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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인권변호사’ 한승헌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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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군사정권 시절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리던 한승헌(사진) 전 감사원장이 20일 88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8회)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60년 법무부·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서 여러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민청학련’ ‘동백림 간첩단’ 사건과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을 변론하는 등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꼽힌다.

75년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1929∼72)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됐다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재심 끝에 2017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무죄 판결 당시 고인은 “기쁨보다는 착잡함이 더 크다. 아직도 저처럼 정치 탄압의 대상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분들이 많은데 앞으로 어떤 독재 권력도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면서 사법부에 대해 “권력자에 의한 사법농단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인은 80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88년 민변 창립을 주도했고, 김대중 정부 때인 98∼99년 감사원장을 지낸 뒤 노무현 정부 때는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이 밖에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과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관훈클럽 고문변호사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했는데 마광수 연세대 교수가 『즐거운 사라』로 구속되자 ‘문학작품 표현자유 침해와 출판탄압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던 고인에 대해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전통적인 서정시와 난해한 모더니즘의 전성기에 형성됐으면서도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창성을 돋보이게 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하고 사법개혁과 사법부의 탈권위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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