정을 투명하게 만들지 못했다. 혼탁하게 운영하니 국민이 독립된 제도로의 공무원연금 운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수익비가 국민연금보다 못하다는 주장이 단적인 예다. 100만원 급여자가 1000만원을 받는 것과 800만원 급여자가 8000만원을 받는 것의 수익비는 동일하다. 7000만원의 연금액 차이는 숨기며, 수익비가 국민연금보다 못하다고 호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런 식이라는 거다.

지금까지는 요행을 바라며 연금제도를 운용했다. 바람과 현실을 혼동하다 보니, 작동 가능성이 제로인 제도가 작동 가능한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하는 사회가 되었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길을 가는 국민연금이 통합 운영돼야, 상대 탓이 아닌 우리 탓이 될 수 있다. ‘피와 땀이 어렸고, 고귀한 생명의 돈’인 연금이 혼탁한 제도 운용으로 인해 국가 몰락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투명하게 연금제도를 운용할 수 있는 해법이 다름 아닌 연금 통합 운영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지난 대선에서 공적연금 통합 운영 방안, 즉 ‘동일 연금’이 안철수 후보 공약으로 제시되었다. 통합 운영을 어렵게 해 놓았어도 방법이 있는 것이다. 중립적인 전문가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통합 운영 방안을 공론장에 올려야 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