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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기’ 인사의 갈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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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공정(公正)은 말하긴 쉬워도 지키긴 어려운 말이다. 정의(定義)가 어려워 기준도 제각각이다. 성별 할당제를 누군가는 공정의 역행으로, 또 누군가는 공정의 출발로 보는 차이가 그 어려움의 단적인 예다.

“사람들이 다 ‘윤석열이 장가를 간다고? 이건 눈으로 확인해야 돼’ 그래서 (서울대 법대 동기들이) 다 (결혼식에 갔죠).”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다룬 TV 프로그램에서 ‘대학 동기’로 소개된 이미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윤 당선인의 결혼식 일화를 들려준 대목이다. 한 달여 뒤인 지난 15일 그는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에 임명됐다. “40년을 한결같은 친구다. 아낌없이 베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지난달 11일 영남 지역 일간지에 윤 당선인의 인간다움을 칭찬한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은 지난 10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차 내각 발표를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차 내각 발표를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요즈음 인사 발표자 명단에는 유독 윤 당선인의 ‘지기(知己)’가 여럿 눈에 띈다. 이미현 감사위원은 ‘43년 지기’다. 윤 당선인 측이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며 부인하긴 했지만 정호영 후보자는 ‘40년 지기’로 통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43년 지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39년 지기’다. 국가안보실장으로 내정된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차관은 대광초 동기여서 최소 ‘50년 지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2004년 처음 함께 일했으니 그나마 인연이 짧은 ‘18년 지기’다.

이러한 ‘윤지기’ 인사는 과연 공정할까. 윤 당선인은 “유능함”과 “전문성”을 인사의 최우선 가치로 삼은 만큼 공정의 문제는 없다고 봤을 것이다. 실제 스펙만 보면 이들 대부분은 자격이 충분하다. 최고 명문대를 나와 사법시험 문턱을 넘었거나 고위직 경험이 있는 ‘경력직’이다. ‘윤지기’ 수식어 없이도 돋보일 사람들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최고 통치자의 친구가 이렇듯 많이, 동시에 고위직에 발탁된 전례는 없다. 한국 정치 문화는 대통령 친구가 고위직에 중용되는 걸 쉽게 용인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중·고, 경희대 동기가 공공기관으로 갔을 때 정치권에선 “낙하산”이란 표현을 썼다. 지난달 31일 윤 당선인 측도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 선임을 두고 “알박기 인사”로 규정하면서 “문 대통령의 동생과 대학 동창”이란 점을 문제삼았다.

‘윤지기’ 인사가 성과를 내면 윤 당선인의 공정은 결과적으로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라면? ‘(내) 사람이 먼저다’의 쌍둥이 버전, ‘(내) 친구가 먼저다’가 되지 않을까. ‘윤지기’ 인사는 이제 공정의 갈림길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