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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사위 취업 뒤 관리비 급증…타이이스타 66억 증발[탐사추적-타이이스타젯 의혹] <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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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월 22일 방문한 태국 방콕 시내에 있는 고급 맨션. 박석호 대표가 거주하는 이곳은 입주민을 위한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고대훈 기자

3월 22일 방문한 태국 방콕 시내에 있는 고급 맨션. 박석호 대표가 거주하는 이곳은 입주민을 위한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고대훈 기자

방콕 체류 16일째, 귀국을 12시간 앞둔 3월 22일 오전. 기자는 구글맵을 켜고 방콕 시내를 헤매고 있었다. 검색 지점을 표시하는 구글맵의 빨간색 핀은 방콕 중심가 수쿰빗에 위치한 10층짜리 P맨션 앞에서 멈췄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류층이 사는 고급 주택가였다. 무장한 경비가 입구를 지키고, 1층 로비 현관에선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했다. 맨션 호수 번호로 인터폰을 눌렀다. 중년의 남성 목소리가 들렸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에 앞선 21일 밤. 박석호(56·이하 존칭 생략) 타이이스타젯 대표를 만날 수 있는 희망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박석호는 이스타항공-타이이스타젯-이상직-대통령 사위로 연결되는 의문의 고리를 풀어줄 사람이다. 사건의 전모를 아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박석호를 직접 만나 육성으로 증언을 듣는 것에 방콕 취재의 성패가 달렸다.

그의 행적은 묘연했다. 타이이스타젯 사무실에는 나타나지 않았고, 방콕 어디엔가 산다는 첩보만 들릴 뿐 그의 집 위치조차 알 수 없었다. 전화, 카톡, 교민회 주소록 등 여러 경로를 닥치는 대로 시도했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박석호의 지인 A씨(53)에게 부탁한 서면 인터뷰도 성사가 희박해졌다. 박석호의 지인을 통해 보낸 질의서는 내용은 이랬다.

3월 22일 방문한 태국 방콕 시내에 있는 고급 맨션. 박석호 대표가 거주하는 이곳은 입주민을 위한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고대훈 기자

3월 22일 방문한 태국 방콕 시내에 있는 고급 맨션. 박석호 대표가 거주하는 이곳은 입주민을 위한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고대훈 기자

-언제 전주지검에 갔으며, 몇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나?
-검찰에 제출한 자료에는 금융자료 외에 이상직 의원과의 통화 내용 등 어떤 내용이 담겼나?
-누구의 청탁을 받고 대통령 사위를 채용했나? 그의 급여 수준과 역할은?
-타이이스타젯의 실소유자를 밝혔나?
-지난해 조사 이후 검찰에서 박석호 대표님을 접촉한 적은 있는가?

귀국일이 다가와도 소식이 없어 다그친 끝에 회신이 왔다.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안 옵니다. 본인도 지쳤나 봅니다. 그분 입장도 생각해 주시는 게….” 그게 끝이었다. 속절없이 빈손으로 돌아갈 처지에 놓여 낙담했다. 그 순간 박석호의 집 주소가 극적으로 입수됐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정보원으로부터 천신만고 끝에 얻어냈다. 박석호의 집이 맞는지, 그가 집에 있을지, 면담에 응해줄지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었다. 무작정 부닥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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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안 띄웠는데 영업비용은 빠져나가  

다시 박석호의 맨션. 인터폰을 통해 “박석호 대표님 계십니까?”라는 말에 “누구신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재차 “박석호씨를 찾아왔습니다”고 하자 2~3초가 흘렀을까, 인터폰을 서둘러 끊어버렸다. 인터폰 화면으로 기자가 찾아온 것을 알고 당황했던 듯싶다. 그의 지인에게서 기자의 방콕 취재를 전달받은 상태이기에 눈치챘을 것이다.

타이이스타젯 손익계산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타이이스타젯 손익계산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박석호가 살고 있음은 분명했다. 맨션 관리사무소에서 확인해 보니 박석호의 집과 같은 크기를 구하려면 6만 바트(약 220만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2021년 현재 한국과 태국의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와 7645달러를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맨션 4층에는 거주민을 위한 헬스장과 야외 수영장이 딸려 있었다. 박석호의 연락을 받은 듯 관리사무소 여직원이 나와 “미스터 박을 만날 수 없다”며 건물 밖으로 나가달라고 했다. 건물 주변을 배회했다. 외부로 연결된 주차장을 통해 차를 타고 빠져나가면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주치는 ‘행운’을 기대했지만 따라주지 않았다. 공항에 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5시간 만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박석호가 기자를 피하는 말 못할 사정이 돈과 관련됐을 수 있다.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면서 타이이스타젯의 재무제표를 구해 살펴봤다. 태국 상무부의 사업개발국(DBD)에서 태국 법인의 등기와 재무 정보를 구했다. 2022년 4월 7일 현재 타이이스타젯은 ‘운영 중(Operating)’으로 나온다.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재무제표에 나타난 2018년 타이이스타젯의 총자산은 1억9600만 바트(71억원, 올 4월 현재 1바트=36원 기준). 그런데 2020년에는 5400만 바트(19억원), 2021년에는 4600만 바트(16억원)로 대폭 축소됐다. 3년 사이에 55억원가량이 사라진 셈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할 경우 총수입은 2018년 600만원, 2020년 1500만원, 2021년 70만원으로 모두 2100만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적자에 허덕였다.

