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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양향자 제거' 노렸다…민주 초유의 '위장탈당'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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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20일 국회 법사위 소속 민형배 의원(사진)의 '위장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면서, 검수완박 법안의 강행 처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민 의원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0일 국회 법사위 소속 민형배 의원(사진)의 '위장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면서, 검수완박 법안의 강행 처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민 의원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4월 처리를 위해 소속 국회의원의 위장 탈당이라는 유례없는 꼼수를 꺼내 들었다.

민주당은 20일 국회의장실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형배 의원(광주 광산을)의 탈당 사실을 통보했다. 뒤이어 곧바로 국회 법사위에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신청했다. 검찰·법원에 이어 대한변협까지 ‘4월 처리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을 믿고 강행 처리 수순에 돌입한 것이다.

‘양향자 신중론’ 직면한 민주…‘위장 탈당’ 꼼수로 대응

안건조정위원회는 첨예한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상임위 내에 구성하는 6인 위원회다. 현재 의석수론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비교섭단체 1명으로 구성되고 의결 정족수는 4인(3분의 2)이다. 민주당은 지난 7일 사보임으로 법사위에 들어온 자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캐스팅 보트를 쥐는 구조여서 “법안 통과가 어렵지 않을 것”(법사위 보좌관)이라고 기대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위장 탈당' 초강수를 둔 것은 국회 법사위 소속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신중 처리 입장을 밝힌 데 따른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위장 탈당' 초강수를 둔 것은 국회 법사위 소속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신중 처리 입장을 밝힌 데 따른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오종택 기자

하지만 양 의원이 전날 민주당 측 인사에게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검수완박 법안의 강행 처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위원 4명의 동의가 없으면 해당 안건은 최장 90일까지 안건조정위 문턱을 넘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전 입법 완료’라는 민주당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이날 국회법상 숙의 절차를 무력화하기 위한 카드를 차례로 꺼내들었다. 처음은 양 의원을 법사위에서 강제로 배제하려는 시도였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날 오전 박병석 국회의장 측에 “양 의원 대신 다른 의원을 법사위에 넣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양 의원 대신 검수완박에 찬성하는 비교섭단체 의원을 법사위에 투입해 캐스팅 보트 쥐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박 의장 측이 ‘(상임위원은) 임시회 회기 중에 개선(교체)될 수 없다’는 국회법(제48조 6항)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법사위 구성 어떻게 바뀌었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법사위 구성 어떻게 바뀌었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러자 나온 게 민 의원의 ‘위장 탈당’이었다. 안건조정위원 선임 권한이 민주당 소속 박광온 법사위원장에게 있는 만큼, 비교섭단체 의원을 2명으로 늘려 민 의원을 캐스팅보트로 지정하려는 시도다. 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찰 정상화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냈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역할에 대비하려는 뜻”이라고 탈당 의도를 밝혔다.

국민의힘 “이것이야말로 입법 독재”…중립지대 반발도 확산

판이 짜이자 민주당은 곧바로 안건조정위원회를 신청했다. 통상 안건조정위는 소수당이 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이를 파행 중인 법사위를 돌파하는 공세 카드로 꺼내들었다. 법사위 관계자는 “안건조정위 의결은 소위 의결을 갈음한다는 조항을 고려한 역발상”이라고 말했다. 박광온 위원장은 양당에 “내일(21일) 오전 10시까지 조정위원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위원장 직권으로 안건조정위를 구성할 수 있고 당일 의결도 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이번 주 법사위 통과, 다음 주 본회의 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형배 의원의 탈당은 안건조정위원회를 형해화시키려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꼼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형배 의원의 탈당은 안건조정위원회를 형해화시키려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꼼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뉴스1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이 안건조정위원회 회부 계획을 밝히자 “법치 유린”이라고 항의하며 법사위 회의장을 퇴장했다. 이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소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고 안건조정위원회까지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입법 독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라고 격하게 항의했다. 권 원내대표는 박병석 국회의장을 향해 “상임위 정수에 맞춰 민 의원을 강제로 사보임(교체) 해달라”고도 요청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소수의 비판이 나왔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 의원 탈당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정치를 희화화하고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며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대로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헛된 망상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분별력 있게 하자”고 촉구했다.

전날 연락이 두절됐던 양향자 의원도 입장문을 냈다. 양 의원은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내가 사랑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민주당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민주당의 처사는 국회의 민주주의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민주당이 최근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 지명을 ‘대국민 인사 테러’라고 비판한 것을 거론하며 “민형배 법사위원 탈당을 ‘대국회 민주주의 테러’라고 한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학교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위장 탈당 조치는 제도적 자제와 상호존중이라는 규범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병석 의장 국외 순방 취소…막판 중재 노력

한편, 23일부터 예정됐던 방미 일정 보류를 결정한 박병석 의장은 이날도 양당 의원들과 만나며 분주히 움직였다. 박 의장은 전날 국민의힘 법사위원을 ‘저게’라고 칭해 법사위 파행의 원인을 제공한 최강욱 민주당 의원을 설득해 법사위 정상화를 시도했고, 이날은 민주당 내 법률가 출신 의원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정치권에선 검수완박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한 이후엔, 사실상 박 의장이 ‘키맨’이 될 거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국민의힘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한 상황이어서 4월 중에 두 개의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국회 회기를 2~3일 단위로 쪼개는 회기 변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엔 총대를 메 줘야 한다”(초선 의원)며 박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야당에선 박 의장이 ‘검수완박의 급브레이크’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른바 ‘언론재갈법’으로 불리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 합의 처리’를 강조하며 상정을 거부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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