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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해를 볼수 있을까…지하제철소 우크라군 2500명 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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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 벙커에서 아이를 돌보는 한 여성의 모습이 지난 18일 공개됐다. 이 벙커엔 1000여 명 민간인이 대피해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 벙커에서 아이를 돌보는 한 여성의 모습이 지난 18일 공개됐다. 이 벙커엔 1000여 명 민간인이 대피해 있다. [EPA=연합뉴스]

“우리는 몇 시간은 아니더라도 며칠 뒤 마지막을 맞이할 것 같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최후 거점인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하고 있는 제36해병여단 지휘관 세르히 볼로나 소령은 20일 페이스북에 러시아가 공군력, 포대, 지상군, 전차 등에서 우위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볼로나 소령은 “우리가 방어하는 곳은 아조우스탈 제철소 한 곳뿐”이라며 “여기에는 군인뿐 아니라 전쟁의 희생양이 된 민간인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 또다시 최후통첩

20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수호이-34의 제철소 공습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20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수호이-34의 제철소 공습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16일에 이어 20일 오전 또다시 최후통첩을 했다. 러시아는 “오늘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8시)까지 항복할 기회를 다시 주겠다”면서 “당신의 운을 시험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하루 전인 19일 볼로나 소령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CN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와 병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며 “나의 마지막 진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볼로나 소령은 “포격이 24시간 내내 계속되고 있으며 러시아군은 방어선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고 전황을 전했다. 제철소 안에는 민간인 1000여 명과 병사들이 대피해 있으며, 이 중 최소 500명이 다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약은 없고, 물도 아껴 마시며 서로를 도우려고 애쓰고 있다”면서 “축축한 지하실에서 하루 2시간 남짓 자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사기는 여전히 높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철소에서 항전 중인 병사들은 국경경비대 소속인 아조우연대 대원과 방위군, 경찰 등이다. 볼로나 소령은 병사 숫자를 공개하는 것은 거부했다. 러시아군은 이곳에 약 2500명의 우크라이나군과 400명의 외국인 의용병이 작전을 수행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최후 항전 근거지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크라이나군 최후 항전 근거지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볼로나 소령은 “(상황이) 매우 비극적이고 위급하다”면서 “(러시아군은) 한 도시를 지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함정에 빠진 군인과 민간인을 구출해 달라”고 호소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 24일 개전 직후부터 마리우폴 점령에 나서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했지만, 아직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진 못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가 최후의 요새로 남아 있어서다. 마리우폴은 동부 돈바스 지역과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길목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우크라이나군 지휘관인 세르히 볼로나(왼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트위터 캡처]

우크라이나군 지휘관인 세르히 볼로나(왼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트위터 캡처]

마리우폴항 동쪽에 위치한 이 제철소는 유럽에서 가장 큰 제철소 중 하나다. 소련 시절 건설돼 1933년에 생산을 시작했다. 여의도 면적의 4배에 달하는 11㎢ 규모다. 이곳은 마리우폴 시민 수만 명의 일터이기도 하다. WP는 “마리우폴 경제와 시민의 생계를 책임지던 일터가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전사들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이자 최후 버팀목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의 독특한 구조 덕분이다. 친러 분리주의 단체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옌 가긴 고문은 러시아 국영 매체인 리아노보스티에 “이 제철소는 핵전쟁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고, 통신 시스템도 방어하는 쪽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가긴 고문은 “기본적으로 도시 아래 또 다른 도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철강 재료를 실어 나르던 대규모 지하 터널망은 이제 방공호 역할을 하고 있다. 최대 깊이 30m, 길이 20㎞가 넘는 미로 같은 구조에 무선 통신도 제대로 되지 않아 외부 침입이 어렵다. 예루살렘 안보전략연구소의 알렉산더 그린버그는 “터널에 있는 방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러시아군이 섣불리 진입했다간 사살된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이 조만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CNN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국가보안국(SBU)은 통신 도청 내용을 근거로 러시아군이 제철소를 완전히 파괴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SBU에 따르면 한 러시아군 지휘관이 아내로 추정되는 여성과의 통화에서 “곧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 뒤 “하늘에서 3t짜리가 날아와 지상의 모든 것을 초토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3t짜리’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대규모 폭탄 투하 등 공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CNN은 통화 내용의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1조원대 군사 무기 추가 지원

러시아군의 동부 지역 집중 공세로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신속한 추가 지원을 준비 중이라고 CNN 등이 이날 보도했다. CNN과 NBC 등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8억 달러(약1조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추가 지원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 침공 이후 미국의 군사 지원 규모는 약 34억 달러(4조2000억원)에 달한다. 미 정부 관계자는 “현재 전쟁은 대단히 중요한 단계이고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군사 지원을 최대한 빨리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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