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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밀리터리

우크라이나, 그 땅에는 신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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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과 한반도 영향

3일내 끝내려던 러시아 계획 실패

전쟁 목표 축소 수정 불가피해져

우크라 전역→남부·돈바스 점령으로

푸틴, 이기든 철수하든 쇠락의 길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보면 넷플릭스 시리즈물 가운데 하나인 ‘그 땅에는 신이 없다’는 제목이 생각난다. 러시아군이 거쳐 간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손발이 묶인 채 수백 명씩 발견되는 시신, 골조만 앙상하게 남은 우크라이나 도시의 아파트, 이미 자욱한 연기 속에 폐허가 된 도시로 계속 날아오는 러시아의 보복성 미사일 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전쟁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신성한 전쟁’이라며 푸틴을 치켜세운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의 신은 '악의 화신'인가.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만재 1만1490t)이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도시 오데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쏜 대함 미사일 넵튠 2발을 맞고 침몰하고 있다. 2010년 재취역한 모스크바함은 미사일 순양함으로 가격은 7억5000만 달러다. 사진은 트위터에서 공개된 모스크바함의 침몰 전 모습.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진위가 파악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러시아는 사고라고 주장한다.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만재 1만1490t)이 지난 13일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도시 오데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쏜 대함 미사일 넵튠 2발을 맞고 침몰하고 있다. 2010년 재취역한 모스크바함은 미사일 순양함으로 가격은 7억5000만 달러다. 사진은 트위터에서 공개된 모스크바함의 침몰 전 모습.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진위가 파악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러시아는 사고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의 푸틴이라는 강력한 악(惡)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현재까지는 미국과 영국 등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간접 지원만 하고 있다.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와 직접 전쟁을 벌이거나, 혹시라도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까 봐 우려해서다. 마치 강도가 대낮에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행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아무도 다가가서 직접 말리지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오랜 역사의 현장에서 자주 그래왔지만, 스스로 힘이 없으면 정의(正義)는 먼 곳에 있다.

푸틴, 정치적 판단과 군사전략 치명적 오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마냥 승리하고 있지만은 않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만행으로 종국엔 나락으로 떨어져 오랜 세월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다. 푸틴이 자신의 권력과 과도한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판단과 군사전략 수행에 큰 오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초 푸틴의 전쟁 배경은 두 가지였다. 러시아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정치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 결별하고 서유럽으로 돌아서려는 우크라이나 길들이기였고, 군사적으로는 흑해함대 등 러시아 군부대가 위치한 크림반도를 지키는 것이다.
러시아에 흑해함대는 해양전략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1837년 크림반도 남단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 배치된 흑해함대는 크림전쟁(1853년)을 시작으로 1·2차 세계대전, 욤키푸르전(1973), 조지아전(2008), 시리아 내전(2011~현재) 등 러시아의 해외 참전에 거의 동원됐다. 흑해함대는 흑해·지중해·대서양을 오가며 남유럽 등을 견제해왔다. 이런 흑해함대를 위해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군부대 10여개를 배치해두고 있다.
흑해함대는 2014년부터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2월 자유·민주화 바람인 유로마이단 혁명 직후 흑해함대를 크림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그해 2월 말 곧바로 크림반도를 침공해 합병했다. 지난해부터는 우크라이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러시아는 다시 본격적인 침공을 강행했다.

