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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버지 허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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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에디터

장주영 사회에디터

예능인 허재(57) 전 감독은 ‘농구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를 빼고 한국 농구의 역사를 온전히 설명하기가 버겁다. 한 경기 최다 득점(75점) 기록 보유자면서, 실업과 프로에서 숱한 우승을 맛봤다. 1997~98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선 준우승팀 선수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프로농구 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음주운전 등 성숙하지 못한 모습도 보였지만, 실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은퇴 후 감독으로는 10년간 KCC를 맡아, 2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 프로농구연맹(KBL)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허 감독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허 감독의 아들인 연세대 3학년 허웅이 드래프트에 나왔다. 상위 지명이 유력한 검증된 선수였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3순위까지 지명을 받지 못했다. 4순위 지명권을 가진 KCC의 허 감독이 아들을 호명하면 같은 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나는 상황. 그러나 허 감독은 아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다른 선수의 이름을 불렀다. 5순위였던 동부가, 허웅을 호명한 것은 물론이다.

허 감독은 훗날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혼당할 뻔했다”며 당시 상황을 아찔하게 기억했다. 아내의 상심이 컸던 탓이다. 허웅도 서운함에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전화했다고 한다. 그때 가족 분위기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상상이 된다. 허 감독은 “아들과 다른 선수 중에 선택해야 하는데 미치겠더라, 결국 다른 선수 이름을 불렀다”고 당시의 고뇌를 털어놨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아빠 찬스’ 논란이 뜨겁다. 정 후보자가 병원장·부원장 시절에 각각 딸과 아들이 경북대 의대에 편입한 걸 두고서다. 지역인재 특별 전형 확대와 의전원 폐지에 따른 한시적 편입 등 기회의 문이 유독 활짝 열렸던 것도 의구심을 키운다. 정 후보자는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아버지가 학교에 있다고 해서 아들, 딸을 꼭 다른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헤아려주시기 바란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대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기어코 자식을 외면하는 비정(?)한 아비도 세상엔 엄연히 존재한다. 국민이 장관 후보자에게 원하는 도덕적 수준이기도 하다. 참고로 허웅(29)은 동부 소속으로 줄곧 뛰면서 지난 시즌 프로농구 인기상과 베스트5를 동시 수상했다. 인기와 실력을 스스로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