특히 ‘Selling & Admin Expenses’ (판매관리비) 항목이 눈길을 끈다. 판매관리비는 인건비, 광고비, 복리후생비, 소모품비 등 영업비용이다. 2018년 1억8000만원이던 판매관리비는 2020년 46억원, 2021년 18억원으로 치솟았다. 3개년 동안 실적이 2100만원대에 불과한 회사에서 66억원을 판매관리비로 썼다. 비행기를 띄운 적도 없고, 영업활동도 거의 없었던 회사가 이해할 수 없는 뭉칫돈을 지출했다. 71억원은 이스타항공이 받아 한국으로 들여와야 하는 돈인데 태국에서 증발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대통령 사위의 취업과 연결지어 추정해 볼 수 있다. 사위는 2018년 7월 타이이스타젯에 취업해 2년 정도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위의 연봉과 차량, 주거 지원 등 처우는 판매관리비에 포함된다. 얼마가 지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사위의 취업 논란이 국내에서 불거진 2019년도의 재무제표는 빈칸으로 남아 있다. DBD는 ‘재무제표는 해당 법인이 제출해야 등재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타이이스타젯이 제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판매관리비의 내역이 미심쩍다. 둘째, 누군가의 비자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지 대주주’를 내세운 데다, 제대로 된 영업활동이나 항공기 운항 실적도 없는데 거액이 불투명하게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의심스럽다.

중앙일보 보도가 나가자 전주지검은 지난 19일 “지난해 9월 박석호를 몇 차례에 걸쳐 조사했고, 법인 설립 자금 조달 내역 등 자료도 제출받아 분석 중”이라고 시인했다. 조사 후 7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분석 중’이라는 해명은 타이이스타젯의 자금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타이이스타젯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통령의 가족에게 특혜를 베풀고, 그 대가로 권력의 후광을 업고 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느냐를 따지면 그만이다. 검찰이 박석호, 이상직, 대통령 사위를 상대로 취업 경위, 각자의 역할, 대통령의 인지 여부, 타이이스타젯 돈의 행방을 추궁하면 쉽게 전모를 파헤칠 수 있다. “대통령 사위가 이상직 회사에 취업했다면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다”(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는 불경스러운 주장에 대한 진위를 가려야 한다.

검찰은 박석호를 출국금지하지 않았고, 대통령 사위를 소환조사하지 않은 채 ‘기소중지’ 결정을 한 뒤 사건을 덮어놓았다. 그러는 동안 주요 공모자는 방콕의 고급 맨션에서 편하게 잠적하고, 의혹의 당사자인 대통령 사위 서모(42)씨는 한국 어딘가에서 활보하고 있다. 서씨를 만나 입장을 듣기 위해 서씨의 이전 회사와 대학 동문 등을 수소문했지만 구체적인 행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지난해 9월 경남 양산에서 그의 부모가 운영하는 목욕탕에 들른 적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목욕탕을 찾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한 동네 주민은 “(서씨가) 가끔 목욕탕에 와서 주변 식당이나 시장에서 밥도 먹고 했던 것으로 아는데 자꾸 서울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부모도 골치 아프다더라”고 말했다.

진실은 태양처럼 솟구치는 힘이 있다

방콕 취재 여정 내내 한 가지 상념이 떠나지 않았다. 이른바 ‘정치보복’ 프레임을 내세워 취재 의도를 왜곡할까 걱정했다. 이번 취재는 누군가를 망신시키거나 욕보이려는 잔인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탐욕과 반칙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대통령과의 특수관계를 등에 업고 부당한 이득을 노린 사건이 아닌지 규명해 보자는 취지다.

취재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타이이스타젯의 실체와 실소유주 여부는 꽤 접근했으나 박석호와의 인터뷰가 무산됨으로써 결정적 증언은 확보하지 못한 채 미완에 그쳤다. 다만 이번 취재가 의혹과 진실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유발하는 기폭제가 된다면 성공한 것이다. 국민은 타이이스타젯을 둘러싼 수상한 거래 속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그 어두운 그림자를 벗겨내고 국민의 갈증을 해소해 줘야 한다. 이번에 일단 후퇴했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검수완박’이라는 초강력 무기를 동원해 틀어막고 은폐한다고 한들 진실이 물밑에 영원히 잠기지 않는다. 진실은 태양처럼 스스로 솟구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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