흑해함대 상수원과 군수지원로 확보 목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 뒤 크림반도의 상수원과 육상 군수지원로를 차단하면 흑해함대의 철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크림반도의 상수원 86%는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강에 연결된 운하로부터 공급된다. 또 흑해함대 등 러시아 군부대 유지를 위한 군수지원은 마리우폴을 경유하는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도로에 의존한다.
따라서 푸틴의 이번 전쟁 목표는 일차적으로 상수원 운하가 연결된 드네프르 강 남쪽 지역과 마리우폴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 해안도로 지역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차적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다시는 흑해함대 철수를 입 밖에 꺼내지 못하게 굴복시키기 위해 수도 키이우를 함락해 정치적 항복을 받아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드네프르 강 동쪽을 완충지대로 만들고,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려 했다. 푸틴은 72시간의 단기간 속전속결로 목표를 달성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개전 초기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한 지 거의 두 달이 되도록 마리우폴을 점령하지 못했고, 키이우에선 아예 철수했다. 당초 쉽게 점령할 거로 생각했던 러시아의 산업 배후지이면서 친러 지역인 돈바스 지역도 완전하게 확보하지 못하자 병력을 재집결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크림반도의 상수원도 안전하지 않다. 러시아군이 퇴각하면 우크라이나가 언제든 운하를 차단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사이버전과 정보작전 실패
러시아의 초기 전쟁 실패 원인은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본 푸틴의 착오와 국제사회의 반작용이 컸다. 푸틴의 전쟁수행은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에 따라 ①사이버전 ②정보작전 ②군사력 투입 등 3단계로 진행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사이버전은 초반엔 성공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서 어나니머스 등 국제 해커들이 연합전선을 펼쳐 러시아를 공격했다. 러시아가 벌인 전쟁이 부당하다는 차원에서였다. 그러자 도리어 러시아의 사이버 인프라가 마비됐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이 실패하면서 2단계인 정보작전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정보작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 등의 왜곡된 정보로 우크라이나에 정치적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가 제공한 위성통신 스타링크를 통한 SNS로 전쟁 상황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의식이 되살아났다. 푸틴이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거의 모든 도시에서 항전하니 러시아의 기갑부대인 대대전술단(BTG)이 시가전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특히 미국 등 서방에서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 제블린 등의 효력이 주효했다. 4월 16일 현재 러시아군은 병력 2만여명, 전차 760여대, 전투기 160여대 등을 잃었다. 심지어 흑해에선 흑해함대의 기함(지휘함)인 모스크바함(1만1490t)이 오데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쏜 지대함 미사일 넵튠에 맞아 어이없이 침몰했다. 미사일을 잔뜩 실은 7억5000만 달러짜리 모스크바함엔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무기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BTG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점령하지 못하면서 전쟁은 지연되고, 전투지역에 있는 러시아군의 식량과 연료는 동이 났다. 푸틴은 위기에 몰리자 전쟁 목표를 축소 수정했다. 일단 키이우에서 철수하고, 러시아 거점인 돈바스와 남부 해안도로 중심인 마리우폴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물론 부담이 크지만 생화학무기와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면 전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제 푸틴은 전쟁에서 이기든 철수하든 러시아와 함께 쇠락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푸틴은 이미 전범으로 지목됐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처지다. 러시아 외환보유고는 동결됐고 경제는 바닥이다.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손실은 600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포린 폴러시 4월12일자) 전쟁 비용으로도 매일 200억 달러 이상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러시아 경제는 소련 해체 직전인 1990년 이후 최악으로 침체할 공산이 크다. 이런 경제 여파로 러시아에 정치체제 변화가 올 것이란 전망(파리 정치연구소 세르게이 구리예프 교수) 도 나온다. 러시아 정치 변화는 민주화로의 일보 진전과 푸틴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푸틴 퇴조,북·중·러 공조체제에 영향
시간의 문제이지만 러시아의 퇴조는 중국과 북한에도 영향을 준다. 푸틴과 국제적 공조체제를 이루던 중국 시진핑 주석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북한도 러시아에서 노동으로 돈을 벌었고 국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북·중·러 공조체제의 약화는 북핵 해결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중·러가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도발적 행위를 시도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부당한 폭력적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경계심이 생겼다. 반작용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견제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 푸틴이 몰락하고 러시아가 쇠퇴할 경우 북극항로의 국제협력 개발 가능성도 커진다. 그동안 러시아는 2030년쯤 열릴 북극항로를 독점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자유를 지원하기 위한 유엔 등 다양한 요청에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반도에 불어올 후폭풍에도 철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처럼 불법적인 폭력 행사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라야 하지 않을까. 정의는 미약하지만 종래에는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