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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요새는 '여의도 4배' 제철소…우크라軍 2500명 "항복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와 병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채 마리우폴의 마지막 거점인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방어군의 지휘관이 “나의 마지막 진술이 될 것”이라며 “최후까지 항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 위로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러軍, 24시간 내내 폭격 중" 

1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미국 CNN 방송은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 제36해병여단 지휘관인 세르히 볼로나 소령과의 위성 전화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볼로나 소령은 “지시가 있는 한, 나와 병사들은 임무 완수를 위해 전투 작전을 수행할 것이며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16일에 이어 20일 오전 또다시 최후통첩을 했다. 러시아는 “오늘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8시)까지 항복할 기회를 다시 주겠다”면서 “당신의 운을 시험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외신은 이날 최후통첩 시간이 지날 때까지 우크라이나군의 대규모 항복 징후는 없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제36해병여단 지휘관인 세르히 볼로나(왼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트위터 캡처]

우크라이나군 제36해병여단 지휘관인 세르히 볼로나(왼쪽)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트위터 캡처]

볼로나 소령은 “러시아군의 포격이 24시간 내내 계속되고 있다”면서 “전투기와 대포, 함포 등으로 공격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방어선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철소 안에는 민간인 1000여 명과 병사들이 함께 대피해 있으며, 이중 최소 500명이 부상당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약은 없고, 물도 아껴 마시며 서로를 도우려고 애쓰고 있다”면서 “젖은 지하실에서 하루에 2시간 남짓 잠을 자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사기는 여전히 높다”고 강조했다.

제철소에서 항전 중인 병사들은 국경 경비대 소속인 아조우연대 대원과 방위군, 경찰들이다. 볼로나 소령은 제철소에 있는 병사의 숫자를 공개하는 것은 거부했다. 러시아군은 이곳에 2500명의 우크라이나 군대와 400명의 외국인 의용병이 군사 작전을 수행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볼로나 소령은 현재 상황에 대해 “매우 비극적이며 위급하다”면서 “여기서 일어난 일은 인간의 기본적인 이해를 초월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행위에 대해서는 “한 도시를 지상에서 완전히 파괴해 없애버린 일”이라고 비판했다.

친러 군대의 한 군인이 보병 전투차량에 로켓 추진 수류탄을 장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러 군대의 한 군인이 보병 전투차량에 로켓 추진 수류탄을 장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지도자들에게 “함정에 빠진 군인들과 민간인을 구출해달라”고도 호소했다. 그는 “모든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거나, 제3국 또는 비군사적 조직이 우리의 안전한 대피로를 보장하는 방식의 정치적 합의를 이룬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항복 요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러시아군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는 시민들에게 대피로를 제공한다고 해놓고, 매번 약속을 깨고 발포했다”면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지하 대피소에 숨어있는 어린이들. 연합뉴스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지하 대피소에 숨어있는 어린이들. 연합뉴스

"아조우스탈, 핵전쟁도 견딜 수 있게 설계"

러시아군은 개전 직후부터 마리우폴을 점령하기 위해 포위 공세를 펼쳐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지만 아직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진 못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가 최후의 요새로 남아있어서다.

마리우폴항 동쪽에 위치한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유럽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 중 하나다. 소련 시절 건설돼 1933년 생산을 시작했다. 10년도 채 안된 1941~43년 나치 독일군에 점령당해 폐허가 됐다. 이후 재건 작업을 거쳐 1944년 재가동됐다.

여의도 면적의 4배에 달하는 11㎢ 규모에, 용광로·철로·굴뚝·지하터널 등 생산설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연간 400만t의 철강, 350만t의 용탕(금속을 가열해 녹인 것), 120만t의 압연제강을 생산했다. 마리우폴 시민 수만 명의 일터이기도 했다. WP는 “마리우폴의 경제와 시민의 생계를 책임지던 일터가,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전사들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이자 최후 버팀목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미국 위성사진 제공업체 막사테크놀로지가 촬영한 아조우스탈 공장의 전체 모습. [막사테크놀로지 제공]

미국 위성사진 제공업체 막사테크놀로지가 촬영한 아조우스탈 공장의 전체 모습. [막사테크놀로지 제공]

방어군이 버티고 있는 것은 이곳의 독특한 설계와 구조 덕분이다. 친(親)러 분리주의 단체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고문인 옌 가긴은 러시아 국영매체인 리아노보스티에 “이 제철소는 핵전쟁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고, 통신 시스템도 방어 측에 유리하게 내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철강 재료를 실어나르던 대규모 지하 터널망은 방공호 역할을 한다. 최대 깊이 30m, 길이 20㎞가 넘는 미로 같은 구조에다 무선 통신도 제대로 되지 않아 외부에서 침입이 어렵다. 가긴 고문은 “기본적으로 도시 아래 또 다른 도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예루살렘 안보전략 연구소의 분석가인 알렉산더 그린버그는 “터널에 있는 방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러시아군이 섣불리 진입했다간 사살당하게 된다”며 “러시아군의 터널 진입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AFP통신에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최후 항전 근거지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크라이나군 최후 항전 근거지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늘에서 아조우스탈에 '3t짜리' 날아갈 것"

다만, 군사 전문가들은 방어군의 저항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우려한다. 우크라이나 군사 분석가인 세르게이 즈구레츠는 “러시아군이 아조우스탈 제철소 공략을 위해 중폭탄(heavy bombs)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기업연구소의 프레드릭 카간 소장은 “러시아는 이곳을 파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 이미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아조우스탈 제철소 이미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9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국가보안국(SBU)은 도청한 통신 내용을 근거로 러시아군이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전면 파괴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도청 내용에 따르면, 한 러시아군 지휘관이 아내로 추정되는 여성과 통화하며 “곧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 뒤 “하늘에서 3t짜리가 날아와 지상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킨다”고 말했다. ‘3t짜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진 않았지만, 대규모 폭탄 투하 등 공습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SBU는 이를 토대로 러시아 군사작전의 목표가 ‘돈바스 해방’이 아닌 한 국가를 없애버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보도한 CNN은 통화 내용의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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