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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와 '공존'...마르케스의 나라에 한국 작가들과 책들이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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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관. 관람객 입장 전 모습이다.. [사진 이후남 기자]

2020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관. 관람객 입장 전 모습이다.. [사진 이후남 기자]

 "전염병과 전쟁과 경제 불안이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인간과 이 세상에 대한 공부가 필요해 보입니다…우리는 끊임없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공부를 통해 더욱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무지는 배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배우지 않으려는 완고함이기 때문입니다."
 은희경 작가는 새삼 공부의 힘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책은 관성적 틀에서 벗어나 인간과 세계를 읽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며 책의 힘을 강조했다. 19일(현지시간) 보고타국제도서전(FILBo, Feria Internacional del Libro de Bogotá) 개막식에서 작가로는 유일하게 연설을 하면서다. 그는 "책이 일깨워주는 공존의 마음으로 이곳에서 책들과 재회하겠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6·25참전 콜롬비아 수교 60주년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 참가 #은희경 작가 개막식에서 연설 #그림책 이수지, 웹툰 수신지 등 #다양한 작가들 현지서 행사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의 개막식 모습.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의 개막식 모습.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한반도의 5배쯤 되는 면적에 인구는 한국과 엇비슷한 콜롬비아, 그중 수도 보고타에서 열리는 이 도서전은 매년 관람객이 60만명 안팎에 달하는 대형 문화행사다. 남미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도서전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한국-콜롬비아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개막식에서 연설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6·25 전쟁 당시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전쟁에 참전했던 고마운 형제였다"며 "그런 소중한 인연이 1962년 수교를 맺은 후 다방면에서 아름다운 공존으로 이어져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독자들은 남미 문학의 거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콜롬비아 최고 소설가 모레노 두란의 문학을 읽고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시대와 장소를 넘어 콜롬비아의 문학과 예술을 공유해 왔다"고 소개했다. 200여명이 자리한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알다시피『백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이름난 콜롬비아 작가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관. [사진 이후남 기자]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관. [사진 이후남 기자]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 역시 개막식 마지막 순서로 연설을 하며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의 형제분들을 만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두 나라의 각별한 인연을 언급했다. 그는 70년 전 콜롬비아 군인 5000명의 파병을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절,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하나로 뭉쳤다"고 돌아봤다. 또 "오늘날 한국은 창조경제, 즉 오렌지 경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며 최근 보고타에서 한국영화(송중기 주연의 '보고타')를 촬영하고, 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석하는 등 새로운 문화교류의 양상을 언급했다.

 보고타국제도서전이 1988년 출범 때부터 행사장으로 삼아온 코르페리아스에서 다시 열리는 것은 3년만. 지난 2년 동안은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행사로만 열렸다. 온라인 덕분에 관람객이 100만명으로 늘기도 했다지만 책과 작가, 독자, 출판인이 직접 만나는 열기를 대신할 수는 없는 터. 두케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이번 도서전을 "재회의 자리"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19일 아침 행사장 주변은 일반 관람객이 입장하기 이전인 데다, 비가 흩뿌리는 날씨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관의 외부.. [사진 이후남 기자]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 한국관의 외부.. [사진 이후남 기자]

 그중 주빈국 한국관은 큼직하게 쓰인 '책'이라는 한글과 함께 단박에 눈에 띈다. 안에 들어서면 색동·단청 같은 한국의 화려한 색감을 반영해 꾸민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무려 3000제곱미터(약 900평)이다. 한국관의 주제는 '공존'.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 나라와 나라의 공존을 아우른다. 앞서 연설에서 은희경 작가는 "한국 주빈관의 주제는평화·인권·환경을 생각하는 공존"이라고 말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서 한국의 경험을 반영한 설명이다.

 이를 은희경·정유정·이문재·김경욱·정영수 등 문학 작가만 아니라 여러 작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이번 한국관의 특징.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수지 작가를 비롯한 여러 그림책 작가와 웹툰 '며느라기'의 수신지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현지에서 독자와의 만남이나 대담 등의 행사를 갖는다.
 전시 역시 문학·역사·생태·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책 100권을 통해 주제인 '공존'을 보여준다. 그동안 한국 작품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책들, 한국 북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수상작 책들도 선보인다. 대한출판문화협회를 중심으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문학번역원, 국립과천과학관, 주멕시코 한국문화원 등이 한국관 운영에 참여했다. 또 주빈국 참가를 계기로 콜롬비아 현지에 한국문학을 새롭게 소개하는 2종의 선집도 나온다.

왼쪽부터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 앙헬리카 마리아 마욜로 오브레곤 문화부 장관, 클라우디아 로페즈 보고타시 시장,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주빈국관을 둘러보고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왼쪽부터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 앙헬리카 마리아 마욜로 오브레곤 문화부 장관, 클라우디아 로페즈 보고타시 시장,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주빈국관을 둘러보고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관 한쪽에는 딱지치기 같은 한국의 놀이나 한복을 체험하고 한류를 맛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아르헨티나 문화원장을 역임한 이종률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기획관은 "콜롬비아는 남미 4대 강국 중 하나"라며 "특히 한류 홍보 활동에 현지인들의 참가 지원을 받아보면 남미에서 가장 열기가 높은 나라"라고 소개했다.
 다음 달 2일까지 열리는 이번 도서전에 이어 한국에서도 콜롬비아와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 교류가 이어진다. 오는 6월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콜롬비아가 주빈국으로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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